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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야 역사 담은 만림산토성 베일 벗는다

24일 만림산토성 정밀발굴 현장 공개
성벽 축조 공정, 발굴 과정, 생활유구 확인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0년 12월 24일
ⓒ 고성신문
ⓒ 고성신문
베일에 가려졌던 소가야의 역사가 드러난다.
군은 24일 만림산토성 정밀발굴 현장을 일반에 공개한다. 이번 현장설명회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고성군관계자 및 지역주민, 학계인사 50명으로 한정해 진행된다.
고성읍 대독리 산101-1번지 만림산토성 발굴현장에서 진행되는 설명회는 발굴조사를 담당한 재단법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하게 된다. 설명회에서는 소가야가 번성하던 시절 대외교류, 해안방어의 중심지 역할을 한 만림산토성의 발굴과정과 진행상황 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이번 현장공개를 통해 소가야 토성과 초기 철기시대부터 남북국시대(통일신라)의 생활유구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만림산토성은 5세기 후반 소가야 전성기 만림산 정상 8~9부 능선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토성은 성벽축조와 관련된 기본 공정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만림산토성은 해발 88m 능선에 축조된 토성으로, 북쪽은 배수장 설치로 일부가 훼손됐으나 기단석축, 남문지, 서문지, 동문지, 집수지, 건물지 등은 비교적 양호한 보존상태를 보인다. 토성 내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편과 삼국시대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 소가야부터 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발굴됐다.
만림산토성은 축조기법 상 선진적이고 독자적인 토목 기술을 적용해 다른 가야지역의 토성과 구별되는 형태로 축조됐다. 송학동고분군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만림산 토성은 고성만 서안에 연접한 독립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위치 등으로 미뤄볼 때 소가야가 세력을 떨칠 당시 대외교류, 해안방어 중심기지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만림산토성은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의 고지성집락에서 삼국시대 소가야 토성, 이후 남북국시대(통일신라)의 토성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시대별 점유 세력의 추이를 간직한 최초의 고고자료”라면서 “소가야 중심지인 고성지역의 역사적 흐름과 전성기 문화를 간직한 유적으로 종합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한 소가야문화의 복원과 국가지정문화재 등재가 기대되는 유적”이라고 밝혔다. 
한편 5세기경 고성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소가야는 금관가야(현 김해시)를 건국한 김수로 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형제 중 막내인 김말로 왕이 서기 42년 건국했다. 고성을 비롯해 사천과 통영 등 주변지역에서도 소가야 유적이 발굴되는 등 그 지배범위가 넓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발굴된 고고학 자료나 기록이 거의 없어 발굴복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 만림산토성 발굴은 소가야 도읍지의 도성 구조를 복원하고 역사적 가치를 재정립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는 평이다. 또한 소가야 전성기의 문화를 연구하고 군이 추진하는 가야사복원에도 탄력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0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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