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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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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요
구본권
아직 봄이 아닌 이의 눈물나는 봄꽃은
가을 골목을 휘돌아 만나는 아득한 훗날의 약속
그대 그리움만으로 하늘이 비워지거든
마른 목 축이듯 겨운 일들일랑
나를 꽃이라 속았다 그리 여기고 가소서
비움과 영속(永續)을 깨닫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경계가 있을까. 봄은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고 어느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오월의 봄이 한참 깊어서, 한낮에는 여름 기운이 느껴질 때도 있다. 이 디카시를 읽으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생각난다. 날씨의 느낌을 뜻하기도 하지만 상황이나 마음이 여의치 못하다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어 왔다.
예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딘 사람도 있다. 꽃이나 나무도 그렇다. 지나간 계절의 단풍이 늦게까지 잎을 떨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화자는 아득한 훗날의 약속, 그리움, 목마름을 단풍잎과 꽃으로 오버랩 시키고 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김소월의 <개여울>에 나타나는 그리움과 원망, 영원한 이별에 대한 불안감 등을 이 디카시에서는 미련이나 집착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잊지는 말아달라고 한다. 라일락 향기가 지나가고 지금은 장미의 계절이다. 윤회가 있다면 사람의 주기는 길고 꽃과 나무는 일 년 단위 거듭 태어난다. 목마르고 힘겨운 일들은 꽃으로 여기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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