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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남외경의 사람 사는 이야기

문해학교 만학왕에 동시 창작상도 받았소 속울음을 노래로 읊으며 살아온 세월, 바람같이 날아가삣소

정의두(89세, 거류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20일
↑↑ 집 앞 묫등옆에 작은 나무 의자를 갖다놓고 앉으셨다. 저 햇살을 여든 아홉 해째 보고 있지만 마음은 어린 날 고향집 마당가를 서성인다.
ⓒ 고성신문
샛노랗게 은행잎비가 내리는 길을 달렸다. 억새들은 하얗게 머리를 풀고 늦가을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있었다. 엊그제까지 그득하게 들앉았던 벼들을 베어낸 들판은, 커다랗게 말린 마시멜로(볏단을 둥글게 감은 하얀 비닐) 차지다. 오늘 만날 모친은 어떤 말씀을 들려주실까?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웃집 할머니와 두 분이 고구마를 드시는 중이셨다. 나도 덥석 고구마를 베어무니 목이 메였다. 아흔을 한 해 남기고 돌아가신 내 할머니 모습이 보여서이다. 어떤 시인께서 ‘나를 키운건 8할이 바람’이라고 하셨는데, ‘남외경을 키운건 8할이 할머니’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정의두 님)
내곡마을 정의두는 마당 안의 창포처럼
귀하고도 어여뿌고 조신하게 자라났네
삼을 삶고 껍질 벗겨 꾸드레레 마르며는
한 가닥씩 물팍우에 또르르르 말고 말아
삼베솔로 빗어내고 베북으로 위아래로
옆집 둘레 앞집 순례 동무동무 우리동무
생솔가지 태우면서 모기쫓고 시간 쫓네
한 여름날 밤하늘엔 별도총총 잠도총총
물레 잣는 손길들이 점차점차 느려지면
우물가의 두레박에 담가뒀던 물외두엇
니 먹어라 내 먹을게 사이좋게 나눠먹네
끝도한도 없는 일을 오늘하루 다할낀가
새털같이 많은 날을 하루하루 엮어가네
솜씨 좋은 아기들은 양반댁에 마님되고
엉성하게 베를 짜면 그 신세를 못면할까
온 정성을 온 마음을 베틀위에 모아모아
고단해도 웃어가며 베틀가를 불러보세.

(남외경)
동해면의 끄트머리 막개부락 목섬 안에
어장하던 복만청년 늦장가를 들었다오.
그 동네에 그 해에만 아홉 명의 아들 낳고
딸이 두 명 태어났소 그 하나가 외경이오
이왕이면 다홍치마 증조모님 아들바람
큰아들이 대 이어야 조상님께 면목서제
딸 낳은게 죄 아닌데 내 엄마는 좌불안석
일본에서 신식물을 배워오신 내 할매는
간당구에 주름치마 하얀남방 입혀주며
발걸음도 조심하고 말씨맘씨 잘하여라
날마다가 배움이며 날마다가 솔선수범
어장일꾼 수발에다 많은 식구 건사하는
내 엄마는 종종걸음 마당으로 부엌으로
거들게요 도울게요 제에게도 맡겨주오
우리집의 살림밑천 맏딸노릇 잘할게요
물을 긷고 밭을 매고 갈비 긁고 불을 때고
온갖 것을 쳐내느라 손마디가 굵어지고
끝이 없는 우리집 일 언제까지 해야하랴.

(정의두 님)
쌀곡 안의 암탉처럼 귀하고도 소중하게
금지옥엽 키울때는 남 보이기 아까운데
누구한테 우찌줄꼬 이리주랴 저리주랴
동서남북 개리다가 하필이면 그곳이랴
첩첩산중 상촌부락 고개넘어 넣었던고
열여덟살 되던 해에 편찮으신 아부지가
풀잎하나 똑따더니 점을 치며 혼잣 말씀
나라사정 도는 낌새 아무래도 뒤숭숭숭
전쟁나면 우짤낀고 산속으로 드가야지
그 말씀에 혼삿자리 암말 않고 맺은게지
혼인하고 일년간은 신행이라 친정살이
열아홉살 되던 해에 시댁에서 부름받아
다틀렸네 다틀렸네 가마타고 시집가긴
꼬불꼬불 산속 길을 첩첩산중 고개넘어
시댁이라 초가삼간 여덟식구 살았는데
시어머니 말씀보다 손위동서 무섭디라
땡초보다 맵고매운 시집살이 섧고설워
머슴같이 식모같이 일만하며 살았는데
천씨신랑 내 서방은 군인으로 떠났삐고
제대하고 돌아와도 바람닮은 그 성정은
삼천리라 방방곡곡 떠돌이로 다니시고
어쩌다가 집에 오면 씨앗하나 떨구시데.

(남외경)
초등학교 입학하고 십리 길을 걷고걸어
땡볕이고 바람지고 소나기도 맞으면서
내 할매의 신식 생각 선생님들 의견쫓아
고전읽기 동시쓰기 합창반에 무용반에
책을읽자 공부하자 노래하자 춤을추자
온갖 것을 배우면서 눈치염치 초롱초롱
키 작은게 대순가요 우등생에 모범생에
그렇지만 내 속에는 남모르는 설움있어
의지하고 도움받고 내 할일을 대신해 줄
언니오빠 가뭄깊어 누구라도 있었으면

↑↑ 문해학교 해오름반 공부친구들과 수학여행으로 청와대에 갔던 길
ⓒ 고성신문
(정의두 님)
그럭저럭 사는 것이 세상살이 아니든가
아들낳고 딸도낳고 없는 것도 많았지만
기리븐거 서러븐거 그걸 우째 다말할꼬
먼산 보면 높은 구름 내캉같이 외롭다네
저 세월이 쏜살같이 화살처럼 날아가고
별이났어 전에 없는 별이났어 내 속에도
임아임아 찾지마소 날일랑은 찾지마소
산을 넘고 재를 넘어 가는걸음 천리먼길
대장부가 가는 길에 그 누구가 앞길 막소
오늘이나 소식오까 내일이나 소식오까
한달 두달 기다려도 편지 한 장 연락없네
나비없는 앞동산에 꽃피우면 무엇하리
꽃이없는 뒷동산에 벌이오면 어이하리
나 혼자서 하는 말이 나 혼자서 읊는 말이
오다가다 듣는 귀가 하늘에나 닿을랑가
먼산발치 쳐다보고 달만보고 별만보고
자식새끼 보듬으며 어미맘이 바다닮소
마른논에 물들이고 자식입에 밥들이고
농사짓고 품일하고 새벽잠도 다독이며
내 심정을 읊다보니 노래되고 가락되어
이웃들이 들어주며 웃어주고 손뼉치고
누에고치 실뽑드끼 우찌그리 잘하는공
그 입담에 배웠으면 그 얼마나 잘할낀공
칭찬하는 그 말씀이 애나참말 고맙디요.

(남외경)
어린 시절 건너오고 소녀되고 처자되고
혼인하고 아들 둘을 낳아 사며 돌아본니
할배할매 아배어매 살아오신 이야기를
구구절절 쓰고싶어 이리저리 걷고있소
쓰다보면 할말들이 어찌그리 넘치는지
한바닥은 모자라서 남은얘기 접어두오
언젠가는 그 얘기도 말이되고 글이되리.

ⓒ 고성신문
↑↑ 졸업 앨범 속에 나도 있네. 상장과 수료증을 애지중지 아끼며 보물처럼 싸서 장롱에 깊이 넣어뒀지.
ⓒ 고성신문
(정의두 님)
늘그막에 동네방네 늙은학생 모집하데
거류학교 문해교실 글공부를 시작했네
해오름반 송정욱쌤 점잖고도 정겨우셔
최고령의 나이에도 우쭐우쭐 나섰던 길
나도시인 동시 써서 창작부문 상도받고
열정 많은 만학왕의 감투까지 씌워주데
이 나이가 되었어도 배움이란 좋습디다
느릿느릿 달팽이로 느릿느릿 굼뱅이로
돌아서면 까먹어도 깨우치는 그 재미를
왜 진작에 못했을꼬 다 늙어서 알았을꼬.

↑↑ 남들보다 몇 곱절 굽이진 길을 돌고 돌아 학사모를 썼다. 첫날 학교 문턱을 들어서던 순간, 세상에 있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 고성신문
모친께서는 가락을 잘 읊조리셨다. 문답식 얘기보다는 노래하듯 네음절의 운율을 살려 들려주시는 노랫말이 사무치게 아렸다. 녹음하며 받아적다 보니 내 속에서도 문장이 솟구쳐올랐다. 하여 내 속의 이야기도 중간중간 넣어본다. 정의두 모친께서 건강히 잘 지내시길 간절히 빈다.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이신다는데 우짜지? 걱정이다.

 
ⓒ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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