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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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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그림자 시계
민정순(시인)
재약산 도토리 할머니 따라
산 아래로 조르르 내려왔네
둥근 시계 속에 가을이 가득하네
물 위에 비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어느 한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둘 수는 없을까. 흐르는 물은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어 증발된 물이 구름이 되어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 순환을 거듭한다.
물을 어딘가에 가두어 둔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숲속에 걸어둔 벽시계가 멈추어도 나뭇잎을 방부제에 담가두어도 시간을 붙들어 둘 수는 없다.
시인이라는 존재는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누군가 생각하지 못한 시적인 것을 발견하고 전달하는 사람이다. 디카시를 쓰는 시인은 언어 너머의 시적 형상을 놓치지 않고 이미지와 텍스트로 완성한다.
그리스의 신화에는 시간의 신으로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라는 두 신이 등장한다. 헬라인들은 시간의 개념을 두 가지로 생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자연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은 크로노스, 구체적인 사건의 순간, 감정을 느끼는 순간, 존재 의미의 절대적인 시간은 카이로스로 구분했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용기에 담긴 도토리를 보면서 시인은 물 위에 비친 반영을 통해시간의 흐름을 생각했나보다. 지나간 계절과 현재의 상황과 다가올 겨울을 떠올렸을 것이다. 산골마을의 친근한 모티브에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절묘한 순간을 시인은 굳이 어려운 현학적 표현을 하지 않고 쉽게 공감하는 시적 진실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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