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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류면 화당리 옛 적진포에 망루 복원 목소리

난중일기 등장 벽방망장 망루터 화당리 소재
토성, 굴항 흔적, 별장 선정비 등 근거
명확한 위치 밝혀지지 않아 군은 회의적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12일
옛 적진포인 거류면 화당리에 망루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성문화원은 이순신 장군이 11척의 왜선을 격침하고 승리를 거둔 적진포 해전이 거류면 화당리 앞바다이며,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벽방망장 망루터가 화당리 끄트머리라는 점을 들어 화당리에 망루를 복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1594년 2월 29일 일기에는 벽방망장(척후장) 제한국(諸漢國)의 긴급보고에 적선 열여섯 척이 소소포로 들어왔다고 해 각 도에 전령해 알리도록 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고성문화원은 ‘적진포 해전 요약’ 자료를 통해 “벽방망장 망루터는 거류면 화당리 소재 망터로 지리산이 60여 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듯 벽방산도 주변 여러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 중 화당리 끄트머리 망터에 망루가 있었다”고 밝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남촌포보가 현의 동남으로 30리에 있으며, 광해6년 현의 남쪽인 도선촌(지금의 통영 가오치)에 세웠다가 11년 적진포에 소모진을 옮겨 세우고 남촌이라 칭했다. 별장이 한 사람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철성지와 고성지의 고적조에는 “적진향은 지금의 남촌이며 현으로부터 동쪽 20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했다. 또한 거류면 화당리의 옛터에는 남촌진이 있었던 주변에 토성의 흔적이 남아있고, 선창에는 굴항의 흔적인 돌기둥 두 개가 남아있으며 화당리 입구에는 ‘행별장김공진국선정비’, ‘선락장군행별장황공응식’, ‘절충장군행별장’ 등의 선정비가 있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화당리에 별장이 파견됐으며 이를 근거로 적진포는 화당리라는 것이다.
고성문화원 관계자는 “심봉근 전 동아대총장과 2013년 12월 남촌의 지표조사를 할 당시 진터와 토성을 비롯해 군선을 수리했던 굴항터의 흔적이 상당부분 남아있었다”면서 “젊은 시절 마을 이장을 했던 지산스님도 지표조사에서 지금의 화당마을 전체가 남촌진이었고 현재 서낭당이 있는 장소 주변에 민가가 있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앞서 고성문화원은 2014년 심봉근 동아대총장을 비롯한 교수, 학자를 발제자로 학술발표 및 토론회를 열어 화당리가 적진포였다는 점을 알렸다.
문화원은 임진왜란 당시 왜선을 격침하며 승리를 거둔 적진포의 역사적 명성을 되찾기 위해 망루 복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군에서는 망루 복원과 관련해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군 관계자는 “망루가 마을 뒷산의 중턱이라거나 거류산이라는 의견도 있어 3년 전 화당리 일대를 지표조사했으나 망루나 병영숙소 등 명확히 밝혀진 곳이 없다”면서 “망루의 위치라도 확인되면 복원이 가능하지만 현재는 계획을 구체화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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