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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 왼발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20일
ⓒ 고성신문
오당 방덕자 선생님의 서예 교실에 갔을 때가 여덟 살 무렵이었다. 짧은 다리로 가파르고 긴 계단을 어영차, 오르던 그때의 기억이 선연하다. 건물에 들어서서 1
층 계단을 휙 돌아 오르면 묵 향내가 풍겼다. 빛바랜 건물 내벽과 오래된 창틀 구석구석에 묵 냄새가 앉아 있다가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뛰어오르는 나를 맞았다. 나는 인적이 드물어서 냄새가 고여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그 구둣발에 묵 냄새가 묻어 떠날 텐데 몇몇 어른들만 찾아드는 곳이라 냄새가 편안히 누워있는 거라고.
서예 교실에는 늘 어른들이 계셨다. 조용히 먹을 갈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분도 계셨던 것 같다. 그곳 수학생들 중에서 나는 가장 나이가 어렸다. 아니 유일하게 어렸다. 내가 실내화를 갈아 신고 처음 하는 일은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것이었고, 그분들은 지극히 예뻐하며 인사를 받아주셨다. 내가 자리에 앉아 문방사우를 준비하면 그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의 지도가 시작되었다. 오당 선생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나는 글씨를 썼고, 그분들은 번갈아 가며 나의 자세와 글씨를 살펴주셨다.
그 여덟 살짜리 아이는 이제 스물넷의 청년이 되었다.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공부를 하느라 나는 그때의 일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관내 어느 요양원에 배치 받은 후부터 이때의 추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요양원에서 보낸 2년여의 시간을 잠시 얘기해 보자. 월요일 아침이면 “니가 누고?” 물으시는 어르신들에게 나는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이름을 말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금요일이 되어, “어르신 제가 누구지요?” 하고 여쭈면 “니가 수엽이지.”하고 대답을 하셨다. 그러나 토요일 일요일을 보내고 다시 맞는 월요일 아침이면, 어르신들 대부분이 “누군교?”하고 물어오셨다. 이렇게 보낸 2년 동안, 나는 참 즐겁고 행복한 일이 많았다. 물론 어르신들 일로 가슴 먹먹할 때도 많았지만 그분들과 함께한 시간은 실로 아름다웠다. 학교 다닐 때와 달리 그분들과 함께 있는 동안,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유장하게 흐르는 듯했다. 모난 발길질로 나를 쫓지도 않았고 저만치 앞서서 나를 끌고 가지도 않았다. 따뜻하고 안정된 나날이었다.
늘상 나의 얼굴과 이름은 잊었지만, 그분들의 기억은 가히 찬란했다. 50년 물질을 하셨다는 해녀 박OO 어르신, 6.25 전쟁 참전 용사이셨던 김OO 어르신, 무당으로 한평생을 사셨다는 임OO 어르신도 계셨다. 조근조근, 그분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가늘었지만, 그 옛날을 떠올릴 때 그분들의 인생은 마치 다랑어처럼 힘차게 튀어 올랐다. 나는 그 젊은 기억이 만들어내는 무지개 빛깔의 편린들을 차곡차곡 모았고, 그때마다 진한 감동의 영상을 보고 난 듯한 감회에 빠져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강OO 할머니의 의치를 닦으며 “어르신 이는 누가 가져갔노?” 무심코 뱉었는데, 할머니는 오물오물 볼을 움직여 “내 청춘이 가져갔지.”라고 대답을 하셨다.
“내 청춘이 가져갔지.”
아, 내가 책에서 보았던 그 어떤 시보다도, 그 누구의 명언보다도, 아름다운 언어였다. 나는 담담히 할머니의 의치를 돌려 드렸다. 쉬 가버린 청춘을 대신해서.
요양원에서 복무하는 동안 나는 내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노인들의 소외와 고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노인들의 빈곤 문제를 걱정하게 되었으며, 노인과 젊은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어린 나에게 붓을 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오래전의 그 어르신들을 기억해 냈다. 성함도 얼굴도 전혀 알 길 없는 분들이지만, 그분들은 나에게 점잖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셨고, 조용하게 움직이도록 가르치셨다. 제 물건을 챙길 수 있도록 가르치셨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인과 함께 공부했던 기억!”
그렇다. 이러한 점에서 여덟 살, 서예 교실에서의 경험은 대단히 놀랍고도 경이로운 것이었다. 노인 문제에 대한 나의 고민들이 보다 구체화 되고 자라나는 데 한 줌 흙이 되었다. 이제부터 나의 미숙하지만 다소 실험적인 생각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나는 나의 어린 후배들에게도 이와 같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경험이란 “노인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다. 현재 노인복지 프로그램은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 등의 특정 공간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어린 세대와 만날 기회가 없다. 주민자치센터나 도서관 프로그램의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거의가 연령대별로 진행되고 있기에 세대 간의 교류의 기회가 없다. 나는 ‘어린이와 노인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시선을 돌리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어린이와 노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노인들의 소외・고독 문제를 풀어낼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노인들은 가정 내에서 혹은 가족들에게서 의사결정권을 빼앗긴 지 오래되었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변방에 있다. 그들을 변방에서 이 사회의 어른으로 다시 모셔올 수 있는 길은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노인들의 가치가 어린 세대에게 전승되고, 어린 세대가 노인들의 삶의 양식을 배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나갈 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세대 간의 갈등 역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인들의 지혜를 통해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른발 왼발>이라는 동화가 있다.
할아버지는 연약하고 어린 자신의 손자를 지극정성으로 키우며 오른발 왼발, 아장아장 걷는 것은 물론 온갖 것을 가르친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쓰러져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되고 손자는 슬픔에 빠진다. 그 후 손자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말하는 법과 밥 먹는 법, 그리고 걷는 법을 가르친다. 할아버지가 오른발, 왼발, 한 발씩 떼어 자신을 걷게 했던 것처럼 병든 할아버지가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개인적으로도 감동을 주는 동화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일게 할 메시지로서도 큰 가치가 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극진히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그 사랑을 돌려주는 법이다. 노인들로부터 내리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면, 우리 젊은 세대가 치사랑을 실천하며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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