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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운동의 대부 제정구의 발자취를 따라서” 정구야~ 학교 가자아!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13일
↑↑ 아름다운 사람 제정구 기념사업회원들이 지난 7일 제정구 선생 생가부터 고성중까지 등굣길을 따라 걷는 ‘정구야~학교 가자!’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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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7일 빈민운동의 대부 故 제정구 선생이 돌아가신 지 21주기를 맞이하여 아름다운 사람 제정구 기념사업회(회장 이진만) 회원 등 30여 명은 선생이 어릴 적 살았던 고성군의 역사문화 홍보와 선생의 유업과 청빈 사상 계승을 위하여 선생이 다녔던 등굣길을 탐방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번 행사는 대가면 척곡마을에 있는 제정구 선생의 묘소로 이동하여 참배한 한 후 오전 9시부터 선생의 생가에서 시작하여 어릴 적 대흥초등학교, 고성중학교를 다닌 등굣길을 걷는다.
제정구 선생은 경남 고성군 대가면 척정2길 189-91 자실이라 불리던 척곡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곳 척곡마을에는 ‘제정구 길’이라는 새주소가 생겼다. 제정구 길은 척정2길의 명예도로명으로 고성군에서 2017. 4. 18. 청빈사상과 공동체 정신을 계승하고 군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척정2길 1에서 척정2길 189-91까지 1천200m를 지정했다.
선생은 생가에서 3.5㎞ 거리에 있는 대흥초등학교를 6년간 다녔고, 생가에서 2시간 넘게 걸리는 10㎞ 떨어진 고성읍 교사리에 있는 고성중학교를 3년간 다녔다. 선생이 다닌 길을 따라 마을길을 지나 지방도에 접어들고 안전을 위하여 교통정리를 하면서 걷기 시작한다. 이곳 지방도는 1930년경에 만들어진 오랜 도로다. 선생의 어릴 적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닐 시기는 1951년으로 6.25 전쟁 중이었다. 전쟁영향으로 어릴적 병정놀이를 많이 했다고 한다. 옛 등굣길과 지금의 등굣길은 도로포장 등으로 많이 변했지만, 큰길은 별로 변함이 없다. 대가우체국을 지나고 면사무소를 지나면 대흥초등학교가 나타난다.
대흥초등학교는 1939년도에 개교한 오래된 학교다. 어린 정구가 친구들과 어울려 집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3.5㎞를 걸어서 6년간 다녔다니 등굣길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선생의 자서전 ‘신부와 벽돌공’에 의하면 초등학교시절은 놀부의 후예처럼 덩치작은 지독한 동네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도 운동도 싸움도 잘해 모두 전교 1등을 했다고 한다. 아무 거리낌이 없었던 밝은 시절은 6학년 추석이 즈음에 끝나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정구는 장난기 대신 슬픔이 배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어른스러워졌다고 한다.
어린 정구는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시집을 오셨을 때 할아버지가 폐결핵을 앓고 계셨고,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애장을 찾아 시신물을 받아 먹였다고 한다.
또한,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자 당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약단지에 달여 먹였다는 일화가 있다. 할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지만, 할머니가 닥치는 대로 일을 하여 집안을 일구었다고 한다. 척곡마을에는 이 이야기를 적은 기행비가 서 있다.
대흥초등학교에서 다시 중학교 등굣길을 걷는다. 대가저수지 주변 연꽃테마공원 내에는 고성군향토역사관을 짓고 있다. 향토역사관은 문화 및 집회 전시시설로 고 제정구 선생의 커뮤니티센터가 될 예정이다. 지금은 건물 외형공사가 완료되었고, 내부공사와 주변공사가 한창이다. 지붕과 외벽이 철재와 녹이 슨 모습인데 빈티지 건물로 시간이 지날수록 멋이 난단다. 내년 초 준공이 되면 연꽃테마파크, 마동호습지 등 주변 인프라와 연계한 새로운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성군의 생태관광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연꽃테마공원에서 대가저수지 둑까지 960m의 생태탐방로 데크로드가 설치되었고 경관조명도 만들어졌다. 데크로드에서 철새와 수생식물도 관찰할 수 있고 또 주변의 분위기가 저수지와 잘 어울려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지금 대가저수지에는 다양한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저수지 둘레 전체 생태탐방로가 설치된다면 향토역사관과 더불어 새로운 관광지로 변할 것 같다. 주변에는 낚시인들이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다. 이번 걷기 행사에 참여한 회원들은 이 구간의 쓰레기 줍기 등 주변 정화활동을 하면서 걷기와 겸했다.
대가저수지 둑에서 고성읍 덕선리 마을길로 접어든다. 고성중학교로 가는 지름길이다. 들판은 추수가 끝났고, 논에는 흰 곤포짚단이 즐비하다. 고성천을 건너고 기월리 봉림소류지를 지나면 고성스포츠파크 옆에 고성중학교가 있다. 고성중학교는 1951년 개교하였고 선생은 1957년부터 1959년까지 3년간 걸어서 등교하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기가 꺾인 정구는 중학교가 어린 시절처럼 즐겁지 않았다고 한다. 고성중학교를 2㎞ 정도 남겨둔 낮은 산을 지름길로 다녔는데 그 산 정상에서 아침에 도시락을 까먹고는 힘이 생겨 학교까지 뛰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허기가 져서 기진맥진했다고 한다.
이날 등굣길에 참가한 회원들은 생가에서 10㎞를 걸었고 3시간이 걸려 12시에 도착하였다. 중간중간에 다른 활동을 하느라 시간이 좀 더 걸린 것이다. 중학생 정구는 새벽밥을 먹고 2시간 넘게 걸어 학교에 도착했을 것이다. 3년 동안 등하굣길을 매일 20㎞를 걸었다. 중학교 성적은 초등학교처럼 뛰어나지 않았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꿈을 차곡차곡 쌓았을 것이다. 당시는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졌지만, 교육열이 뜨거운 어머니의 권유로 정구는 진주로 유학을 떠났다.
선생은 진주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 청계천 야학교사로 판자촌과 인연을 맺은 후 철거민들을 위한 목화마을, 한독마을, 복음자리를 건설하였다. 이러한 헌신적인 삶으로 말미암아 1986년 필리핀에서 제정한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1992년 14대 총선(시흥, 군포)과 1997년 15대 총선(시흥)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1998년 폐암 진단을 받고 안타깝게도 1999년 2월 9일 56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제정구 선생은 평생을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여 ‘빈민의 벗’, ‘철거민의 대부’라 불린 빈민운동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고 신에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선생이 떠난 지 21년이 되었지만 매년 추모제를 지낼 때는 전국에서 선생의 뜻을 기리는 많은 사람이 선생의 생가와 묘소를 찾고 있다. 또한, 선생이 생전 활동했던 시흥지역에서는 작은자리종합사회복지관, 제정구 장학회관, 경기시흥신용협동조합 등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많은 사업이 아직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정구야 학교 가자아!’ 등굣길 탐방코스는 선생의 어릴 적 발자취를 찾아보는 걷기 좋은 코스였다. 대가저수지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역사를 알아보는 코스로 개발한다면 청빈사상과 공동체 정신을 배우고 더불어 사는 나눔과 생명의 문화사회 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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