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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남외경의 사람 사는 이야기

내 살아온 거 참 엄첩다 배고픈 사람한테 밥 한 그릇 뜨뜻하게 퍼주는 기 보시 아인가베

이점례(고성읍, 38년 戊寅생 83세)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31일
↑↑ 아직도 손님 상에 낼 음식을 손수 장만하시는 점례할매. 넓은 품새로 야문 손끝으로 얼마나 많은 툭바리에 바글바글 국밥을 끓여 내셨는지, 배고픈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우셨는지….
ⓒ 고성신문
내는,
동짓달 밤 9시에 태어난 괄괄한 범띠 가시나
함안李氏 뼈대 있는 가문의 3남 2녀 막내딸로
일본에서 태어나 7살에 한국으로 돌아온 기라.
친모가 호열자로 마흔 여덟에 돌아가시고
올망졸망 자식들 키워주라꼬 맞은 하동할매
전실 자식들 곱게 여기지 않으시더마.
내 눈시울 촉촉이 젖어있는거 안쓰럽다꼬
십 여년 그 세월을 살아내느라 욕봤으이
서모한테 설움 그만 받으라며 내 열여덟 살 되던 해
세이(언니)가 시집가라 서두르더마.
내 아부지 손끝 짚어 이리저리 살피더니
겨울밤에 태어난 범띠 여식 사주 합 맞춰
진양강씨 어진 잔나비띠 갑도 총각과 맺어주데.

큰언니는 성산이씨 대종손 勢道家 며느리
형부는 초대 도의원을 지낸 알아주는 정치가
하나뿐인 여동생 혼인한다꼬 있는거 없는거
저거 딸 시집 보내드끼 챙기고 바리바리 싸주데.
洋緞 치마저고리에 옥비녀 챙기고
토영(충무) 螺鈿漆器 촘촘한 자개농에
채이짝 만한 광어를 온갖 고명 올려 찌고
온동네 노놔무도 남을 떡시루가 한 구루마
귀한 물건, 맛난 음식, 고급진 옷가지며 패물 고리고리!

첫아 낳았더마 동구쟁이 홍합을 한 빨티기
미역을 세 접으로 켜켜이 쌓아 몇 단을
쇠고기 뒷다리를 통으로 싸보내 주더라꼬.

↑↑ 빨간바지 남색바지 깔맞춰 입고는 손에 손잡고 바다며 산으로 항꾸네 다녔던 영감님, 먼 길 혼자 떠나시고
ⓒ 고성신문
둘째아들인 내 신랑 법 없이 살 사람이라
믿고 보고 따르며 시집살이 하는데
묵고살기는 도시가 아무래도 낫것지
부산 동래에 가게 하나 얻어 보증금 걸었다쿠더만
맘이 우째 변했는지 이카더라고.
“번잡한 도시는 사람 살 곳 아니더마
산 좋고 물 맑은 고향서 자식 낳고 삽시다.”
신랑 말씀 쫓아서 시골살이 하는데
돌아서면 쌀 떨어지고, 한 밤 자면 나무 떨어져
뒷산만 민둥산인가, 내 머리밑도 내려앉고
쌀뒤주 딸딸 긁어도 굶기를 밥 묵드끼 하니
자식 키움서 살아갈 방도가 걱정이 태산이더마.
신랑은 일꾼도 안 되고 글꾼도 아님서
을라 베개 뭉치만치 나뭇단 구불티리 놓고
“지게 벗어 놓고 왔으니 저만하면 됐제?”
그기 말이든가, 글이든가, 나뭇단이든가
내는 잘 사는 친정서 기리븐 거 없이 풍덩풍덩 살다가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서 삼베 시집 설버 죽것대.

그래도 우짤끼던고? 식구들 멕여 살리야제
고성에 새시장이 생긴다는 소문 듣고
돌아서면 궁디가 맞닿을 부엌만한 자릴 구해
식구들 입에 풀칠 할라꼬 장사를 시작했는기라.
뭐를 팔꼬 머릴 쓰던 참에 신랑 친구들이 하는 말,
“다문 탁주라도 한 말 받아노코, 아구국을 끼리라모”
바다서 건져도 안묵고 내삐리는 아코(아구)를 얻어와
무시 떰벙떰벙 썽그리 넣고
돌미나리 한 줌 빠자서 술국 끼리주니 잘 팔리데.
아구는 마이 날 때는 천지삐까리로 쌓여도
안 잽히모 재료가 떨어져 장사를 몬하는기라
돼지국밥을 끼리기 시작했는데 한 날 손님이 이 카데.
“고성장에 곳곳마다 소를 잡는데 식당이 없소,
갈비탕과 불고기를 팔모 장사가 잘 되끼요.”
그래서 또 메뉴를 바꾼기라.
내는 친모를 일찍 여의어 음식을 배운적 없어도
그래도 손맛 내림이 있었던갑데.
내 손이 거치모 생풀이파리도 숨이 죽고
양념 별거 안 넣어도 맛이 좋다카이 신이 나데.

↑↑ 영감님과 알콩달콩 국밥 끓일 재료를 손질하던 그 때가 그리워 눈가가 촉촉하시다.
ⓒ 고성신문
줌치에 돈이 쌓이고 금고에 통장이 늘어났어도
그거이 어디 내가 잘해서 그렇나,
곳간에서 인심 나고, 인심 풀면 사람 끓는 이치
내거 묵고 안 좋다쿠는 사람 없는 이치제.
내 세이가 아부지한테 논 스무마지기 사 디리고
오빠들 잘 챙기달라꼬 서모한테 간청 넣어도
배태도 못해본 서모님 한 몫 챙겨 가삐리시데
혼자 되신 우리 아부지
나락 깻단 묶어 놓으모 내 집에 오시고
모내기 끝내 놓으모 내 식당에 오셔서 우시더라.
참 내~ 한 재산 앵기 가이고 훨훨 떠나 보내놓곤
와 그리 몬 잊어 그리워함서 애태우시던가.
딸자석 간이 휘뜩 뒤비지는 줄도 모리고
남녀가 맺은 인연 우째 그리 동앗줄처럼 찔기던가.

고성 천지 내 술 공짜 안 묵은 사람이 없다.
줌치 닳도록 뒤비도 백원 한닢 없는 영감님들
돈 떨어지모 위장도 빵구난거 맨치로 허축한기라
어깨죽지가 절인 배추이파리로 쳐져있는 거 보모 안다.
“퍼뜩 오이소, 외상술 한 잔 하고 가시라” 청하모
몬 이긴디끼 한 쪽 궁디만 걸상에 걸치고
쪽쪽 빨아댕기는 목울대에 탁주 넘어가는 소리
그기 노랫소리 보다 듣기 좋다 아이가.

24개 동네 구장들 모이모 ‘니가 내라, 내가 내꾸마’
서로 미루고 말씨름 해샀다가 고마 가삐데.
다음 장날 만나모, “자동양반, 계산 좀 해 주소”
아무도 돈 안 내고 가싰는기라요. 청 넣으모
“와, 줄라 쿨 때 받지요? 내가 낼 차례 아이요.”
내는 입 없어서 욕 몬하는 줄 아나?
명색이 함안이씨, 내 입 베릴까봐서 안 한다.
하모, 장사는 양반이 해야 된다. 상놈 버릇떼기 고칠라쿠모
썩은 물(숙성된 탁주) 묵고 썩은 행사 하고 댕기는고?
내 큰소리로 자동양반 발뒤꿈치에 흉은 못 봐도
내 속에 저울은 눈금이 萬個라. 늬들 속 다 디다본다.

내 술독 비우던 영감님들 다 돌아가싯지만
내가 그때 그만치 술이야 밥이야 흐치(흩어) 놨으니
아직 인심 안 잃고 이러코롬 사는 기라.
내가 손해 좀 보모, 세상이 다 화평하고 웃음 나는기라.
간데족족 야박하다 소리 안 듣고 살았으이
말도 몬하게 옌날 뽄대로 살다간 우리 세이(언니)
내가 그 뽄을 다 보고 사는갑네.
지차(之次)들은 모리는 것들 내 세이는 다 알디라.
우뜬(어떤) 년들은 손꾸락 사이에 넣어놓고
손톱 저미듯이 얄보드레 종잇장처럼 괴기를 썰어도
내는 안 그란다. 뭉턱뭉턱 썽글어 넣는다.
음식이 얇으모 사람이 빈축해 보잉께네 그 짓을 와 할끼고

한번씩 개럽(성질)이 나모 내 영감한테 퍼 붓다
“내 너거집 하인이고 종이다. 엄청시리 부려뭇다 아이가.”
지금까지 큰 일 있으모 약방에 감초같이 다 써 묵고
내 손 팔아 일 다 쳐 냈다. 만 가지 손재주 있지.
웃각시 상각시 다 따라 다녔다.
시어마씨 뭔 일 있으모 날 부르시더라.
새삔(절편)도 내가 담으모 이삐라 카시고
빨래도 다림질도 바느질도 내 손끝 야물다 카시고
하이고, 우리 갑도(내영감)는 아무것도 볼끼없다 카심서
내 한테 이것저것 다 시켜 잡수시더라.
내는 마 그 말씀이 고마버서 히히죽죽 웃었다.
내 뼈마디 닳고 닳는 줄도 모리고
내 손가락 지문 다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모리고
신명 나서 쌔빠지게 일만하고 살았다.
풍상을 저끈(겪은)거는 말도 몬한다.
인생사 만 가지 것을 흩고 줍고 하는기라 캐도
내 한 몸 개미처럼 살았는데 뭔 말 더 할끼고?

↑↑ 마암면 멋쟁이셨던 작은오빠, 낚싯대 내려놓고 온 종일 앉아계신 저수지를 찾아 말동무 해 드리던 날, 볕은 참 좋았소
ⓒ 고성신문
사람이 치 쳐다보모 한이 없는기다.
사람은 밑으로 내다보고 살아야 맘이 편한기다.
삼대 부자 없고 삼대 거지 없다 캤는데
지 먹을만치 벌면서 건강하게 살모 그기 최고다.
성질난다꼬 함부로 손 놀리다가 툭바리(뚝배기) 깨모,
머슴한테 우사(창피) 당하고 사타리 딘다(데인다) 안 카나.
그릇도 다 지 죽을 날 있다캐도
김치보시기 한 개라도 단디 챙기고 존데 쓰무야지.
내가 은자 팔십이 넘었는데
아즉질에 장사하고 저녁에 집에 가모 섧더라.
큰아는 친구 따라 강남 갔는지 꼬랑지도 안 보이고
손녀딸아는 뭔 알바를 하는지 껍데기바를 하는지 없더라.
내 혼잣말로 씨부린다 아이가.
옛날에는 해 지모 집에 들어오는기 음전한 법도지만
요새는 집에만 있으모 왕따 당한기라 쿠데
밖에 나갈 곳 있고 만날 사람 있어야 좋다쿠데
사람도 세월 따라 살아야제
내는 텔레비전 봄서 마이 깨우친다. 늙어도 자꾸 배워야지.
손님 대접 하는 법, 음식 맛 내는 법,
손녀캉 잘 지내는 거, 아들캉 맘 맞추는 것도 배운다.

내가 사남매나 낳아 키아도
안즉 상견례 같은 상견례 한 번 몬해 봤다.
저거들이 모두 홀목(손목) 잡고 와서는
“우리 결혼합미더. 허락해 주이소예~”
내사 사돈 따져보지도 못하고 자슥들 영대로 따랐다.
넘들은 내를 ‘모재기(모자반) 왕봉알(큰알갱이)’ 같다 캐사도
오데 자슥 이기는 부모 있더나?
그래도 네 명 모두 건강하고 손주들 낳아 잘 키우고 있다.
큰아가 돈 좀 깨 무도 내는 이리 생각한다.
‘이기 자식 명줄 이사(잇)는 기다. 돈 대신 바꾼다’
큰아가 오지랖 넓어서 넘 사정 봐주다가 빈지갑 차도
‘그래도 남의것 빼끌어 오는 것보담 뺏기는기 낫제’
큰 딸은 화가로 그림 잘 기리제, 어르신들 글 가르치제
둘째 아들은 공무원인데 우째 그리 야물고 단단할꼬
메누리는 요양원 복지사로 노인들 돌본담시로
쌍디 머스마들을 한차반에 낳고 다 키웠고
막내딸은 야물고 매착에 살림 따숩고 고운기라.
내 자슥들 큰 자랑은 없어도 자잘한 자랑은 하고집다.

한 날은 아들이 반술이나 돼서 하는 말
“옴마는 우째 그리 군민들한테 인기가 좋소?”
와 그런 말을 하는고?
“제가 건강식당 아들임미더 캤더마 손을 덥썩 잡디요.
아이고, 내 그 댁 덕 보고 살았소. 고맙소!
모친께 효도 하시게. 장사할 할매가 아이요” 합디다.
하모하모 그래야지.
‘시장통에 장사하는 할매가 너거 어메가?’
이렇게 되받는거 보다 낫다 아이가.
살다보모 오만떼만 풍파를 다 겪는게 인생살이 아니더냐.
나이가 든께 이런 말 저런 말 다 듣는거
감사히 받아들여야 안 되긋나.
욕심내모 사는기 피곤타.
내 손에 있는거 양심껏 퍼 주고
준거 만큼만 받고 살모 편하고 좋은기다.
많이 가지모 그거 지킨다꼬 내도 넘도 안 편타.

내 영감 3년간 치매로 고생하다가 82살에 가싯다.
6.25참전 유공자로 산청호국원에 모셨는데
‘내 죽어도 니 따라 안 갈끼다.’
그 말 취소다.
볕 바르고 잔디 푸르고 비석 있고 땅 좋은데
돈 주고도 못 사는 그 자리를 마다하고
내 갈 곳이 어디던고?
그래 내는 갑수영감 옆에 나란히 묻힐란다.

내 걸어온거 만리장성 맨치로 길고 멀어도
뒤돌아서서 가만히 치다본께네 한 세월이 금방이다.
내 지내온거 야시볕이다.
내 살아온거 참 엄첩다.

 
ⓒ 고성신문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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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가방
걸죽한 인생살이.....
하염없이 고생길 따라 헤쳐온 한평생이 이토록 장해보입니다.
그 어머님은 손큰 고생속에  두루 나눔을 하시면서 복받으신거네요.

남외경 작가님께서 맛깔나게 잘 정리해주신 세상살아가는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01/03 00:2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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