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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친해져야 하는 고령화 사회, 지역이 나서야 한다

인지증 대처 위해 지역사회자원을 활용하는 일본
교토 우지시, 지역사회 참여기회 확대로 인지증 완화
시청·복지센터·병원·지역대학과 지역민이 협조체제
인지증 환자가 인지증 상담, 사회활동 확대로 일상 유지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07일
ⓒ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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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이상한 식당이 있다. 종업원들은 대부분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이다. 이 정도면 ‘이상한’ 축에 못 낀다. 오믈렛을 주문했는데 카레가 나온다. 그런데 주문한 손님도, 손님 앞에 음식을 내려놓은 종업원도 웃음이 가득하다. 누구도 주문을 재촉하거나 다른 음식이 나와도 화내지 않는다. 식당의 이름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다. 대놓고 주문을 틀리겠다고 선언한 이 식당은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직원들이 인지증 환자들이다. 17명의 인지증 직원을 위해 30명의 일반인 스태프가 움직였다. 상설식당이 아니라 이벤트성으로 마련된 식당이기는 하지만 이 식당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이 인지증 즉 치매를 대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 급증하는 인지증에 지역사회가 움직인 일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치매환자의 삶의 질 제고 보고서’에서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회원국의 치매환자수가 2017년 현재 1천870만 명에서 2050년에는 4천90만 명으로, 2.2배 급증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또한 치매환자의 의료비 등을 포함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1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OECD의 35개 회원국 중 치매(인지증) 환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이다. 일본의 인지증 유병률은 2.33%로, OECD 평균인 1.48%보다 훨씬 높다. 2위는 2.25%인 이탈리아, 3위는 2.02%인 독일이었다. 일본의 인지증 유병률은 2027년에는 3.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인지증으로 진단받으면 흔히 간병을 걱정하고, 결국은 요양시설을 택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의료비 상승은 물론 가계 부담과 환자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급속도로 증가하는 인지증 대처법으로 지역사회자원의 활용을 택했다. 인지증 환자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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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인지증 환자 이토우 토시히코 씨
우지시는 차(茶)로 유명하다. 마을 골목길마다 크고 작은 차밭이 있다. 해마다 봄이면 찻잎을 따는 손길이 바빠진다.
3천㎡에 이르는 차밭에는 조금 특별한 일꾼들이 있다. 얼핏 보고는 일손이 부족한 농촌 봉사활동인가, 싶을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찻잎을 따느라 분주한 이들은 인지증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다.
“7년쯤 전에 인지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물론 놀랐죠. 말은 안 했지만 가족들에게도 충격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진단을 받던 당시와 비교해봐도 더 나빠지지 않고 있어요. 아마 복지센터에서 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에 참여하고, 사회활동을 유지해서 그런 듯하네요.” 
이토우 토시히코(75세) 씨는 은퇴 전 금속학 교수로 대학 강단에 섰다. 그래서 인지증 진단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확진을 받았다면 더 악화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침 우지시에서는 인지증 예방은 물론 이미 발병이 확인된 인지증 환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었다. 사회활동 참여기회가 생기는대로 아내 토모코 씨와 함께 참여했다.
체험이나 봉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지증 환자와 가족들은 찻잎을 따면 ㎏당 얼마간의 돈을 받을 수 있다.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녹차 수확, 이후에는 고추, 순무 등을 수확하고 포장하는 소일거리들이 이어진다. 수입이 목적이 아니다. 사회활동 참여와 동시에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기회가 된다.
“남편의 인지증 발병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단지 질환일 뿐이잖아요. 다행히 우지는 다른 지역보다 인지증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폭이 넓습니다. 인지증 환자라는 걸 이웃에게도 모두 알렸어요. 언제든 생길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하니까요.”
아직까지 이토우 씨가 혼자 집을 나가 배회하거나 인지증이 원인인 돌발행동을 한 적은 없다. 자녀들도 수시로 부모님의 집을 찾아 상태를 살피지만 현재 이토우 씨의 상태는 더 악화되지 않고 있다.
이토우 씨 부부는 상담가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의료나 심리 상담은 아니지만, 인지증 환자와 가족들의 걱정과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지증으로 진단받는 순간의 암담함과 가족이 가질 수 있는 부담 등 현실적인 고민들을 듣고, 발병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차분히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지역 내 학교에서 진행되는 인지증 관련 강연에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이토우 씨는 우지시의 인지증 환자 중 제일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사회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지증이 막연하게 두려웠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인지증과 함께 생활합니다. 우지시가 인지증 환자들에게 아주 특별하게 편리한 시설을 제공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인지증 환자도 격리하지 않고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그게 최고의 인지증 복지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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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지증, 적극적으로 관리하면 일상이 유지된다
우지시는 교토 시내에 직장을 두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베드타운이다.
전체 인구 중 25% 이상이 노인인구이며, 인지증 환자의 비율 또한 일본의 평균보다 높은 형편이다.우지시가 인지증 친화 도시로 불리는 것은 시와 복지센터, 의료기관, 지역사회와 함께 지역 내 교육기관의 적극적인 연구와 프로젝트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지시 분교대학교 임상심리학연구소에서는 인지증 환자 사례를 분석하고 심리를 연구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임상심리사인 카즈유키 히라오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인지증 환자들은 물론 지역민들이 불편함 없이 어울려 생활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인지증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히라오 교수는 “인지증 환자들은 확진과 동시에 스스로 심리적으로 사회와의 격리를 택하며 숨어버린다”면서 “그러나 이들을 사회로 끌어내는 것은 인지증 완화는 물론 의료와 복지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 감소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지증 환자의 사회활동 참여기회 확대는 예방은 물론 악화를 막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면서 “현재 우지시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농업체험활동과 상담, 행사참여 등은 뇌에 자극을 주고, 사람과 사람의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분교대학교에서는 우지시와 함께 다양한 인지증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경증 인지증으로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러나 우지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인지증으로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 병원에서 진행하는 테니스교실 등 체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뇌의 기능은 떨어지지만 신체적 활동에 대한 기억은 오래 가기 때문에 우지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전신운동을 할 수 있는 테니스를 택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정보교류와 동시에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한다. 이게 1단계다.
다음 단계는 치매 카페 즉 우지시의 레몬카페다. 지역 내 인지증 환자들은 물론 가족과 일반 시민,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과와 함께 음악을 듣고 즐기는 활동이다. 이 카페에서는 다양한 인지증 관련 정보들이 오간다. 이런 카페는 우지시내에만 7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분교대 연구팀은 카페 운영과 인지증 얼라이언스 구축은 물론 다양한 세미나와 교육프로그램 제공을 통해 인지증 환자들과 가족들을 양지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우지시가 인지증 환자들이 살기 편한 마을로 자리잡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인지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역사회의 비용과 인력, 노력이 투입돼야 하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시와 복지단체, 지역 내 연구기관과 병원은 물론 지역민 모두가 인지증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며 협조해야 합니다. 인지증은 무서운 일이 아니에요. 단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 중 하나입니다. 인지증은 적극적으로 관리한다면 일상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지역사회와 지역민이 함께 대응해야 할 일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에 따르면 인지증 노인의 실종은 2014년 8천207건이었다. 이듬해 9천건을 넘어선 인지증 노인 실종은 2016년 9천869건, 2017년에는 1만308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인지증 유병률이 10%를 넘어선 점을 감안하면 5년 후인 2024년 국내 인지증 환자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종된 인지증 환자가 경찰 등에 발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8시간 36분이다. 현재 경찰은 인지증 노인이 실종된 지 48시간이 경과하면 장기실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인지증 환자의 실종시간이 길어질수록 교통사고, 낙상 등의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커진다. 
취재 첫날 우지시에서는 두 명의 인지증 환자가 실종됐다. 그러나 취재가 진행되는 몇 시간동안 두 명의 실종자는 가족에게 되돌아갔다. 우지시의 ‘인지증 얼라이언스’가 보여준 효과다. 인지증 환자의 배회나 실종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는 물론 지역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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