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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와 원칙은 만생의 근원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빗나가면 우주의 보편성은 존재치 않을 것이 모두는 깨어져 참담한 화를 당하게 된다.
조화와 원칙은 순리요, 자연이며 생의 방식으로써 여기에 길들여져 대도를 걸어왔기에 도덕이 살고 영원불멸의 문화를 꽃 피우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켜 풍요로움을 이어왔다.
조화(調和)는 모순이나 충돌 없이 잘 어울리는 것을 말하고, 원칙(原則)은 여러 가지 형상에 공통되는 규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문자 그대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이며 그 개체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특성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질서정연한 궤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공통된 분모를 찾아 특성을 살리면서 양보와 타협의 큰 원(圓)속에 조화의 미덕을 꽃피우기 때문에 그 의존 속에 아무런 일탈 없이 서로를 보완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생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원칙이다. 원칙은 공통된 분모에서 소생 되어지는 것이기에 공존현상의 질서가 없이는 생태계(生態界)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밤 하늘의 우주를 바라보면 무한 창공의 시퍼런 하늘가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자기의 갈 길을 가고 있다.
구름이 가고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내리는 가운데 인력권 밖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이 있는가 하면 그 유성(流星)은 지구궤도 속에 돌입하면 빛을 발하면서 한참 동안 우리의 시각 안으로 들었다가 불빛 한 점 없이 깨끗이 사라진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사계절 따라 잎새는 푸르러 꽃이 피고 열매를 달더니 또 혹한의 겨울을 맞아 재생의 그날을 비축하고 봄이 오면 생동의 환희를 밟아 사는 것이 윤회의 법칙이다.
계절의 변화 속에 홍수가 나고 때로는 물 한 모금 없는 가뭄이나 찬 서리 눈비 속에 자생을 위한 준비를 해두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공생의 원리를 잘 터득하며 오늘과 내일을 위해 준비를 잘해둔 초목들은 체험의 천리 속에 영원성을 지탱하는 것이다.
특히나 인간사회는 변칙이 난무(亂舞)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감각과 지혜를 가졌고 정도를 벗어나는 욕구에 충만하기 때문에 서로가 상충하는 경우가 많고, 욕망의 도가 지나치면 전쟁이 되어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막스, 레닌의 유물사관이 그렇고, 자민족 우선정책의 히틀러, 흑백전쟁의 논리에서 파생된 미국의 독립전쟁, 자국중심의 팽창이론인 제국주의 정책,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사의 갈등, 동서문화의 상충으로 전쟁은 끊일 줄을 몰랐다.
인류역사는 이 같은 요인에 의한 투쟁의 피로써 점철된 것이기에 요즈음도 한반도는 북한의 핵개발 문제와 밖으로는 세계 각처에 전운이 깊게 쌓인 판국에 우리의 삶은 안도의 닻을 내리기가 몹시도 어렵게 되었다.
또한 법을 다루는 판사와 변호사가 결탁되어 유전무죄(有錢無罪)요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탕물의 용어가 일상사의 저변에서 서민을 울리고 있으니 모두가 세기말적 위기감으로 우리의 생존권을 조여온다.
이 모두가 원칙을 멀리한 소아(小我)의 집착 및 편견에서 파생된 것이다. 종교 철학에서 인간의 극락세계는 정(靜)의 마음에서 올바른 사고의 성찰(省察)에 의한 의지(意志)의 동(動)으로 자기의 길을 가는 자라 했다.
물론 이를 실행치 못한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반대개념이다. 헤겔철학의 유심론(唯心論)에서는 심을 정착하지 못한 현대사회에서 자기 소외에 빠진 현대인들의 고독한 자기내면을 깊게 전달하면서 이제야 내 가족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대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누구는 지식으로 포장된 현대인을 두고 “망나니”라고 표현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지혜와 고도의 지식을 가진 자가 범죄를 유도하고 조화와 원칙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간주된다는 말이다.
양심과 법의 정신에 따라 약자의 인권과 권익을 대변하는 민주질서의 최후의 보루자인 법조인이 돈의 노예가 된 채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망나니로 둔갑하였다면 더 이상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겠는가? 교육계도 물론 사회 구석구석에 망나니로 둔갑한 회오리바람이 세차게 불어 커피 한 잔에 교장이 자살하는 안타까운 오늘이다.
꿈 많은 청소년에게 인간이 옳게 사는 방법을 몸소 체험케 하고 세계의 파고 속에 나의 입지(立志)를 실행하게 해야 할텐데 모두가 인고(忍苦)의 실행 없는 외형 속에 속물 건성으로 치닫으며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눈비가 내려도 해와 별은 제 갈 길을 가듯이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나와 우리가 공생하는 길을 찾아 삶의 보편성에 길들여져야 할 것이다.
지난 20세기 산업사회는 똑똑한 사람(엘리트)을 키웠으나 21세기 문화사회에서는 따뜻한 사람 즉, 감정을 공유하는 조화로운 사람을 키워야 한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한 사람, 손해를 보며 남을 위해 양보하는 삶, 그런 흐름이 조화로움을 창조하며 차곡차곡 주어진 인생길을 쌓아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