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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게 가더라도 함께 돋우는 어울림의 미학, 고성오광대

김창후 홍성락 천세봉 명인들 오광대 모임 규합
해방 후 가야극장 낙성식서 고성오광대놀이 선봬
70년대부터 전수교육 실시 지금까지 6만여명 거쳐가
2000년대 전문예술연희단체로 체계화 발판 마련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10월 11일
ⓒ 고성신문
휘적이던 발끝이 순식간에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몰아치던 장단이 잦아들고, 광대들의 재담이 벌어진다. 고성오광대 탈놀이는 민초의 고단한 삶을 걸판진 놀음으로 풀어낸 연희다. 고성오광대는 탈놀이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예술적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 2일 경남도대표로 출전한 제60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 수상의 영예를 가져왔다. 전국 14개 시도는 물론이고 이북 5도의 전통예술단체까지 지난 60년간 이 축제에서 발굴한 단체들 중 단연 으뜸을 인정받은 셈이다. 게다가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기로는 고성오광대가 유일하다.팔도에서 으뜸가는 고성오광대를 이끄는 가장 큰 광대, 예능보유자 이윤석 고성오광대보존회장과 젊은 전승자들에게서 고성오광대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들어본다.

# 제60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대통령상 수상 소감
짧은 시간에 고성오광대의 전승 상태를 보여줘야 하니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요했다. 회원 모두가 참여했고, 고성오광대를 전수받은 문화단체와 대학생들이 축제 현장에 응원차 왔다. 100인 덧배기에서 고성오광대와 함께 한 분들은 물론 현장을 찾은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만들고자 해도 불가능했을 벅찬 감동이었다. 고성오광대는 지역 속에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수의 맥을 이어 전국으로 퍼져있다. 이 사실이 심사위원들에게 전승이 매우 잘 되는 단체로 받아 들여졌다.왕중왕전이라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단체였다. 대통령상으로 호명된 순간 고성오광대를 지금까지 지켜온 모든 이들의 땀이 씻기는 순간이었다.

# 고성오광대의 역사
고성오광대는 1530년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1893년(고종 30년) 고성부사로 부임한 오횡묵의 고성총쇄록에도 기록돼있다. 대다수의 가면극들이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발생연대를 추정해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고성오광대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는 탈놀이다.조선 말에 고성에 괴질이 번져 남촌파 선비들이 고성 서북쪽의 무이산으로 파병을 갔다. 그때 오광대놀이를 놀았다고 한다. 당시 이윤희, 정화경 선생을 중심으로 김창후 선생과 젊은이들이 기능을 연마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고성오광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탈놀이가 단절됐다. 고 김창후, 홍성락, 천세봉 명인은 해방 후 오광대 모임을 규합하고자 했다. 당시 가야극장이 개관했는데 그 낙성식에서 고성오광대놀이를 선보였다고 한다. 다른 지역의 탈놀이가 1950년대 후반 이후 복원되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고성오광대의 당시 낙성식 공연은 다른 지역보다 빨랐다.김창후, 홍성락 선생님에서 조용배, 허종복 선생님으로 세대가 이어지면서도 고성오광대는 영호남 지역 중 가장 원형을 잘 보존한 탈놀이로 꼽혔다. 지금 고성오광대에서 활동하는 50대 이상 전승자들은 조용배, 허종복 선생님의 문하들이다. 조용배 선생님은 1990년, 허종복 선생님은 1994년까지 무대에 섰던 예인들이었다.1960년대 들어서면서 고성오광대 채록작업이 시작됐다. 민속학자 정상박 교수가 대본 채록, 민속학의 거장 이두현 교수가 고성을 오가며 조사했다. 1956년 고성오광대 추진위를 발족한 후 8년이 지나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됐다. 당시 지정 사유를 보면 고형에 가깝다는 평이 있었다. 원형을 잘 지켜왔다는 뜻이다.

# 고성오광대보존회의 체계화
1970년대 들어서는 수많은 경연에서 고성오광대의 실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50년대에는 사랑방에서 연습하던 고성오광대가 자체 전수관을 갖게 된 것도 이 시기다.이번에 왕중왕전을 치른 한국민속예술축제(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과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도 1970년대 초반이었다. 이 시기부터 고성을 넘어 명실상부 경남도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단체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보존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부터는 전수교육을 통해 고성오광대놀이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에게 전통연희를 알렸다.여름과 겨울 각각 10주씩 모두 20주간 전수교육이 진행된다. 대학생은 물론 해외에서도 고성오광대를 찾아온다. 1974년부터 시작한 전수교육이 1년에 보통 1천500명이 전수받으니 지금까지 6만 명이 넘게 고성오광대를 배웠다. 전수회관이 이사하기 전에는 교육관이 좁아 폐교를 빌려야 할 정도였다.2000년대에 들어서는 전문예술단체로서 체계화하는 과정이었다. 전문예술법인, 문화예술법인으로 지정받는 것은 물론 전승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통예술에 나섰다.

# 다른 지역 오광대와의 차이점
사실 모든 탈춤은 대동소이하다. 큰 틀에서 보면 제도나 관습 등 좋지 못한 것들을 바꿔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탈춤이 같은 의미다. 그 속에 지역적 특성은 분명 존재한다. 흐름의 문제다.고성오광대를 복원하고 체계화한 선대 선사들의 하나됨도 큰 덕이었다. 세대가 바뀌어도 고성오광대를 찾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함께 생활하고 대접하고 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후대 전승자들이 선인들의 예를 따르는 것이 고성오광대를 지금의 모습으로 이끌고 있다. 동시에 선인들의 타고난 예능적 역량을 배우고, 예능의 완성 속에서 사람과 어울리는 지금의 오광대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 고성오광대의 지금의 모습이다. 연희적 특성도 중요하지만 오광대를 이끄는 사람들의 예능적 기질, 사람을 대하는 예와 인간적 면모들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고 본다.

# 고성오광대의 정신
고성오광대의 정신을 꼽자면 배김새다. 배김새는 좋지 못한 것을 쳐내기 위한 몸짓이다.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모든 나쁜 관행과 관습, 제도 따위의 악습들을 묻어버리는 것이다. 오광대는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을 담고 있다. 세상에 각 곳곳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것들이 고쳐지고 개선돼서 밝은 사회가 되면 좋겠다 하는 인간의 원초적 염원을 담아내는 것이오광대다.배김새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힘이 아니라 정신적 힘이 있어야 한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려면 뒤에서 쑥덕거려봐야 안 된다. 바꾸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을 때 가능하다. 마음을 모으는 힘이 배김새의 정신이다.

# 젊은 예술인들이 전통예술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방법
지역 속에서 지역 문화단체가 전승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이 인적 자원이다. 하려는 사람들이 없으면 전통예술의 맥이 끊긴다. 적어도 밥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 몇 년동안 열심히 하면 어느 단계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보장이 필요하다. 제도적 뒷받침이 돼야 하는 것이다. 전통예술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고 싶어도 생계를 놓고 보면 쉽게 접근이 어렵다. 이 부분을 해결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많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문화가 그 사람들을 인정해주는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해줄 수 있는 마음들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모든 것들을 해결해주기는 어렵다.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야 한다. 전통문화를 살리면 기업의 정신적 윤택함이 따른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고 전통문화에 후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식이 깔리면 젊은 사람들이 문화마당에서 큰 걱정 없이 소신대로 능력발휘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지 않겠나 한다. 우리 문화를 제대로 살리고 전승하려면 교육적인 바탕도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학교와 가정에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오광대와 농요가 이어지려면 어릴 때부터 듣고 해봐야 한다. 초중고등학교까지 연계가 돼야 한다. 지금은 그 연결이 단절돼있다. 지역에서 지역문화를 이어가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다.지자체의 관심이 필요한 것도 같은 이유다. 전통예술에 대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전통문화예술을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장학지원 등의 규정이나 시책을 만든다면 소질 있고 재능 있는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다.

# 고성오광대를 고집하는 이유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내가 지금 젊다면 고성오광대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지켜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지역문화를 이어가려면 문화단체에 속해있는 것이 전업이 돼야 한다. 전업이 돼서 생계를 꾸려야 한다. 받침이 돼야 한다. 그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우리 책무라고 생각한다. 고성의 문화를 이어가면서 젊은 예술인을 키워내야 한다.# 바람회원들이 가정과 지역에서 두루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 오광대에서만 열심히 하고 예능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과 가정에서 인정받아야 한다.고성 오광대는 열린 운영을 하겠다. 운영에서 조금도 의혹이 없도록 투명하게 운영해 믿고 신뢰하는 문화단체가 될 것이다. 예술적, 창조적 기획 같은 것들은 마음들이 모이면 만들어질 것이다. 외형적으로 화려하고 거창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곪은 단체는 안 됐으면 좋겠다. 회원들이 늘 말하고 바라는 것은 천천히 가자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일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내가 하고, 얻는 것은 천천히 가는 것이 단체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다. 화목한 단체가 되면 좋겠다. 그러면 더디게 가더라도 변화를 가지면서도, 서로 돋우면서 가는 단체가 된다. 단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면 안 된다. 독선적, 독단적으로 가면 안 된다. 어른으로서 위치나 권위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서 사람들이 어려움이 뭐가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후배들도 열심히 하는 가운데 뽐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 자기 역할들을 잘 하면 자연스럽게 잘 어울려 갈 수 있다.고성오광대는 문화예술적 수준뿐 아니라 체계적 운영방식에서도 전국 최고의 단체라는 점을 알리는 것은 바로 그런 ‘어울림’이다.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고성오광대에는 젊은 전승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희한하게도, 사무국에 상주하는 직원들 중 고성태생은 없다. 그저 고성오광대가 좋아서 고성에 내려와 주소까지 고성에 두고 산다. 고성오광대 탈놀이를 사랑해서 인생을 건 사람들이다. 

ⓒ 고성신문
▣젊은 전승자, 그들의 각오와 꿈, 목표
“고성오광대와 끝까지 함께하는 예인으로 남고 싶어요”

# 최민서 사무국장= 1999년부터 매년 전수교육에 참여했다. 대학시절 진로를 두고 고민도 많고 방황하기도 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이 고성오광대의 더광대 형님들이다. 황종욱 국장님의 권유에 미련 없이 고성행을 택했다. 사람이 좋고 춤이 좋았다.갑작스럽게 사무국장을 맡아 부담스럽기도 했다.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고성오광대는 큰 단체이기 때문에 챙길 일이 꽤 많다. 전 국장님은 20년간 고성오광대의 살림을 맡은 분이다. 그에 비해 저는 당연히 부족하다.타 지역에서 전통연희를 전공한 젊은이들이 다양한 인연으로 고성오광대를 찾아왔다. 고성오광대를 배우고 지키겠다는 뜻은 모두 같다.지금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올라갈 길이 막혀있다. 전수자와 이수자가 전수교육조교가 되고, 성취할 수 있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 정책과 제도의 문제다. 사회적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가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고성오광대 탈놀이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큰 틀은 유지하되 새로운 감각을 가미하는 것도 긍정적 변화라고 본다. 정체되지 않아야 한다. 열린 마음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고성오광대는 사람이 모여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음악과 춤으로 풀어내는 곳이다. 내분 없이 함께 어울리는 단체로 이끌고 싶다.

# 백은희 전수자= 좁은 전수관에서 뜨거운 물도 안 나오고 밥도 직접 해먹어야 하던 시절부터 고성오광대에 전수교육을 받으러 왔다. 춤도 음악도 사람도 정말 좋아서 이런 단체가 다 있구나 싶었다. 고성오광대는 고성사람들만, 남자들만 하는 건 줄 알았다. 우연한 기회에 고성오광대 일본 공연에 동참했고 반해버렸다. 2013년 12월에 고성행을 택했다.연희만 하던 사람이 공연들의 정산을 하니 밤샘도 숱하게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이제 일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 홍보와 기획, 제작까지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성취감이 있다. 어느 배우가 했던 말처럼 저는 고성오광대에 밥상을 차려주는 역할이다. 그게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몸이 상하지 않는 이상 꾸준히 고성오광대에서 연주하고 춤추고 싶다. 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이 나의 역할이자 목표다.

# 홍석민 전수생=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물놀이를 했다. 서울에서 고성오광대 공연을 보다가 윤현호 형님을 만나 고성에 내려왔다. 당시는 사물놀이를 그만두려던 시점이었다. 한 번만 더, 하는 마음이 들었다. 2015년 3월부터 고성오광대에 합류했다. 고성오광대가 좋아서 여길 왔고 고성오광대를 계속 할 생각으로 눌러앉았다.서울에서는 젊은 사람들끼리만 공연하다가 고성오광대 활동을 하면서는 선생님들과 함께 공연해야 하니 쉽지는 않다. 공연 흐름도 달라서 처음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목표가 있으니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전통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목표가 비슷하겠지만 저 역시 언젠가는 이윤석 회장님처럼 무형문화재로서 입지를 분명히 하고 싶다. 그 발판이 고성오광대다.# 김다현 전수생= 아버지가 국악을 하셨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반강제로 장구를 쳤다. 내가 정말 잘하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이게 내 길이구나, 싶었다. 대학시절 고성오광대를 접했다. 고성오광대는 남자들의 연희라 여자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대사는 없지만 공연에서 역할을 맡기도 하는 등 여자들의 역할도 늘고 있다.전수교육 시절에는 또래들과 배우기만 하다가 사무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춤추고 공연하는 보존회 생활이 늘 즐겁다. 언젠가 더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고성오광대에 속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나 혼자 대단한 결과물을 얻을 수는 없지만 오광대 사람들이 같이 간다면 성과는 크지 않을까 싶다.

# 정연석 전수생= 대학시절 수업을 통해 고성오광대를 처음 접했다. 연희자니까 무대 위가 익숙했다. 춤을 추고 반주하며 항상 즐거웠다.사무국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 공연하고 수업하는 숨쉴 틈 없는 일정이 버거울 때도 있다.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 같이 하는 활동이니 틈틈이 숨을 돌리고 있다.고성오광대는 체계화된 단체다. 그 안에 속해있다는 것이 즐겁다.연희자이자 악사니까 음악에 대한 욕심이 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 춤추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느낌을 살려 연주하고 싶다. 그러려면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고성오광대는 그 꿈을 이룰 가장 첫 걸음이다.# 윤청하 전수생= 이제 3개월차를 맞았다. 대학에서 팀 활동을 하다가 문득 나만의 예술성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성에 왔다. 내가 고성오광대에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행복하다. 고성오광대는 지역에 뿌리를 둔 문화단체지만 지원사업과 문화사업이 아주 활발하다. 발전기회가 많고 체계적인 단체이기 때문에 결핍을 느낄 틈이 없다. 다만 약간의 부담은 있다. 기대가 있을 텐데 내가 그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할 때가 있다. 이왕 고성오광대에 합류했으니 잘하고 싶다.아직 고성오광대에서는 햇병아리라 아주 거창한 목표나 바람은 없다. 그저 어릴 때부터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 고성오광대에서 제대로 된 춤꾼이 되고 싶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9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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