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그리는 그림 ‘자수’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0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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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도 저물어 간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연말 분위기가 무겁다. 꼬박 1년에 이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잡기에도 감염 확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 16일부터는 하루 확진자가 닷새 연속 1천 명대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10월 중순,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잠시 완화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하향조정으로 반짝 회복세를 보였다. 관내 문화센터들은 코로나 확진자 발생을 염려하여 선뜻 개강을 못했다. 고성도서관측은 빠른 조율 작업으로 연기했던 문화강좌를 먼저 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동안 심신이 지치고 우울했는데 마음의 빗장이 열리며 가슴이 트였다. 문화강좌 중 ‘서양자수로 소품 만들기’ 수업을 신청했다. 학창시절에 배운 적이 있는 자수는 손끝으로 느껴지는 설렘 그 자체였다. 자수(刺繡)는 천에 실을 매개로 하여 어떤 형태나 문양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수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 후기인 BC400년경 유목 생활을 하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비로소 일정한 장소에 정착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유래되었다. 그리하여 인류가 실을 만들고, 실로 짠 직물이 나타나고 옷을 만들어 입는 생활을 영위했을 무렵 옷을 꿰맨다는 단순한 작업에서 시작됐다. 그 이후 씨족사회에서 부족연맹 사회로 탈바꿈 하면서 원시 문화가 형성되었고 계급차이와 부족이 표시로 옷에 간단한 문양을 수를 놓으면서 자수의 미의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근래에는 실용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장식적이며 상징적이고 감상적인 면으로 발전하고 있다. 좀 더 빠르게, 좀 더 많이, 좀 더 효율을 요구하는 현대 기계문명시대에 손 자수는 외면 받는 공예일지 모르지만, 실과 바늘로 그려낼 것들을 상상하는 일은 즐겁고 두근거린다. 열 체크, 손 소독, 마스크착용, 지정석 앉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며 수업에 임했다. 자수에 대한 열정이 엄청난 강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이 중단되는 변수를 걱정하며 활용할 수 있는 기법은 세세하게 좀 더 많이 익히게끔 최선을 다했다. 동양자수보다 간단하다는 서양자수의 스티치 기법에는 새틴스티치, 체인 스티치 등 100종 이상의 것이 있다. 자수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 매우 접근하기 쉬운 수공예로 흥미로운 예술이다. 수를 놓고 싶은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그린그림을 실로 물들인다. 웬 걸 오랜만에 놓은 자수는 삐뚤빼뚤 내 멋대로 실수투성이다. 하지만 마음을 다해 실과 바늘로 그리는 세상에는 끝없는 상상이 펼쳐진다. 자신만의 아름답고 개성 있는 색깔로 물들이는 과정은 평온함과 기쁨을 준다. 손끝에서 새 생명의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고 나비가 날아든다. 꽃을 수놓고 빈들에 꽃 한 송이 피워낸 양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이따금 눈이 침침하고 은근히 어려워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마침내 자수가 완성되고 수틀에서 분리하는 순간 기분은 극에 달한다. 시작부터 완성까지 다양하고 소중한 경험을 줄 수 있는 자수는 정말 매력적인 작업이다. 6주간의 수업이 무사히 끝나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런데 얼마 못가 전국 각지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면서 다시 일상에 제약이 커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다시 길어졌다. 스티치로 하나하나 천에 옮기는 것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여 욕심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잠시 비워본다. 비교적 쉬운 스티치 기법으로 손쉽게 접근하여 소소하지만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소품들에 애정 가득 생활자수를 담아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을 만들어 보았다. 주제는 좋아하는 꽃들이다. 수놓을 대상에 겉 그림을 그리고 한 땀 한 땀 시를 쓰는 마음으로 수를 놓는다. 자주색 목련 도안을 본 뜨고 수놓아 와펜 브로치를 만들고, 우드비즈소재를 접목해 자수실로 감싸는 스텀프워크 기법으로 빨강 열매 달린 주목가지 자수머리핀, 쿠션커버는 붉은 토끼풀 자수, 앞치마에는 밝고 강열한 해바라기 꽃 자수, 과꽃 자수는 냅킨 링에, 오래된 스카프에는 동백꽃자수를 연출하여 새 숨을 불어넣고, 컵 받침 세트는 추억을 불러오는 은행·단풍잎 낙엽을 수놓고, 자주달개비 꽃수를 놓아 주머니가방을 만들고, 반제품 원형머리끈에는 딸기 자수를 놓아 손녀 다윤에게, 귀여운 제비꽃 평면자수를 놓은 손거울은 딸에게 선물했다. 자수는 회화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에 의해 형상화된다.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변하는 시대에 느리게 수를 놓는 시간은 명상과 같은 치유의 시간도 아우른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0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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