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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남외경의 사람 사는 이야기

평생 물에 손 담고 살아온 내 생, 담에는 공주로 태어날끼라 쿠네요 내 허리는 꼬부라져도 웃음은 아직 안 꼬부라졌다 아이요

김우남 (86세. 상리면 조동리)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09일
↑↑ 장독대옆 해마다 피는 국화는 올해도 여전히 예쁘게 피었소. 우리 집 뒤란 대밭에는 일 년 내내 바람이 와서 윙윙 불다가 어디론지 떠나곤 한다오.
ⓒ 고성신문
언니야, 아이다, 이야!
내는 이야 동생 김우남이요. 내 이름 기억 나우? 내 얼굴은 알것소?
이야 가족 사진을 안방 서랍장 맨 윗칸에 놓고 자주 딜다 보요. 바탕색은 누렇게 바랬는데 윤나는 까만 머리캉 화색 도는 얼굴빛은 꽃같소. 이야는 아직도 젊소. 가족들도 다정하고 보기 아까울만치 사랑스럽소.

가을 볕이 포실포실 참 곱게 내리요.
낮에는 영감캉 생강을 파서는 비료 푸대에 넣어서 집에 갖고 왔디요. 안즉 서리가 안 내려서 끝물고추도 싱싱합디다. 고춧잎이랑 이리저리 훑어서 한 자루 따 왔수. 옆뽈떼기에 조선상추도 싱싱해서 뜯었고, 따문따문 돋은 단배추도 우찌 내삐리낀고? 주섬주섬 걷어 손수레에 싣고 와서는 한 숨 돌리는데 어떤 여인네가 찾아왔데. 집 못 찾아 헤맸담서 인사를 하는데 보니 나이가 솔찮해 보이더라구. 그래 옆에 있던 영감이 이카대.
“내는 영 아가씬 줄 알았더마 아이네. 목소리가 야리야리해서 젊은 처잔줄 알았다네.”
“옴마야, 고맙심미더. 저도 나이는 묵을만치 묵었어예. 반 배나 찼어예”
“반 배가 올마나 되던가?”
“어무이 큰 아캉 비슷할꺼로예?”
“우리 아~를 알던가”
“어무이 얼굴 뵈니 척 나오네예.”
이렇게 이바구가 시작되었수. 읍내에서 직장다니는 집안 동숭이 “형수요, 신문사에서 사람이 가모 함 만나 보소. 묻는대로 편안히 말씀하시면 될끼요.” 이카는거를 내는 덜컥 겁이 났는기라요. 신문에는 내 겉은 촌할매가 아니라 인물도 반반하고 사는기 따땃한 사람이나 나오는거로 아는데 뭔 말인가 싶어 걱정이 되더만요. 또 이것저것 자꾸 물어싸모 답하기 에려븐 것도 있을끼고 괜히 말이나 잘몬해가 영감한테 쿠사리나 들으모 우짤끼던가요.
처음에는 이 아낙이 뭔 말을 할낀고 싶어서 얼굴만 멀뚱히 치다봤는데 말을 시켜서 하다봉께 내도 모리게 말이 술술 나오는기 뭔 조환가 싶소. 옆에서 보던 영감이 “내는 생강 마저 캐 오꾸마” 캄서 밭으로 가삐리디요.

이야,
고향을 묻는데 이야 생각이 더 낫소. 우리는 대가면에서 태어났고 양친이 계셨소.
내가 세 살, 이야가 여섯 살 때 우리를 델꼬 일본으로 갔다 아이요. 읍내에서 같이 일하던 아재가 먼저 돈 벌러 갔는데 한국보다 살기가 수월하담서 불렀다 카데요. 세 살 때믄 뭔 요량이고 눈치 있었을까요. 낯설고 물설은데 갔으이 이야 뒤만 졸졸 따라 댕긴거만 생각나요.
내가 유치원 댕길 때 이야는 학교 갔지요. 글자 배워서 보여준다꼬 칸공책에 그림 그리디끼 연필글씨 쓰던기 어제 맨치로 훠언~~하요. 나이가 차서 내도 학교 간다꼬 이야 손잡고 하얀 브라우스에 원피스 입고 가방메고 가던 기 엊그제 같소. 동생이 또 하나 태어나 여형제가 셋이었소. 일본서 학교 댕길때도 하늘엔 수시로 비행기가 날아댕깃소. 미국캉 전쟁 중이고 언제 뭔 일이 일어날낀가 싶어서 어른들이 걱정하시던 소리가 귀에 쟁쟁 들리는 것 같소.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땐가, 하루는 이야캉 손 잡고 시장에 뭘 사러 갔었소. 자주 가서 낯이 익었던 가게 앞에서 일본 사람들이 신문을 펴들고 울고 있는 거를 보았지요. 뭔 일인지는 몰랐지만 사람들이 모두 슬픈 얼굴로 따라들 울면서 야단인 거를 보고는 물건도 몬 사고 집으로 왔소.
‘일본이 전쟁에서 졌다니 클났다. 미군이 일본인을 놔두겠냐? 닮은 한국 사람들까지 해꼬지를 할찌도 모린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동안 어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서두르셨소. 해방이 되었다 쿱디다. 이야는 몇 달 뒤에 졸업하는데 그 때까지 있다가모 안 될낀가 캐사도, 그기 우찌 되는 말일끼요. 짐을 챙겨서 식구들 모두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소. 이야는 책하고 공책하고 연필을 잘 챙깄고 내는 사탕을 한 줌치 넣고, 인형을 가방안에 챙깄소.
다시 고향 땅에 돌아와 농사짓고 살게 된기요. 군대 갔던 오빠도 돌아왔고 우리 집에 식구들이 벅적거렸소. 이야는 일본에서 공부하던 거를 안 이자삐고 방에 들앉아서 책 읽고 수를 놓으며 어여삐 살았소.

이야,
내는 이야가 맹글어 준 손수건이 안즉도 눈에 밟히요. 옥양목 한쪽 귀티에 벚꽃을 이삐게 수 놓아 줬소. 또 목에 씰키지 말라꼬 빨래판에 문때고 문때서 보드랍게 맹근 목도리에도 제비꽃캉 나비 수를 놔 줬잖소. 우찌 그리 이삐든지요. 친구들이 한번만 해 보잠서 빌리가서는 그림 뽄 뜨고 모양낼끼라꼬 수틀에 끼워서 요리조리 땡기던기 생각이 나요.
이야는 내보다 먼첨 시집을 갔소. 이야는 박꽃맨치로 얼굴이 하얗고 함박꽃맨치로 화안했소. 부산서 무역하는 신사 양반이 가마에 태워서 델고 간거까정 알것소. 어쩌다 이야캉 형부가 오시믄 동네 사람들이 구경오고 야단이 안 났디요. 부산 살다가 몇 년 뒤 일본에 드간다꼬 고향에 오싰단 소문만 들었소. 내도 그 땐 고향 땅을 떠났으이, 이야 얼굴을 못 봤소.

↑↑ 영감 칠순 때요. 같이 손 잡고 오래오래 해로하니 복이 많다고 합디다. 둘이 아프지 말고 잘 지내다가 같이 떠나는기 소원 아니것소.
ⓒ 고성신문
내가 열 여덟살 되던 해에 상리면 조동마을로 시집을 왔소.
신랑은 내보다 세 살 적은 상리중학교 학생이라. 중학생이 뭔 세건이 나서 장가를 갈라캤을끼요? 어무이가 중풍으로 누우시고, 집안에 살림할 사람이 없어서 밥도 올케 못 끼리묵고 있었다 안카요. 집안 어른들이 ‘강우를 빨리 혼인 시키자. 안살림을 차고 살라쿠모 강우보다 나이 몇 살 더 먹은 처자를 찾아서 살림을 맽기는기 옳은기다.’ 캄서 색싯감을 구했다 카데요. 그란데 중학생이 장가를 들라니 부끄럽고 민망해서 한참동안 숨어댕깄답디다. 요새 같으모 서울이든 외국이든 내뺐을낀데, 그 시절에 어디로 갈끼요? 친구집으로 돌아댕기다가 할 수 없이 장가를 들었는디 색시가 뭔 눈에 찼을끼요?
시집을 오니 시어마씨는 누워 계시고, 시아부지는 농사 지으시고, 신랑은 중학생, 시동생과 시누이는 학교에 댕기디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살았소. 사 년 뒤에 시어마씨 돌아가시고, 그 해에 큰 아들 낳고, 3년 뒤에 둘째 아들 낳고, 홀시아부지 10년 더 모시고, 시동생과 시누 시집 장가보내고, 참 바삐 돌아간 세월이었소.

이야,
내가 그렇게 사는 동안 이야 소식은 친정 피붙이한테 들었지요. 여동생은 이야를 몇 번 더 봤다캅디다. 내한테 전해주라꼬 사진 두 장을 봉투에 넣어 보냈담시로, 고성 장날 만난 여동생이 내 손에 잽히주는데 을매나 섧던지 눈물바람이 붑디다. 이야는 늙지도 않았고 형부도 세상에서 젤 멋진 신사로 사진 속에 박아 놨디요. 아들 하나, 딸 둘도 사진 속에 있는기 꼭 이야캉 내캉 동생맨치로 보이디요. 아들은 새까만 교복 입고 조카 둘은 간당구 입고 이야캉 형부 사이에 서 있는거 봄시로 우찌 그리 보고 싶던지요.
형부는 평양출신 이었다지요. 그 때 일본서는 조총련 활동이 많았고 이북 출신들을 북송시키는데 이야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담서 편지를 보냈다 카디요. 그란데 우리 아부지가 ‘시집 갔으모 그 집 식구다. 남편 따라 가는기 원칙이지 어디 고향에 올라 쿠노.’ 단칼에 잘라 몬 오게 했다안카요. 만다꼬 그랬을꼬? 이야도 고향에 와서 살고 싶었을거로. 부모 형제도 보고, 낯익은 고향 땅에서 살고 싶었을꺼로 와 몬 오게 했을꼬?
내가 미안소. 내라도 발 벗고 나서서 ‘이야 고향 와서 살자. 걱정 말고 온나. 농사 짓고 살아도 밥은 묵고 산다. 날품이라도 팔고 소 키우고 살믄 넘들만큼은 살 수 있다.’ 이렇게 말해줄꺼로 내는 이야한테 아무 소식도 몬 전했지요. 내도 시집 식구들 건사하고 묵고 산다꼬 정신이 없었응게. 그 뒤로 이야 소식은 끊어졌다 카디요. 고향으로 편지 한 장, 전보 한 통 없다 카디요. 북송선을 타셨는지, 일본에 남아 계심서 박정하고 무정한 친정 피붙이한테 만정이 떨어져서 연을 끊었는지 몰것소. 그 뒤에 남북이산가족 찾기 할 때 텔레비전에 눈을 박고 봤지요. 혹시라도 이야 얼굴이 보일까 싶어서 눈에 불을 켰지요. 언니야, 동생아, 함서 만나 얼싸안고 우는거 봄시로 내가 이야 만나거 맨치로 울었소. 오빠도 여동생도 그랬다 캅디다.

↑↑ 큰아들 박사 학위 받을 때 식구들이 모여서 자축했소. 아들이 “부모님 감사합니다”라는데 미안합디다. 해 준 것도 없는데 치사를 받아서요. 지 알아서 장학금 받아 공부하여 이리 되었으니 기특할 뿐이지요.
ⓒ 고성신문
↑↑ 아들 결혼할 때 찍었소. 너나할 것 없이 멋 부리고 젤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축하해 주러 모였소. 좋은 날엔 이렇게 모여서 사진도 찍고 얼굴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오?
ⓒ 고성신문
이야,
내는 은자 허리가 굽을대로 굽었소. 동네 할매 중에서도 상 할매요.
그동안 아들 둘은 대학 졸업하고 잘 사요. 큰아는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교수로 지내다가 퇴직했고, 둘째는 울산 현대중공업 퇴직한 뒤에도 불러주는 회사가 있어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소. 양쪽에 자녀가 둘씩이니 내 손주가 합해 넷이요.
우리 집 남정네는 큰 아들 낳은 뒤 군대 갔다오고는, 상리면 조동리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소. 조근조근 잔정은 없지만 점잖고 성실한 사람이요. 마을 이장을 몇 십년 한 것 같소. 워낙에 과묵하고 빈틈없이 처신을 하니 동네 사람들이 일을 자꾸 맡겨서 그린 된 거요. 이젠 영감도 늙었소. 동네에 팔 순 넘은 남정네가 둘 뿐이라서 노인정에 가도 같이 놀 사람이 없다캄시로 자꾸 내만 찾으이 내가 발이 딱 묵깃소. 우짜다가 지청구를 함시로 ‘와그리 내 궁디만 졸졸 따라 댕기요?’ 카믄 ‘좋아서 안 그렇소?’ 이리 받아칩디다. 그람 둘이 웃지요.
엊그제 고매를 파서 박스마다 담아 놨소. 고매는 참 요상타 아이요. 겨울에는 꼭 사람 냄새를 맡을라 안쿠요. 방 윗목에 들여다놔야 안 얼고 숙성돼서 단맛이 안 나디요. 내 고매 맛있게 꾸버서 이야 입에 넣어주고 싶소.
근데 이런 생각도 가끔 든다오. 이야도 은자 이 세상 사람 아닐꺼구마. 내 손가락 계산으로 해도 구십이 되었을낀데. 우리랑 연락 끊긴 60년 동안 어디서 우찌 살았는지 궁금하요. 물어볼 데도 없으이 할 수 없이 저 세상 가서 만날랑가요?

↑↑ 영감님 갑장들과 중국으로 여행을 갔었소. 세상이 참 넓고 희한한 것도 많고 볼 것도 억숩디다.
ⓒ 고성신문
이야,
내한테 말시키러 온 아낙이 이캅디다.
“어무이, 다음 생에는 공주로 태어나이시더.”
“야이 사람아, 와 내보고 그리 말하노?”
“평생 손에 물 넣고 살아오셨네예. 새각시때부터 시모님, 홀시부님 뫼시고 딸도 없이 아들만 둘 낳았으니 누가 설거지 한 번, 빨래 한 번 대신 해 주셨을라꼬예. 이번 생에는 식구들 수발 들며 사셨으니 담 생에는 공주로 태어나셔서 해 주는 음식 드시고, 떠받들려서 손에 크림 바르고 뽀얗게 사시라고예. 얼굴도 이리 고우시고 마음씨도 아름다우시니 담에는 꼭 그리 될낍미더예.”
“내 복에 뭔~”
“아입미더. 이 생에서 착하고 부지런히 사셨으니 담 생에는 꼭 원대로 될 낍미더. 세상 이치가 공평하다 안 카데예? 꼭 그리 되실낍미더. 그리 생각하모 어무이 맘이 좋으실낍미더.”
내 그리 될랑가? 생각만해도 흡족하요. 난중에도 우리 동기간으로 만납시다. 그 땐 우리 서로 잡은 손 놓지 말고 이웃하여 오순도순 항꾸네 삽시다.
장독대 국화 옆에 앉혀놓고 사진을 찍으니 내 자꾸 눈물이 나디요. 인생이 한바탕 꿈이라잖소. 잎새에 맺힌 이슬맨치로 봄이 언제 왔는가 했는데 단풍든 이파리 떨어진다꼬, 새악시인가 했더니 백발이라꼬요. 내도 저 장독대를 빙글빙글 돌다가 평생을 살아온기요. 국화맨키로 향기나던 내 삶은 어느 덧 흘러가버리고 이제는 서리 내리고 겨울이 오는기요. 사람 한 평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긴가요?
근데, 저 아낙은 내보고 와 자꾸 웃으라 카는지 모르것소.
‘어무이, 수줍게 함 웃어 보이소예. 난중에 공주님으로 사실라모 이삐게 잘 웃어야 됨미더.’
이야, 내 웃소. 내 허리는 꼬부라져도 웃음은 안 꼬부라졌다 아이요. 이야도 함 웃어보시오.

ⓒ 고성신문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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