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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가 울면

정대춘 전 구만면장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11월 29일
ⓒ 고성신문
귀뚜라미가 울면 가을이 왔다는 신호이다. 가을이 오면 풍요로움이 있는 반면, 인생은 아름답게 마무리
때가 되었음을 알린다.
어느 가을 초저녁 밤!
귀뚜라미가 곱게 울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달빛이 너무 밝아 달구경 소풍을 떠나고 싶어 옷을 주섬주섬 꿰어 입고 방문을 열어 보니, 그날은 칠성님께서 별을 따다 들판에 뿌려 놓은 듯 온 세상이 아름다운 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무릉도원을 걷는 것처럼 두둥실 떠다니며 밤에 핀 코스모스도 만져보고 철 지난 허수아비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가을 들판 소풍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귀뚜라미가 울면 일손이 부족해 보리를 파종한 다음 벼 타작할 요량으로 추수한 볏단을 서로 맞물리게 하여 원을 그리며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것을 벼늘이라 한다. 그 높이가 족히 4~5m는 된다.
벼늘을 촘촘히 가리면 사이 폭이 좁아 술래잡기 놀이에 안성맞춤이며, 달 밝은 밤이면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벼늘 꼭대기에 올라 썰매 타듯 내려오는 벼늘 타기 놀이에 흠뻑 빠져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게 놀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지금도 가끔 옛 친구들과 허름한 목로주점에 찾아들어 술잔을 기울이며 상념에 젖어 들기도 한다.

요즘은 컴퓨터만 켜면 수도 없이 많은 게임에 책상에 눌러앉아 일어날 줄 모르는 시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죽마고우가 없다.
귀뚜라미가 울면, 새벽녘이 다 되어 아랫마을 먼 곳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부엉이가 마을 대밭 언저리 높은 감나무 가지 위에서 무섭게 울어댄다. 그 울음소리는 어린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무섭게 들려와 이불 깊숙이 숨어들다 보면 벌써 동생들은 이불 저만치 숨어 잠자는 척하고 있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부엉이 온다고 하여 겁을 주기도 했다.

귀뚜라미는 하루 중 초저녁과 새벽녘에 많이 운다. 어릴 적 우리집 귀뚜라미는 새벽녘이 되면 뒤안간 담장 밑 언저리에서 찌리찌리 하고 울면 잠에서 깨어나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렇게 청아할 수가 없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의성어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소리인 것 같다. 한글은 인터넷 공간에서 의태어나 의성어 표현이 탁월하여 그 어떤 소리도 가능하다. 그러나 귀뚜라미 울음소리만큼은 글로 표현하기가 정말 어렵다.

어떤 이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귀뚤귀뚤하고 달 밝은 밤에 이야기한다 하고, 어떤이는 귀뚜르르 뚜르르 타자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하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또로 또로 귀뚜라미 우는 밤, 하고 시적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귀뚜라미 소재로 한 노래가 별로 없다.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최헌의 노래 ‘오동잎’이다.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울음소리……” 이 노래는 가을의 색깔을 잘 표현한 서정적인 노래로 우리 가슴을 짠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그 시절엔 누구나 즐겨 불린 노래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노래이다.
 
그러나 요즘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기가 좀처럼 어려운 환경이 되어 그리움을 더한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하면 왠지 슬픈 이미지 같기도 하여 이제부터라도 울음 대신 노랫소리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귀뚜라미 노랫소리로 바꾸어 불러야겠다.
요즘 지역마다 문화행사로 축제가 빠질 수 없다.
그 중 곤충을 주제로 한 나비축제 반딧불이 축제 등이 있으나 귀뚜라미 노래 축제는 없다. 단풍이 짙게 물든 어느 가을날 귀뚜라미 노래 콩쿠르 대회를 개최하면 낭만이 묻어나는 분위기에 이보다 더 좋은 노래 축제를 찾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귀뚜라미가 노래하면 풍성한 가을을 알리는 소리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계절도 그리할 바엔 우리 인생도 황혼기가 제일 아름다우며, 여유로운 삶인 것 같다.
 
예전엔 황혼기에 접어들면 큰방은 자식에게 물려 주고 사랑방으로 옮겨와 하는 일 없이 노년기를 보내왔으며, 겨울이면 놋쇠 화롯불을 뒤적이며 또 하루해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요즘은 황혼기 사랑 영화도 나올 만큼 노년을 즐겁게 보내는 이도 있는 반면,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통장을 부여잡은 채 자식에게 물려주는 이도 있으며, 금쪽보다 더 귀한 황혼기 30년을 별 의미 없이 보내는 이도 있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황혼기’하면 왠지 나도 모르게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이미지와 서글퍼지는 단어이다.

고사에 의하면 황희 정승은 19세에 장원 급제해 파주 군수로 부임하여 고승을 찾아가 군수를 하면서 지표를 삼아야 할 좌우명을 부탁했다.
고승은 “간단합니다. 나쁜 일은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됩니다.”
그 후 황희 정승은 조선의 탁월한 명제상이 됐다는 일화처럼 우리도 간단하게 욕심을 버리고 매사 즐겁게 살아간다면 귀뚜라미 노래할 때 황혼의 단어가 부정이 아닌 긍정의 단어로 변화될 것으로 생각이 든다.

황혼의 문턱이라는 노래 가사에 “어느덧 세월은 날 붙잡고 황혼의 문턱으로 데려와…아직도 나에겐 꿈이 있으니까”하고 노래를 중얼거리며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어 보니 밤이슬에 흠뻑 젖은 나의 모습과 전혀 다른 웬 할아버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하도 놀라워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니 초저녁 달빛 소풍을 떠난 나그네였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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