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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의 부끄러움도 역사로 남겨야 한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31일
ⓒ 고성신문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악용하고, 바르지 못하고 교활한 신하를 간신(奸臣)이라고 한다. 역사에 남은 간신으로는 기철, 이인임, 유자광, 임사홍, 윤원형, 김자점, 임사홍, 이완
용, 원균 등이 있다. 그 중 전장에서 죽은 원균을 빼고는 모두 임금 옆에서 호가호위하며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면 역사에서 간신이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서 가장 볼품없고, 가진 권력마저 제대로 써보지 못한 무능한 사람이 원균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을 정도의 권세를 가진 귀족들이었지만, 원균은 임금의 측근도 아니었을뿐더러 전쟁터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은 장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표적인 간신으로 원균을 꼽는다.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간신 원균은 전쟁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권율, 이순신과 함께 1등 선무공신으로 책록된 사람이다.
그런 원균이 어떻게 후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최고의 간신으로 낙인이 찍혔을까? 그것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원균의 악평 때문일 것이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장수가 전쟁에 참여했지만, 특이하게도 원균은 다른 장수들에 비해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전쟁이 끝난 후 평가 과정에서 류성룡이 쓴 징비록을 비롯하여 여러 사서에 원균의 부정적인 행태가 적혔고, 후대 사람들은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원균의 부정적 이미지를 확대하고 재생산했다. 물론 기록의 전후를 살펴보면 원균은 국가와 민족보다는 개인적 욕망을 앞세우는 이기적인 인물이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하여 능력도 없는 사람이 부모의 음덕으로 지나치게 과분한 자리까지 올라갔다. 다행스럽게 이순신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여 크고 작은 해전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던 시기에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궤멸시키는 치욕을 남기고 전사하였다.
이처럼 특별하지도 않고 잘나지도 못한 인물에 대해 특이하게 많은 악평이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불세출의 인물로 평가 받는 이순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럴 것이다. 특히 난중일기에 나오는 원균의 평가는 한심한 정도를 떠나 저질에 가깝다. 군사적 식견도 없을뿐더러, 외모마저 보잘것없는 소인배였다. 그런 원균이 장수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부패한 시국이었다고 하지만 의아스럽다.
그렇다고 원균에 대해 부정적인 기록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남긴 기록도 있다.
사실, 원균은 무인 집안 출신으로 의병장으로 유명한 원균의 동생 ‘원연’을 비롯하여 아들까지 전쟁터에서 잃은 사람이다. 원균의 능력이나 자질을 떠나서보면, 조선 건국 때 공을 세운 조상으로부터, 형제와 자식까지 전장에서 목숨을 바친 애국공신의 집안이다.
또 실록에 적힌 이덕형의 발언을 보면 도리어 이순신이 원균 아들의 공적에 대해 모함한 것으로 나온다.
‘무조건 이순신이 옳고 원균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균에 대해 우리가 일방적으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 승자의 기록에만 의존하여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는 것은 없을까? 한 번쯤 기록의 이면에 숨어 있는 오류는 없는지 짚어봐야 한다.
특히 징비록과 난중일기는 역사를 기록한 사서(史書)이기도 하면서 개인의 감정을 적은 사서(私書)이다.
난중일기의 경우 자신과 사사건건 충돌한 원균에 대해 감정적인 평가가 더해져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보태어 간혹 엉뚱한 상상도 해 본다.
원균이 일기를 썼다면 어땠을까? 사람의 평가는 상대적이라고 했으니 이순신을 모함하여 끌어내릴 정도로 이순신에 대한 악감정이 컸던 원균이 좋은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글이 남아있었더라면 이순신에 대한 평가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원균의 무능함과 간사함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사서(私書)의 함정은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사실, 국민적 지탄은 원균보다는 7년이라는 긴 전쟁 동안 무기력함을 보여준 선조 임금이 받아야 할 것이었다. 비록 원균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순신을 모함한 잘못이 있지만, 왜군의 반간계(反間計)에 속아 이순신을 파직하고 한양으로 압송한 선조의 잘못이 더 크다.
원균의 죽음과 칠천량 해전의 패전에 대한 책임은, 전장의 유불리도 알지 못하고 무조건 출격 명령만 내린 선조에게 오롯이 있다. 왜 그 죄를 원균에게 묻는가? 왜 임금의 출전 명령을 받고 전세의 불리함을 알면서도 전장에 나간 원균이 선조보다 죄가 더 큰 걸까?
원균의 무덤은 고향인 경기도 평택에 있다. 후손들은 천릿길을 달려와 주인의 죽음을 전하고 죽었다는 애마와 함께 원균의 무덤을 만들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평택의 무덤은 원균의 시신이 없는 거짓 무덤이다. 전쟁 중에 경황이 없어 시신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원균의 진짜 무덤이 고성 인근에 있다고 한다. 국도 77호선 인근의 주인 없는 돌무덤이 그것이다. 아직 역사적 고증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원균의 진묘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원균이 패전한 칠천량이 바로 옆이고, 육지에 상륙하여 도망가는 중에 죽었다는 기록과, 죽은 장군의 시신을 주민들이 대충 수습해서 묻어주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와, 이전부터 동네 사람들이 ‘엉규이 무덤’ 혹은 ‘목 없는 장군 묘’로 불렀다는 데서 신빙성을 더한다.
거기에 ‘엉규이’라는 이름도 특이하다. ‘원균’이라는 이름이 ‘엉규이’로 변모되어 전해졌을 것으로 쉽게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엉규이 무덤이 도로 확장 공사로 없어질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아 나섰다.
무덤이 있는 곳은 ‘통영시 광도면 황리 산435’로, 고성과 통영의 경계선인 거류면 신용리에서 불과 0.8㎞ 떨어진 곳이다. 오래전부터 인근 주민들 사이에는 장군의 무덤으로 알려졌지만 제대로 된 표지판 하나 없어 주민들에게 물어가며 겨우 찾았다.
잡초 속에 초라하게 묻혀 있는 무덤을 보는 순간 ‘인생무상’이라는 낱말부터 떠올랐다. 한때 조선 수군의 최고 수장으로 외적 앞에서 포효하던 장군이 이름도 없이 돌무더기 아래 묻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내 조상이요.’하고 알리는 묘비 하나 없다. 묘비 대신 무덤 앞에 꽂힌 ‘93’이라는 숫자와 함께 연고자 신고 및 분묘 이전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기에도 참 민망하다.
세상인심이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장이지만 그래도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이 아니던가? 세상사가 그런 것이겠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그러다 보면 간혹 왜곡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원균의 주검 방치는 너무 무심한 것 같다. 비록 이순신을 모함하고 싸움에 무능한 장군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도 아닌데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것이다.
엉규이 무덤은 지리적으로는 통영에 속해있지만, 역사적으로는 고성과 통영, 그리고 거제의 공동 유산이다.
자랑스러운 승전도 그렇지만, 패전의 부끄러움도 역사가 아니던가. 자신의 무능력과 무기력한 임금의 출전 명령으로 조선 해전사에 첫 패배와 함께 전장에서 달아난 패장으로 기록된 인물이지만, 패전의 아픔도 역사라는 점에서 더 늦기 전에 세 지역이 함께하는 발굴조사와 더불어 역사적 검증을 통해 원균의 주검을 제자리에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엉규이 무덤에 대한 공동 조사를 고성이 먼저 제안하면 어떨까?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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