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7-01 06:15:56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라이프

할머니가 세상의 전부…참는 법부터 배운 돌쟁이 영주

철 들지 않는 아빠 못참아 엄마 가출
할머니 혼자 책임지는 다섯 가족 생계
명절 다가와도 생활비마저 걱정돼 막막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09월 09일
돌쟁이 영주(가명)는 도통 우는 법이 없다. 영주에게는 할머니가 세상의 전부다.“영주만 보면 참 안쓰러워요. 다른 돌쟁이처럼 떼를 쓰고 울면 차라리 낫겠어
. 저 조그만 아기가 제 처지를 아는지 보채지를 않으니, 그게 더 가슴이 미어지네요.”영주 엄마는 아이가 태어난 후 백일도 채 되기 전에 집을 나갔다. 가장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아이가 생겨도 여전히 철이 들지 않는 아이 아빠를 엄마는 견디기 힘들어했다.여느 젊은 남녀가 그렇듯 결혼 전 헤어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가 영주가 생긴 걸 알게 됐다. 영주 아빠는 앞으로 정신 차리고, 성실하게 살겠노라 아이 엄마 앞에서 몇 번이나 약속하고 다짐했다. 식도 올리지 못하고 작은 월셋집을 얻어 살림이 시작됐다. 한동안은 잠잠했다. 가장이 된 아빠는 나름대로 노력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영주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다. 영주 아빠는 결혼 전으로 되돌아갔다. 아이를 봐서 참고 살아야겠다, 몇 번을 마음을 고쳐 먹었던 아이 엄마는 도저히 못살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족을 훌쩍 떠나버렸다.서른도 되지 않은 영주 아빠는 술을 끊지 못했다. 영주 엄마가 사라진 후 아이만큼은 제대로 키우겠다며 돈도 버는 것 같았고, 금주를 선언하기도 했다. 모두 얼마 못 가 물거품이 되곤 했다. 술을 끊으려 제발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답답해 버티질 못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건 말로 그치기 일쑤였다.그건 영주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영주의 할아버지도 늘 술을 마시면 딴 사람이 되곤 했다. 술을 안 마실 때면 새색시가 따로 없는 사람이지만 술만 마시면 살림살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언제나 술에 절어있는 사람을 써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지 멀쩡한 가족들이 있는 집에 선뜻 도움의 손길이 찾아오지도 않았다. 가족들의 생계는 언제나 할머니 차지였다.할머니의 삶은 신산했다. 허우대는 훤한 남편이라 믿고 결혼했는데 술만 마시면 모르는 사람이었다. 제자리를 며칠동안 지키는 살림이라고는 없었다. 성한 살림도 많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남편이 술을 마신다 싶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두려웠다. 세상살이가 무서워서 도망갈 생각도 못해봤다. 아들 둘을 낳아 기르면서 남편을 건사해야 했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렇다고 살림이 펴는 것도 아니었다. 아들 둘 모두 고등학교라도 제대로 마치면 좋겠는데 자식들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영주 삼촌은 훌쩍 사라졌다가 돈이 떨어지면 나타나곤 했다. 혹시나 어디 가서 굶기라도 할까 봐 손을 벌리면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곤 했다. 남편은 남의 편이었고, 아들들은 엄마에게 기대기만 했다.그러는 동안 몸은 자꾸만 망가져갔다. 배운 것이 없으니 기술도 재주도 없어서 공장에 나갔다. 다리도 불편한 데다 손가락도 쓸 수가 없을 지경인데 제대로 된 검사조차 받을 수가 없었다. 병원비가 두려웠다. 참 모진 세월이었다.그러다 손녀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느리가 자신처럼 살까 봐 안타까웠다. 딸처럼 여기고 살겠노라 했다. 하지만 큰아들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영주 엄마가 집을 나간 후에는 영주를 키우는 일마저 할머니의 몫이 됐다.“지금은 어린이집에 보내니 좀 낫죠. 처음엔 저 어린 것을 맡길 곳이 없는 거예요. 어린이집을 보내려 해도 백일도 안 된 아이를 어디 받아주나요. 이웃 아이엄마에게 맡기고 지인에게 맡겨가며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니까요.”세상을 알기도 전에 고달픈 현실을 느낀 걸까. 영주는 칭얼거리거나 보채는 일이 없다. 할머니는 그게 더 마음 아프다. 엄마가 없는 대신 뭐든 부족하지 않게 키우고 싶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다. 언제나 한 달 벌어 한 달 겨우 먹고 살 정도다. 사는 게 힘들어 전부 놓고 싶다가도 이제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 영주를 보면 그러지도 못하겠다. 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물고 살아야한다. 삶의 무게는 늘 할머니의 손과 다리와 허리를 휘청이게 한다.“어찌 키워야 할까 싶지요. 조금 더 자라서 뭔가 배우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학은 고사하고 고등학교까지 마치는데도 요즘은 억 소리 나게 돈이 든다는데...”퇴근하면 집에 들르지도 못하고 영주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아기는 할머니를 보며 방싯거린다. 영주를 보며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고 잠시 웃다가도 덜컥 걱정이 된다.“다른 가족들은 추석이라고 한 자리에 모일 텐데 우리 영주는 똑같은 하루를 보내겠네요. 사랑만 받고 자라도 모자랄 아기가 참는 것부터 먼저 알아버린 건 아닌지...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지만 명절이 다가오는 것도 반갑지가 않아요.”할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주는 할머니의 등에 작은 얼굴을 자꾸만 깊이 묻는다. 세상천지 마음 붙일 곳이라곤 오로지 할머니뿐인 영주. 할머니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만 같다. 명절을 쇠고 나면 당장 다음달 생활비부터 걱정이다.아이를 다독이는 손길이 무겁다. 풍성한 한가위는 영주네에게서 아직 조금 멀리 있다.* 영주네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실 분들은 고성신문(055-674-8377)으로 연락 바랍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09월 09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