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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가치와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갑니다”

우간다에서 전하는 선한 영향력…삼산교회 선교사 김철한·김영순 부부
2016년부터 우간다 나카송골라에서 선교봉사
농장 일구고 새마을운동하며 생활개선 노력
어린이 청년 위해 유소년축구팀 만들어 훈련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0년 12월 31일
↑↑ 삼산교회 선교사 김철한․김영순 부부는 우간다 나카송골라에서 새마을운동으로 생활을 개선하고, 유소년축구팀을 만들어 훈련하는 등 가난한 일상에 찌든 마을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 고성신문
반평생 교단에 서며 안정적으로 생활했다. 퇴직 후에는 좀 쉬어도 될 법한데, 휴양지도 아니고 국내도 아닌 우간다로 향한 부부가 있다. 그야말로 부창부수다. 김철한·김영순 씨 부부다.
“오랫동안 필리핀으로 선교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해 왔습니다. 2015년 딸이 아프리카 미래재단 단기선교팀을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한 4개국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이현수 장로님과 인연이 닿았어요. 장로님은 우간다 나카송골라에 대규모 농장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2016년 5월 우간다에 와 보니 필리핀보다 이곳에 저희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싶었어요.”
우간다 엔테베공항 상공에 접근하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예상은 깨졌다. 구호단체 광고들을 통해 봐온 못먹고 못입어 뼈만 앙상하고, 파리가 붙어도 쫓을 힘 없는 아이들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광활한 초원 위로 생동감 넘치는 동물들이 뛰어다녔고, 7만㎢ 가까운 빅토리아호를 스치듯 착륙하며 본 우간다는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수도 캄팔라에서 북쪽으로 120㎞ 떨어진 나카송골라에 도착했다. 12월부터 세 달쯤 이어지는 대건기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낮에는 매우 뜨겁고 메말랐다. 옥수수, 카사바, 고구마 따위를 재배해 식량으로 삼는다. 나무를 베어 숯으로 구워 돈벌이 수단으로 삼다 보니 산에 큰 나무가 거의 없고, 물이 부족한 악순환은 반복된다.
주택이랄 것도 없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고 흙을 바른 건물 위에 풀을 덮어 지붕을 올리고, 바닥은 먼지가 풀풀하는 흙바닥에 거적을 깔고 잠을 잔다. 하루 세 끼 먹는 일은 거의 없고 한두 끼쯤 식사를 한다. 1950년대 태어나 지독한 가난을 겪었던 부부도 경험해보지 못한 열악한 환경이었다.
교육열은 매우 높은 편이지만 정기적인 소득이 없으니 학교는 돈이 생기면 가고 돈이 없으면 못간다. 그러니 초등학교 교실에 17~18살 먹은 청년들도 더러 보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고학력자다. 대학졸업자가 생기려 치면 주민 수백 명을 초청해 동네 잔치가 열린다.
↑↑ 수질이 좋지 않고 건기에는 물이 부족한 나카송골라에 김철한․김영순 부부가 우물을 개발해 마을주민들과 함께 기쁜 마음을 나누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 고성신문
ⓒ 고성신문
“물론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저희 사명이지만 우리나라도 빵이 곧 복음인 시절이 있었듯이 이들의 삶의 환경을 개선하고 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잘 살아 보자는 일념으로 새마을운동을 하며 경제부흥을 이루고 잘 사는 나라가 된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 마을에 새마을운동을 전개하여 이들의 생활 의식을 개혁하고, 마을환경을 개선하고 소득증대를 위한 일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부는 한국에서 배우고 익힌 농업 지식과 기술, 경험을 바탕으로 농장 일을 돕는다. 이웃 주민들의 가정을 수시로 방문해 그들의 형편에 따라 양식, 학용품, 장학금을 지원한다. 구충제를 비롯한 의약품을 나누어주며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마을 단위로 시급한 물 문제 및 여러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현재단에서 나카송골라에 세운 리빙스턴교회, 워브렌지 리빙스턴교회, 글루 리빙스턴교회를 관리·지원하고,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내년에 교회와 학교를 건축할 준비도 하고 있다.
김철한 씨는 진주의 시골마을에서 5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늘 어렵고 힘들게 농사를 지었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농사라 서울농대를 나와 큰 농장을 경영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농촌생활이 다 그렇듯 타지에 유학할 형편이 안 돼 경상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로 진학했고,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 농사가 즐거워 가는 학교마다 텃밭을 일궜다.
선교사역을 위해 우간다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1천15㏊, 300만 평이 넘는 대규모의 농장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하면 저 높은 곳에 계신 이가 어린 김철한의 꿈을 이뤄주신 건가, 싶기도 하다.
1984년 아내 김영순 씨와 결혼했다. 아내는 보건진료원이었다. 1998년 삼산교회에서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교회를 세운 후 부부는 거의 매년 필리핀 선교지를 다녀오곤 했다. 보건소에서 근무하던 아내와 함께 매년 의약품 가방을 챙겨 민다나오의 산간마을로 향했다. 신앙이 깊은 부부는 선교에 뜻을 품었다. 50대 중반 이후 함께 선교지에 가기로 했다. 2015년 퇴직한 김철한 씨가 먼저 우간다에서 한두 달씩 생활하다가 아내 김영순 씨가 2018년 6월 정년퇴임 후 한 달만에 삼산교회의 파송으로 함께 우간다로 향했다.
↑↑ 김씨 부부와 서현재단은 미혼모 가정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염소를 지원하는 등 봉사하고 있다.
ⓒ 고성신문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 하지 않습니까. 구조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어디서 무엇부터 도와야 할지는 참으로 막막합니다. 식량지원,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지하수 개발 및 저수지 공사, 학비보조, 주택개량 등 할 일이 참으로 많아요. 축구 사역만 하더라도 유스축구팀 육성, 각종 축구용품, 훈련비, 축구장 조성, 축구코치 지원 등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부부가 처음 우간다에 발을 내딛었을 때 어디든 축구를 하는 어린이와 청년들이 쉬 눈에 띄었다. 왜 그렇게 축구를 좋아하냐 물으니 “우간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축구로 해소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철한 씨도 축구를 좋아한다. 한마음축구회의 전신인 고성군50대 축구회 창립회원으로 지금껏 축구를 즐긴다. 우간다 사람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가난과 억압으로 찌든 일상의 고통을 해소하는 일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축구장을 만들고 축구대회를 열었다. 유소년팀도 만들어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나올 때면 한마음축구회, 고성축구인들과 축구협회가 유니폼과 축구화, 축구공 등을 챙겨준다.
농장구역 안에는 농고마을이 있다. 55가구에 400여 명의 사람들이 아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부부는 우리가 가난에 허덕이던 시절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새마을운동을 떠올렸다. 주민들과 만나 새마을운동을 소개하고 마을환경개선, 소득증대 방안을 의논했다.
보건진료소장으로 퇴임한 아내 김영순 씨는 농장 안에 간이진료실을 만들어 농장 일꾼들뿐 아니라 이웃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우간다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양식도 구하기 힘들어진 이웃들이 생겨났다. 부부는 그들을 위해 옥수수가루를 나누어주기도 한다.
“2016년 우간다에 처음 온 이후 주위의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며 여러 일들에 관여하게 됐습니다. 선교사로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를 건축하고 성도들을 보살피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더욱 힘쓸 것입니다. 나아가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며 우리의 이웃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고성신문
김철한·김영순 부부는 얼마 전 한국에 두 달 남짓 머물다 지난 21일 우간다로 돌아갔다. 코로나19는 우간다도 휩쓸고 있다. 하루 600여 명의 확진자가 나온다. 검사수 자체가 워낙 적으니 얼마나 감염됐는지 알 수도 없다. 확진자가 나와도 치료는커녕 격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한국에 더 머물면서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보는 게 어떠냐 했다. 그러나 우간다의 이웃들, 특히 어린이와 젊은이, 그리고 우간다에서 부부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도저히 그냥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웃들의 선한 눈빛이 떠오르니 한시라도 바삐 우간다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짐보따리에는 급한대로 마을에 전할 마스크를 챙겨넣었다.
김철한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드는 생각이, 아이들에게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축구공, 유니폼 같은 선물이든 공부하고 놀 때 쓸만한 장난감이든 좋으니 도움의 손길이 짐가방에 함께 실렸으면 어떨까 싶다.
“코로나의 회오리 속에 이제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옵니다. 저희도 40년 가까이 고성에 산 고성사람으로서 모든 고성군민이 행복하게 사는 고성군이 되기를 늘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고성군과 고성군민께서 저희로 인하여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열악한 아프리카에도 관심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저희뿐만 아니라 고성군민 모두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신축년 새해 소띠해를 맞이하여 빨리는 아니더라도 소처럼 우직하게 참다운 가치와 목표를 향해 나아감으로 소원 성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0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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