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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년 후에도 빛날 가치, 석조각에 담아냅니다

윤철 장인석공 대표이사

(사)한국품질명장협회
국가품질명장 선정
30년 전 거제 사찰 작업 후
고성과 인연
상품 아닌 작품 만들고 싶어
불교·문화 공부
노래하는 석공
후계자 키워내는 것이 바람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16일
ⓒ 고성신문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하지만 가세가 기우는 건 한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와병이 길어지면서 17살 소년은 석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41년이 지났다. 먹고 살기 위해 망치를 들었던 소년 윤철은 장인석공 대표이사가 됐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국가가 인정하는 명장이 됐다.
“국가품질명장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까지의 숱한 일들이 눈앞을 스쳤습니다. 수많은 공로패와 감사패를 받았지만 명장 증서는 제 삶의 모든 순간이 담긴 것이니 더욱 감격스러웠지요.”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이 길이 이렇게 크고 값진 열매를 가져다 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윤철 대표가 지난달 30일 받은 국가품질명장은 10년 이상 산업현장에서 근무한 사람 중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사단법인 한국품질명장협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산업현장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가치가 높다. 대한민국 최고 기술인만 받을 수 있는 영예다. 지금이야 그라인더가 있지만 윤철 대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망치와 정 말고는 별다른 장비도 없었다. 충남 보령이 고향인 그는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곳곳에 불려다니며 쉬지 않고 일했다. 그때만 해도 현장에 직접 가서 작업해야 했다. 그의 솜씨가 어디까지 소문이 났던지, 부여에서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사흘동안 물어물어 그를 찾아오기도 했다.30년 전, 거제 어느 사찰의 작업을 맡았다. 사찰에 머무는 중에도 일거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대구 동화사 통일대불도 만들러 가야 하던 참이었다. 두어 달 일하면 될 줄 알고 내려왔는데 거제에서 10년을 보냈다.거제에 기거하던 시절 통영과 고성도 오가며 작업했다. 고성읍 월평리, 지금 장인석공이 있는 자리는 원래 주인이 떠나고 근 10년째 비어있는 땅이었다. 지나칠 법도 한데 자꾸 그 자리가 눈에 밟혔다. 그렇게 연고도 없는 고성에 둥지를 틀게 됐다.여전히 일은 끊이지 않았다. 20년 전 월수입이 700만 원쯤 됐으니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일의 목적이 더 이상 돈이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석공으로 20년을 살다 보니 작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품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부처를 모르고 어떻게 부처를 만들 수 있습니까.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흉내만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그는 부처의 뜻을 전하는 법사이자 불상과 법당을 만드는 불모다. 정토종 계를 받아 승려생활도 했다.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자 그의 불상이 달라졌다. 찍어내듯 하던 불상 대신 석재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듯한 부처가 그의 손끝에서 나오기 시작했다.“일에 미쳐있던 적도 있었고, 지겨워서 아예 그만둘 작정을 한 적도 있습니다. 석공들이 그렇듯 저도 몸이 안 좋아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 작품을 보면 또 그게 즐겁고 행복하고 기뻐서 일하게 되더라고요. 힘들 때면 노래하면서 마음을 달래가며 일합니다. 뭐든 즐거워야 결과물이 좋으니까요.”윤철 대표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일하면서 줄곧 노래를 듣고 부른다. 서른을 갓 넘겼을 무렵 가수를 꿈꾸기도 했다. 업소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2년을 무대에 섰지만 노래를 업으로 삼기에는 녹록하지 못한 현실과 마주했다. 그때 노래를 업으로 삼지 않은 것이 이제 와서는 천만 다행이다, 싶다. 10년쯤 전부터 다시 노래했다. 젊은 시절보다 더 즐거웠다. 3~4년 전 고성의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내내 좋지 않던 몸이 노래를 다시 하고부터 오히려 폐활량이 좋아지면서 가뿐해졌다. 일도 삶도 더 즐거워졌다.윤철 대표의 작품은 고성과 통영, 거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통영 수산과학관 어민위령탑처럼 큰 작품을 맡기도 했다. 지역업체라 고성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남산정을 오르는 길목 음수대, 연화산도립공원 내 조형물 등 제값으로 제작했다면 수천만 원의 작품들을 고성군에 기증하기도 했다.석조문화재 복원도 석공의 중요한 역할이다. 역사와 문화를 정확히 모르는 외국인이 우리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윤철 대표는 석불사 등 석조문화재를 복원했다. 석조작품을 만들면서는 물론이고 문화재 복원 작업 중에도 늘 아쉬운 것이, 다음 세대가 없다는 점이었다. 제자를 키워내고 싶어도 기본기를 익히는 데만 몇 년이 걸리는 이 일을 하겠다는 젊은 사람이 없다.“문화재를 복원하는 일, 석조작품을 만드는 일은 후손에게 역사를 물려주는 일입니다. 일자리를 보장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나이 60줄을 바라보는 우리 세대가 막내예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요. 마지막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명맥을 이어야 합니다. 이건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할 일입니다.”윤철 대표는 돌에도 결이 있다고 말한다. 완성을 눈앞에 두고도 실패하는 돌, 유독 말을 안 듣는 돌도 있다. 그 결을 다듬는 것이 석공의 일이다. 1천 년 후에도 빛날 가치를 오롯이 담아내는 일, 그래서 그가 명장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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