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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숲의 공곶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3월 29일
↑↑ 필자와 강명식 할아버지
ⓒ 고성신문
공곶이는 거제시 일운면 예구마을에 있는 계단식 다랭이 농원이다. 해마다 3월 중순이 되면 바다와 몽돌밭에 어울리는 노랑 물감을 쏟아부은 듯한 수선화 천국을 만든다. 올해부터 3년 위탁 운영을 맡은 거제시가 3월 16일부터 17일까지 ‘제1회 공곶이 수선화 축제’를 열었다.
육지를 뜻하는 곳(串)과 엉덩이 고(尻)가 합해져 ‘엉덩이처럼 튀어나온 지형’이라고 이름 붙여진 공곶이는 70년 전만 해도 그냥 바닷가 산비탈이었다.
진주에 살던 19살 강명식 총각이 예구마을에 사는 지상악 처녀에게 선보러 왔는데, 처녀보다는 공곶이에 매료되어 결혼했다. 마음속에 무릉도원을 꾸민 신랑은 10여 년 동안 객지에서 알뜰하게 돈을 모아 1969년 공곶이에 터를 잡고 재래식 농기구와 맨손으로 다랭이밭을 일구었다. 나무 한 그루로 자식 하나 대학 공부를 시킬 수 있다 해서 ‘대학나무’로 불리던 귤나무를 2천여 그루나 심어 꿈에 부풀었지만 1976년 들이닥친 한파로 깡그리 얼어 죽었다. 죽을 것 같았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져 심은 것이 동백나무와 수선화다. 한때는 종려나무를 심어 꽃집을 상대로 호황을 누렸지만 플라스틱 종려잎 등장으로 또 한 번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동글동글한 뿌리로 노랑꽃을 피운 수선화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두 분을 기쁘게 하고 거제섬을 빛나게 했다. 2005년 영화 ‘종려나무 숲’ 촬영지로 세상에 알려진 공곶이는 거제시가 추천하는 명소 8경의 하나가 되었고, 4만5천 평에 50여 종의 꽃과 나무가 울울창창하다.
↑↑ 동동숲의 수선화밭
ⓒ 고성신문

동동숲의 맨 처음 수선화는 강명식 할아버지가 보내준 것이다.
“고성요? 가까운 곳이네. 내, 언제 한 번 가 보지요.”
전화로 주문한 수선화를 보내면서 들려준 할아버지 목소리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끝내 오시지 못하고 지난해 5월 고인이 되셨다. 꽃도 슬픔을 아는지 송재찬, 이규희, 강원희, 손연자, 최은영, 김정옥 선생 등 동화작가 나무가 소복이 모여있는 곳에 해마다 소복소복 노랑꽃을 피우던 수선화가 올해는 한 송이도 피지 않았다.
나는 공곶이에 가면 할아버지가 몇 살 때 일군 밭인지 금방 짐작이 간다. 내가 돌을 만지고 쌓아 봤기 때문이다. 혼자서 나무를 심거나 축대를 쌓을 때는 공곶이를 생각하고 강명식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그 고독을 생각하고, 기쁨을 생각하고, 꿈을 생각한다. 지금 내가 심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기는커녕 내 키만도 못할 때 죽더라도 오직 심은 것에 만족하리라. 나무는 심는 사람이 자리만 잘 정해 심으면 백 년, 이백 년, 천년도 살 수 있다. 그 꽃을 못 보고 죽는다고 섭섭해하거나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강명식 할아버지가 심은 동백나무가 60년이 되어 하늘을 찌르는 숲이 되고 붉은 꽃길을 만든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 터널이 될 동백길
ⓒ 고성신문

이제 막 10년이 지난 동동숲이 50년이 지나면 60년 동동숲이 된다. 한 뼘 동백나무가 하늘을 가리며 붉은 꽃길을 만들고, 한 줄로 손잡은 맥문동이 사철 푸른 띠를 두르고, 앉은 자리에서 멋진 수형을 뽐내는 때죽나무는 하얀 꽃 터널을 만들고, 진달래는 4월에, 수국은 7월에 사람들을 품을 것이다. 고라니가 실컷 뜯어 먹고도 남을 털머위가 겨울이 올 때까지 꽃을 피우고, 들머리 꽃동산은 서어나무 아래 배롱나무를 품고, 그 아래 함박꽃, 수선화, 백합, 꽃누리장, 박태기나무를 두 팔로 안 듯 품고 있을 것이다. 개울에는 단풍나무, 산복숭아, 산수유가 무릉도원을 이루고 은행나무, 후박나무가 천년의 터를 닦을 것이다. 깊은 골짜기에는 마삭줄과 으름덩굴이 우거져 향기를 뿜고, 9월이면 곳곳에 꽃무릇 붉은 꽃불이 잔디에 불 번지듯 피어날 것이다. 편백숲 차밭을 지나 봄이면 뭉게구름처럼 꽃이 피는 매화밭 꼭대기에는 60년 된 팽나무가 점잖게 자리를 잡고 넓은 그늘을 만들 것이다.
지금 공곶이에 가면 곳곳에 강명식 할아버지가 어른거릴 것이다. 오늘 내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듯, 내 죽은 뒤에 누가 나를 그리워할까 생각하며 동동숲의 공곶이, 자정향실 가는 길 수선화밭을 둘러본다. 소복을 입은 듯, 꽃을 피우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잎이 서럽고 의연하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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