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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남외경의 사람 사는 이야기

남자들의 로망, 고향에 돌아와 연금 받아 자유롭게 사는 삶 가을 햇살처럼 알뜰히도 야물게 속이 찬, 모두가 부러워하는 멋진 삶의 표본

옥치부(1954년생. 회화면 봉동리)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13일
↑↑ 평상에 앉아 수확한 단감을 가리는 중이다. 깎아 먹을 만한 것들은 친구, 형제들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말랭이를 만드는 중이다.
ⓒ 고성신문
당항포로 가는 길은 가을이 깊을대로 깊었다. 동진교를 지나 천천히 달리다 보면 왼편의 바다엔 산빛이 스며 어룽댄다. 잔물결 위에 눈길을 띄우면 가슴 한 끝이 아리다. 저 물결을 바라본 이가 얼마나 많았으랴. 저 바다에서 건져올린 해산물로 식솔들을 먹여살리고, 책과 컴퓨터를 샀으며 집과 자동차를 사고, 전답과 산을 샀을테다. 저 물길은 생명수며 크고깊은 은행이었을테다. 오른쪽으로는 야트막한 산들이 둘러앉아 머리를 바다 쪽으로 내밀고 있다. 산에서 나는 소리 죄다 듣고는 이제 바다에서 퍼지는 소리를 듣는 모양이다.
추수를 끝낸 논에 찌끄레기를 태우는 연기가 매캐하면서 꼬시다. 저 불길엔 야물다 만 볍씨들이 타닥타닥 아쉬워 그을리겠지. 내년엔 꽉 찬 볍씨로 다시 여물겠단 다짐이라도 하는겔까.
옥치부. 내겐 낯익은 이름이다. 페친이신 역사학 교수님이 자주 들먹이셔서 친숙해진 분이다. 충청도 출신의 교수님이 당항포 아깨골에 사시는 동안 좋은 이웃이요, 편한 말벗이요, 고마운 어부漁夫셨다나? 매번 무릎을 치실만큼 어촌살이에 통달한 지인이라며 칭찬의 말씀을 남겨 놓으셨기에 만나고 싶은 분의 명단 앞줄에 적어 두었다. 거기에 덧붙여야 하는게 있다. 어르신들께 어줍잖은 표준어는 안 될 말이다. 가능하면 순수하게 튀어나오는 사투리로 다가가는게 좋다. 일단 내가 먼저 오리지널 고성 사투리를 구사하면 어르신들은 편안하게 답해 주신다. 인터뷰어의 존재가 특별하지 않고, 사투리로 말하는 내 이웃의 누구네 딸 같거나, 건넛마을 아무개의 동생 같을 때 마음 편히 속엣말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
“어디로 가까예? 지금 집에 계시지예?”
“아~~예. 바다를 따라 찻길로 쭈욱 오면 됨미더.”
“그래도 주소 보내이소. 촌길이라꼬 고마 가면 될끼다 싶다가 헤맨적 여러번 있어예.”
“사람 냄새를 퍼뜩 맡으모 될낀데….”
그랬다. 사람 사는 내음을 따라 찻길을 따라가니 눈에 띄는 번지가 나왔고 마당에 들어섰다. 평상에 앉아 감을 고르는 한 남자의 뒷모습에서 간간짭쪼롬한 갯내음이 났다. 도로에 인접한 아담한 단층집과 나란히 붙은 이층집엔 따신내가 솔솔 퍼졌다. 사람 소리에 모습을 드러낸 부인은 후덕한 인상에 웃음이 선했다.
“단감 농사도 짓는가베예. 올핸 수확이 재미나던가예?”
“오데요. 여름에 비가 계속 내려서 당도가 많이 떨어집미더. 그래도 농사 지은거 내삐릴수는 없고 말랭이 할라꼬 가립미더. 큰 것들은 박스에 담아 여기저기 보낼데도 있고 해서…”
“요즘엔 당항포 관광지에 공공근로 안 가시고예?”
“작년엔 좀 했는데 올해는 일거리가 없어서 쉬고 있심미더. 공공근로도 경쟁이 치열해서 계속 하기는 에럽네예. 일 하고 싶은 사람은 여럿인데 일자리는 쪼매 뿐이니 우짭미꺼.”
마당 평상에서 취재에 응하시려 했으나 안 될 말이다. 거실에 마주앉아 넉넉히 문답하고 싶다. 페북을 통하여 들은 바에 의하면, 내 어린 시절 갯가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정치망 어부의 맏딸, 6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나는 갯가에서 자랐다. 대문 앞이 바다였으므로 어린 시절 내 귀에는 항상 물결 소리가 찰랑거렸다. 눈을 뜨면 거기 바다가 있었고,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새벽이면 비린내 배인 가빠(kappa/작업용 비닐옷)를 입은 아재들의 발자국도 파도 소리를 앞세웠다.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숱하다. 해수경을 흔들리던 물결위에 대고 어떻게 해삼을 잡았던지, 갯벌의 낙지 구멍은 어떻게 생겼던지, 요즘엔 왜 공멸치를 볼 수 없는지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나의 궁금증을 낱낱이 풀어주실 내 아부지는 돌아가신지 몇 년, 현존해 계신 어부들의 설명은 아직 해갈의 범위까지 이르지 못했으니 나는 아직도 질문이 수북히 남았다.
“질피(표준어, 잘피)를 제법 보신담서예?”
“하모, 동네 앞 바다에도 질피가 애북 자라고 있데. 을매나 반갑던지. 한동안 바다에서 싸그리 사라져서 우찌된 일인고 싶었지.”
“오염의 바로미터라고도 하는 질피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어 있어예. 질피가 자란다는 것은 바닷물이 그만큼 깨끗해졌다는 기지예. 마산만에서 흘러온 오·폐수가 도안 바다를 거쳐 당항포까지 오염시켰는데, 몇 년전부터 마산 앞바다가 깨끗해지면서 당항포도 함께 맑아진 모양이지예?”
“질피는 쓰임새가 좋았지. 해변에 떠밀려온 질피를 걷어와서 소마굿간, 돼지마굿간에도 넣었고 거름으로도 쓰고, 삼밭에도 꼭 필요했제. 삼밭 옆에 아궁이를 만들어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는 장작불을 때면 수증기가 푹푹 나오는기라. 그 뜨거운 열기를 식힐때도 필요했고 솥뚜겅이 들썩일 때 열리지 말라꼬 질피를 가득 덮었는기라. 삼냄새와 불냄새, 질피냄새까지 섞여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제. 지금 생각하모 그기 마약냄새보다 더 독하고 좋았제. 그 독특하고 야릇하고 까무룩히 장가지는 냄새를 맡을라꼬 온 동네 사람들이 삼가마골로 모여든기라. 모이모 가만 있든가? 누구라도 앞장서서 질피도 걷어내고 삼대도 져다나르고 장작불에 논두렁콩을 끄실려 노나 먹기도 했지.”
“질피 속에 살던 것들이 많았지예?”
“무진장이지. 그 속에 고기들이 알 낳고 해삼, 피조개, 뿔소라, 문어, 낙지들이 살았제. 주꾸미는 갈매기조개 껍데기에 들앉아 있는기라. 암매도 껍데기가 얇아서 주꾸미들이 살을 파 먹고 대신 들어가 살았는가베.”
“저도 기억이 나네예. 아부지 따라 노저어 바다 나가면 쥐치들이 둥둥 헤엄치는거를 봤어예.”
“내가 어릴 때 일인데 울 아부지가 질피 손질을 잘 하셨나벼. 동네 앞에 옴탁하게 패인 바위가 있었거든. 적당한 썰물이 되모 바위에 물이 가피(갇히)는 기라. 불을 피워서 몽돌을 뜨끈하게 달구고 질피도 뜨끈하게 뎁파서 그 물에 넣어 주더라꼬. 해산한 아낙들이 그 속에 들어가 몸조리를 하는기라. 인기있는 해수찜질방의 시초가 그긴기라. 구산면, 영오면에 살던 부잣집 아지매들이 아이를 낳고 우리 동네까지 와서는 그 옴탁한 덤붕 속에 드가서 몸을 찌진다 카데. 요새도 그런거 함 해 보모 좋겠는데 할라쿠모 일이 을매나 많을끼고.”
“보령 머드축제처럼 해수찜질 축제, 이런거 함 하모 인기가 좋을꺼로예~”
“다 옛날 말이지. 요새는 편리하고 간단하고 깨끗한거를 찾으이 에럽고 힘든거는 아무도 안 할라 카네.”
↑↑ 손주 돌잔치에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두 아들이 둘씩 낳았으니 다복하다. 사진 속에 없는 막내 손주는 아직 태어나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 고성신문
세월은 힘이 참 세다.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안고 가 버린다. 어디 사람 뿐이랴, 나무를, 길을, 집을, 논밭을, 지도를, 온갖 풍경을 깎아버리기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그냥 생긴게 아니다. 세월 속을 살아가는 인간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니까.
“어린 시절 이야기 좀 해 주이소예.”
“참~~ 그 때는 부끄럽고 속상했던 기억들이 지금은 모두 추억이네. 회화면 봉동리 1061-5, 지금 이 자리에서 3남 2녀의 맏이로 태어나가, 내가 9살 때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옴마가 우리들 키운다꼬 욕 마이 봤소. 집 앞에 홍합 양식장이 있었소. 어무이가 양식장에서 홍합을 사 오시면 저녁무렵부터 그걸 까서는 당항포 일대에 팔았던기라. 옴마가 다라이에 이고 팔러나가시면 내는 양식장에 가서 피홍합을 사 왔소. 한다라이에 얼마로 값이 정해져서 몇 톨이라도 더 다라이에 담으려고 애를 썼소. 열 다섯이 넘으니 양식장에서 일꾼으로 써 줍디다. 모든 일을 수동으로 할 때라 손이 많이 필요했던기요. 막내이 동생한테 장애가 있어서 옴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는데 열 여섯에 먼저 떠났소.
21살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14주의 기초 훈련을 아주 빡세게 받았지요. 극기훈련, 공복훈련, 생존훈련 등 극한 상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온갖 교육을 받은 뒤 최전방인 강화도에 배치받아 32개월을 보냈소.
제대하자마자 바로 한국철강 쇳물처리부에 취직을 하고, 8년간 중장비를 운전하며 쇳물을 처리하는 기술을 배웠소. 쇳물공장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이오. 먼지나고 덥고 3교대로 운영되고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못견뎌 떠나곤 했수. 나는 가장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참았소. 절박하니까 끝까지 남아서 꾸준히 일했던거요. 이후 한국중공업으로 옮겨 30년간 ‘오버헤드크레인(OHC)’을 운전했소. 쇳물을 운반하여 용광로에 쏟아붓는 크레인을 움직이는 일이라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소. 쇳물을 끓여내는 용광로는 쉬지 않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철저히 3교대로 근무해야 하는게 철칙이요. 어린시절 노동으로 단련된 체력과 정신력, 해병대에서 닦은 인내심과 지구력, 조직사회의 위계질서 등이 내 속에 축적되어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소.”
“정년 퇴직 뒤엔 바로 시골로 내려오셨는 갑네예.”
“내 친구들의 로망이 고향에 내려와서 농사짓고 낚시하며 사는 거 아이것소? 내는 퇴직하는 그 날 바로 보따리 싸서 여기로 와서는 바닷가에 앉았소. 지금까지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낚시를 자주 다녔지만 그 때와 퇴직하고 나서는 다른기요. 예전에는 항상 다음 날 크레인 운전석이 예비되어 있어서 시간이 되면 공장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맘 편히 고향집 마당으로 돌아가는 삶이 시작됐던기요. 직장에 다닐때는 파도소리를 듣던 몇 시간 뒤엔 다시 쇳물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파도소리에서 뒷마당 대숲소리로 이어지는 자연속에서의 나날이 시작된 기요.”
“드뎌 자유를 찾으셨네예.”
“하모 하모, 내 삶이 완전히 내 것으로 되는 순간이 왔던기요.”
“제 페친 교수님처럼 찾아오는 이웃과 친구들이 많으시지예?”
“고향 친구들이 오다가다 수시로 들리고, 옛 동료들, 친척들이 생각나면 뽀로로 달려오고 있소. 내가 바다사리(물 때)를 잘 알고 계절별 해산물 채취 요령을 아는지라 어디에 미역이 자라고, 굴과 바지락은 몇 물에 캐러가고, 가리비와 소라도 어디쯤에 사는지 나름 체득했으이 내 집에 오는 손님은 맨 입으로 안 보내는기라. 어렸을 때 근동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 열두엇이 ‘해변동무회’란 이름으로 지금도 정기적으로 모이는데 내가 총무요. 친구들 로망이 고향에 돌아와서 낚시하고 연금받아 생활하는긴데, 내가 그거를 잘 하고 있으니 붑다삿소.”
“제가 보기에도 참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네예. 표정과 말씀에 다 들어있기도 하고예.”
“내가 하던 일이 정밀 기술을 필요로 하다보이 재취업도 가능하고 지금도 맘만 먹으면 언제든 일하러 갈 수 있지만 내는 여기가 좋소. 쇳물 냄새도 엔가이 마셨으이 이젠 바닷내음만 맡으모 될끼요. 돌이켜보면 내는 한번도 바다를 떠나본 적이 없소. 시간이 나면 오만떼만 곳으로 낚시를 댕깄다 아이요. 몸은 직장에 매여 있어도 마음은 항상 바다 위를 떠댕깄던기요. 고향에 살면서부터 직업병이 모두 사라졌소.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당항포를 한 바퀴 돌고, 논밭에 나가서 농사 돌보고 마당에 온갖 꽃들과 야채를 심어 가꾸고, 선창에 나가서 낚싯대를 드리우거나 갯벌에서 고둥을 줍고, 밤 열시쯤 별 보며 잠드는기 내 일상이요. 배 고푸면 묵고, 놀고 싶으면 놀고, 뭐든지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니 여기가 천국 아니긋소. 지금의 내 삶이 참 평화롭고 좋소.”
둘째 아들이 부친이 하던 일을 이어받았단다. 험하고 어려운 직업이기에 철저한 자기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으로 임해야 하는 일이다. 둘째는 부친의 뜻을 잘 이해하고 말씀을 쫓아 실행하는 중이다. 첫째 아들은 케이블 방송에서 일한다. 손재주가 좋고 천성이 부지런한터라 본인에게 맞는 직업을 택했다.
두 아들이 부친을 닮아 일과 쉼을 구분하여 일할 때는 최선을 다하고 쉴때는 제대로 쉰다. 완벽한 성향의 부친 곁에서 부친을 보며 자랐으니 어련하랴.
↑↑ 23살, 26살 되던 해에 옛날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친구 소개로 펜팔을 나누다가 어떻게 혼인으로 이어졌는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사진 속 젊은 부부는 긴 세월을 두 손 맞잡고 오순도순 걸어왔다.
ⓒ 고성신문
회화면 봉동리에 늦가을 볕이 한참이다. 진양강씨 반성처자 ‘명숙’은 이제 후덕한 몸피의 할매가 되어가지만 오순도순 다정하다. 부지런한 남편, 3교대의 크레인기사님 수발든다고 집 안에서만 맴돌았지만 다복했다. 전자제품을 끼우고 밤과 마늘을 까는 부업도 했지만 평생 돈 걱정 않고 살았다, 쉬는 날마다 부부동반으로 낚시 다녔고, 잠시도 떨어져 산 적이 없는 잉꼬부부였다. 이 부부의 삶을 멀찍이서 지켜보면 뭐라고 표현할까? 가을 햇살처럼 알뜰히도 야물게 속이 찬! 누구나 부러워하는 노년의 멋진 삶의 표본! 제대로 잘 살고 있는 행복한 부부! 이 모든 것을 합해도 부족한 무엇이 있다면 그건 삶의 깊은 의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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