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힘, 여성과 가족이 답 3.] ‘여성’들의 삶이 바뀌면 ‘사람’의 일상이 바뀐다

여성친화도시의 목표 중 하나로 삼은 것 중 하나는 ‘여성의 경제·사회 참여 확대’다. 여성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지역산업과 연계된 직업훈련 및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근거리 일자리 발굴과 여성의 사회적 경제활동을 촉진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 유관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여성고용 창출과 함께 고용 안정 목표 공시, 지속적 모니터링을 통해 여성고용 안정을 위한 지역사회 책무성을 확대해야 한다.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 중 많은 사람이 ‘유리천장’을 실감한다. 여성의 전문성을 폄훼하고, 남성 직원과 똑같은 일을 해도 급여는 남성직원에게 더 많이 돌아가는 일이 여전히 흔하다. 결혼한 여성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 직장을 그만둘 것이라 예상해 승진에서 밀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같은 일을 해도 대표성을 갖고 해야 하는 것은 ‘대표’가 남성에게 돌아가는 일 역시 흔하다. 유리천장만이 아니라 유리벽까지, 그것도 웬만해선 깰 수 없는 ‘방탄유리’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고 여성이 당당하게 바로 서기 위해, 성평등을 위해 나선 이들이 있다. ‘빌라선샤인’과 ‘딱따구리’다.

↑↑ 북클럽 딱따구리의 유지은 대표

ⓒ 고성신문

# 일과 삶을 스스로 기획하는 뉴먼 ‘빌라선샤인’
“제가 마흔이 넘었을 때 일하는 모습이 그려지지가 않았습니다.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문제지요. 선배가 없어 막막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이 서로의 선배이자 동료가 되어주면 어떨까, 상상했어요. 그게 빌라선샤인의 출발이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 다시 말해 25~39세 사이의 연령을 말한다. 홍진아 대표 역시 밀레니얼 세대다.
빌라선샤인은 밀레니얼 세대 직장 여성을 위한 3개월간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스타트업이다. 남성들에게는 결혼여부, 자녀유무와 상관없이 생애주기별 여러 커뮤니티가 활성화돼있고 또한 모임활동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는 중대한 시점 혹은 고비가 된다. 공통의 관심사를 나눌 커뮤니티에 한계가 생긴다. 빌라선샤인은 다양한 업계와 다양한 성향의 여성들이 만나 일상을 나누고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키를 찾는 거점이다.
빌라선샤인은 멤버십으로 운영된다. 빌라선샤인의 회원들은 뉴먼(newomen)이다. ‘새로운’이라는 뜻을 가진 new와 여성을 뜻하는 women의 합성어다. 뉴먼은 자신의 일과 삶을 스스로 기획하고, 자신의 경험을 정리해 다른 여성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나누는 여성이다.
지금 빌라선샤인의 뉴먼들은 벌써 시즌 5를 맞았다. 대부분 20~30대지만 40대 뉴먼들도 종종 참여한다. 빌라선샤인이 진행하는 뉴먼 프로그램은 직장 생활 문제를 공유하는 모닝 뉴먼스 클럽, 주거·노무·법률 등 전문가 상담 프로그램인 선샤인 오피스 아워, 직접 평소 관심사를 프로그램으로 기획하는 빌라선샤인 뉴먼 소셜클럽, 기획 실무 프로그램인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 등이 진행된다.빌라선샤인의 멤버들만을 위해 기획되는 ‘선샤인 오리지널’은 프로그램이 더 다채롭다. 중간관리자급인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의 경력을 고려한 중간관리자 모임, 정치적 이슈 등을 놓고 강의와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나 주거, 노무, 자기개발, 프리랜서들을 위한 커리어와 경제, 브런치 브랜드 마케터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퍼스널 브랜딩, 여성들이 직면한 문제 중 하나인 성폭력 관련 법률, 이직이나 창업 등 한 달 20개 이상 개설되는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프로그램 하나에 적게는 10명, 많게는 80여 명 정도 참여한다.
초청하는 전문가, 연사는 물론 모임 참가자들도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이다. 같은 세대의 여성들에게 전문성을 쌓을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빌라선샤인에서는 자기만의 맥락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고 있는 밀레니얼 여성이라면 누구나 프로그램을 이끌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줄 수 있는 경험을 쌓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누구도 살아보지 않은 미래를 살아가는 방법은 현재를 같이 살고 있는 여성들이 서로의 창조점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롤모델이 없는 대신, 서로가 서로의 선배가 되어줄 수는 있는 거죠.”
홍진아 대표는 몇 해 전 겪은 개인적 경험에서 여성 연대의 중요성을 나눌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홍 대표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8년간 교육단체, 글로벌 비영리조직 등에서 기획과 홍보,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직장생활 중 롤모델로 삼을 여자 선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에는 남자들만 있었다. 지속가능한 일상과 삶, 직업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으나 직장 내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창업 준비를 시작해 소셜벤처투자사의 투자를 받아 빌라선샤인을 시작했다.
홍진아 대표와 같은 생각, 같은 갈증을 가진 여성들은 생각보다 더 많았다. 오프라인 모임을 중심으로 시작한 빌라선샤인은 온라인 회원제 상품을 추가해 별도의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밀레니얼 세대 여성간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다. 뉴먼들은 전용 메신저나 게시판, 라이브방송 등으로 수도권, 비수도권은 물론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지역에서 참여하고 있다.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여성임원비율은 3% 수준이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직급이 높아질수록 여성들의 비율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홍진아 대표가 그랬듯 젊은 여성 직장인들이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선배가 너무 적다. 롤모델이 적다는 것은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이 40대 이후 경력을 쌓을 수 있을지에 의문을 품게 한다. 빌라선샤인은 이 문제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
“빌라선샤인은 여성들이 더 나은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공고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주체가 된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를 조금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배우며 나의 일과 삶을 스스로 기획하는 여성들이 더 나은 오늘을 함께 사는 커뮤니티가 바로 우리 빌라선샤인입니다.”

↑↑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의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을 이끄는 홍진아 대표(가장 오른쪽)와 팀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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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제약 없이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는 ‘딱따구리’
우리는 생각보다 거대한 성 고정관념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가령 남녀 진행자가 동시에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 남성 진행자는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반면 여성 진행자는 예쁘고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남성 진행자의 설명에 맞장구를 치거나 설명을 거드는 정도다. 여성 앵커가 뉴스를 단독으로 진행하는 경우는 기사가 날 정도로 화제가 된다.
재연 프로그램이나 더빙된 외국영화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존대하고, 남성은 여성에게 하대하는 경우도 많다. 언어적으로 존대의 개념이 없는 외국어도 한국어로 더빙할 때는 여성이 남성에게 높임말을 쓴다. 부부라고 해도 아내가 남편에게 깎듯이 존대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산부인과 초음파실이 배경인 드라마의 한 장면을 상상해보자. 엄마아빠는 태아의 성별이 궁금하다. 엄마아빠는 눈을 반짝이며 물어본다. 간혹 침도 꿀꺽 삼킨다. “분홍색 옷을 준비할까요, 파란색 옷을 준비할까요?”
“태어나기 전부터 성별 고정관념에 갇혀 있어요. 색으로 구분짓는 성격, 성별만으로 기대되는 성격들이 있죠. 자라나면서 만나는 모든 환경이 성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성고정관념이 없는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림책을 떠올렸습니다.”
유지은 대표가 운영하는 북클럽 딱따구리의 사업은 다소 생소하다. 영유아 그림책 성평등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조카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던 중 유지은 대표는 불편함을 느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명 콘텐츠인데도 성차별적 요소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생각난 김에 다른 애니메이션과 아이들의 그림책도 살펴봤으나 마찬가지였다. 여성이 주인공인 콘텐츠는 찾기 힘들었다. 등장인물 중 여성은 리본을 달거나 분홍색을 좋아하고 분홍색 옷을 입거나 누군가를 거들고 돌보는 보조적 인물이었다. 애니메이션 속 여성 인물들은 말투나 단어도 유달리 부드럽고 상냥했다. 아이들이 주로 접하는 콘텐츠에서부터 성역할은 왜곡돼 있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페미니즘 서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직접 미국의 서점을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현지의 서점은 여성 ‘위주’가 아니라 성 감수성이 풍부한 서적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그림책을 보며 유지은 대표는 북클럽 딱따구리를 구상하게 됐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성 고정관념은 유해하고 폭력적입니다. 성 고정관념은 지금까지 너무 당연시돼왔어요. 하지만 이걸 변화시키는 것이 단시간에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성평등그림책을 접하면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깨치고, 성 고정관념 없이 건강한 생각을 갖고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세상의 편견은 생각보다 아주 견고하고 두껍다. 유지은 대표는 아이들이 그 편견을 뚫고 자라기를 바라며 회사 이름은 딱따구리, 서비스 이름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뚫을 때 내는 소리 우따따로 지었다. 도서 선정과 지도방법 등 준비과정만 1년이 걸렸다.
북클럽 딱따구리에서 제공하는 성평등 그림책 큐레이션 우따따는 양육자들이 직접 성평등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그림책을 제공한다. 3~7세 아동이 성별 고정관념을 갖지 않고 볼 수 있는 그림책 2~4권과 함께 그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색칠하기, 줄긋기 등이 담긴 워크북을 정기적으로 배송하고 있다.
“성차별의 뿌리는 영유아 콘텐츠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문제는 유아기부터 성차별적인 콘텐츠에 노출되며 성장한 아이들은 왜곡된 여성성과 남성성을 학습한다는 거죠. 스스로를 성별에 따라 제약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역시 마찬가지죠. 아이들에게 가능성과 잠재력 대신 사회의 편견을 심어주는 거예요. 내 아이가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갖고 자라게 하고 싶은가, 양육자들에게 물으면 또 그건 아니거든요. 잘못된 콘텐츠는 가려서 보여줘야 합니다. 딱따구리에서는 모든 아이가 건강한 성평등 의식을 갖고 자라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주로 접하는 그림책 속에는 생각보다 성 고정관념이 심각하다. 주인공의 비율을 따져보면 남자아이, 동물, 여자아이 순이다. 지금 그림책들의 주인공 중 남자아이들을 여자아이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한다면 50년 후에나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을 정도다.
“잘못된 성 고정관념으로 인해 직업에서도 여성이 배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기계적인 성평등은 문제가 될 수 있죠. 하지만 양육자에게 내 아이가 성차별주의자로 자라길 바라는가, 여자니까 혹은 남자니까 못한다는 말이 자연스러운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가 물어보면 그건 아니에요. 성평등이 인권교육 차원인 것만 같고, 한 쪽의 성별만 위하는 것이라 오해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아이들이 성별로 인해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 성별고정관념으로 스스로를 남을 배제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양육자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따따와 같은 성평등 그림책 큐레이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보통 3살부터는 자아를 깨닫기 시작한다고 본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남과 나를 분리하고, 나를 찾는 과정에서 성별을 분리해 학습하게 되면 자칫 성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다.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지만 그만큼 단순하기도 해서 자신이 본 세계,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라 생각해 세상과 스스로를 판단하기도 한다. 딱따구리의 성평등 그림책 큐레이션 우따따는 아이들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 성 고정관념으로 아이들의 잠재력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 우따따의 목적이다.
양육자들은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방법을 잘 아는 양육자는 드물다. 여자로서 고충을 겪지 않기 바라는 마음,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남성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양육자나 갖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바른 성평등 교육을 하기 위해 양육자들에게도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보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집안의 책장 속 그림책의 성평등 정도를 확인하는 ‘당신의 책장은 평등한가요?’ 테스트도 제공한다.
“우리보다 일찍 성평등에 관심을 갖고 교육해온 해외의 논문과 서적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독일, 스웨덴, 영국 등의 성평등 가이드라인이나 성평등·성역할을 다룬 아동문학 연구자료 등을 참고해 우따따만의 기준 17개 항목을 만들었죠. 예를 들면 캐릭터의 설정이나 묘사가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는지,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대사를 하지 않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지 등입니다.”
우따따에서는 국내외 300여 권 중 각 항목에 점수를 매겨 기준을 넘은 책 100여 권을 추린 그림책을 제공한다.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성을 악당, 철부지로 그리는 책도 제외된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고 폭력적인 성향을 남성의 특징으로 묘사하는 것도 성 고정관념이다. 이는 꼭 우따따 큐레이션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이는 양육자들이 바람직한 성평등 관념을 심어주는 그림책을 고르는 팁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건강한 성평등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도 마찬가지예요. 고성이 작은 지역이지만 여성친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제고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모든 콘텐츠가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 아이들은 반쪽짜리 세상에서 반쪽만을 배우고 본인의 가치 역시 반쪽만 알고 살아가게 되거든요. 아이들에게는 반쪽짜리 세상이 아닌 ‘온’ 세상을 알려줘야 합니다.”
유지은 대표가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성평등에서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자 한 단체 관계자는 “워라밸”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워라밸이 이뤄지지 않으면 치열하게 일하게 되고 남성이 여성을 동료가 아닌 일을 방해하는 적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남성들이 가정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성에서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이 이뤄지고 있는가. 또한 아이들에게 바른 성평등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가. 여성친화도시를 준비하는 고성이 반드시 짚어봐야 할 문제다.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