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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가와대학 축구부는 비어있던 다케야마단지 내 카페를 활용해 노인건강체조교실을 운영하며 거주민과 소통하고, 일상의 활력을 더하고 있다.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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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단카이(團塊)세대 즉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됐다. 전후세대는 고도의 경제성장기에 청년기를 겪으면서 교육과 취업을 위해 지방에서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로 향했다. 이 세대는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큰 도심에 집을 마련하기보다 전철, 자동차 등 교통이 편리한 베드타운에 주거지를 장만했다.
이들이 중년으로 접어든 199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는 무너졌다. 젊은 세대는 도심을 선호했고, 가격이 떨어진 베드타운의 집값은 회복하지 못했다. 도쿄 도심의 아파트 가격이 두 배 오르는 동안 외곽지역은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은 데다 일본은 재건축이나 재개발도 적다. 도심의 고급아파트가 아니면 가격이 오르는 것도 아니니 수천만 엔을 들여가며 주택을 짓거나 살 필요성을 못느낀다. 집값 상승도 기대하기 힘드니 유입되는 인구나 주택 구입을 원하는 사람은 적다.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취향도 한 몫하는 사이 동네는 늙어간다.
# 급격한 고령화가 불러온 빈집 문제
도심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빈집들도 종종 발생하지만 도쿄 외곽의 빈집은 30년 이상 된 목조주택이 많다. 목조주택은 조금만 관리가 소홀해도 금세 낡아버린다. 거주나 수리가 불가능한 낡은 목조주택은 철거하는 수밖에 없다.
도쿄 세타가야구에 거주하는 후지와라 씨는 결혼 후 현 거주지에 40년 넘게 살면서 자녀들을 키우고 결혼시킨 후 부부만 살다가 남편이 지병으로 5년 전에 먼저 세상을 뜬 후로는 혼자 살고 있다. 이미 80대 중반인 그는 아들이 한 명 있기는 하지만 멀리 살고 있어 우리로 치면 요양보호사가 집을 찾아오는 재가서비스와 같은 개호서비스를 받으며 지냈다.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에는 일상생활도 버거워지면서 요양시설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후지와라 씨는 “도쿄라곤 하지만 이 동네는 고령자들이 많아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집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라면서 “아들은 여기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하고, 내가 요양시설에 들어가면 집을 팔고 싶지만 이웃의 빈집들도 팔리지 않는 것을 보니 우리집도 아마 방치될 것 같아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요코하마에 거주하는 히라야마 씨는 “혼자 살던 어르신이 사망 후 친척도 없어 5년 이상 방치된 집이 마을의 골칫덩어리”라면서 “소유자가 확인되지 않으니 행정에서도 임의대로 손댈 수 없다고 하고, 오랫동안 방치되다 보니 지진이라도 발생하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행색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보일 때도 있어서 혹시나 범죄가 이뤄지지는 않을지도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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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케야마단지의 빈집을 기숙사로 이용하며 거주민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공동체 회복을 이끄는 가나가와대학 축구부. 사진 뒷 줄 왼쪽 첫 번째는 가나가와대학 축구부 오모리 유자부로 감독, 뒷 줄 가운데는 가나가와대학 스포츠전략실 아사오 히데 씨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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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아파트 빈집이 축구부 숙소로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미도리구의 다케야마단지는 2천800여 세대의 대규모 공영주택단지다. 도쿄 도심의 주택난이 심각했던 1970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나가와 현립 주택공사가 이 아파트단지를 요코하마에 조성했다.
이 단지 주민의 평균연령은 66세다. 미도리구의 평균연령이 47세인 것을 생각하면 고령화가 두드러진다. 단지의 고령화율은 50%에 이른다. 외부 활동이 한정적인 고령의 주민들은 이웃과의 교류도 뜸해졌고, 단지 내 빈집도 늘어났다. 공동화와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대단지의 활력은 사라졌다.
상황은 2020년 5월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빈집이 많은 단지에 가나가와대학 축구부가 들어왔다. 축구부 청년들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오르내리기 힘든 탓에 빈집이 많던 4~5층을 기숙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3명이 한 방을 사용하는데, 오래되기는 했지만 별다른 불편함은 없다.
축구부는 사람들이 떠나면서 비어있던 점포에 카페를 열고 음료와 함께 간단한 요깃거리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이 카페는 요일별로 카레 식당이 되기도 하고 노인건강체조교실이 운영되기도 한다. 셰프는 축구선수 출신이고, 서빙이나 설거지는 현역 축구부원이 맡는다.
기자가 이 단지를 찾아간 날은 노인건강체조교실이 운영되는 날이었다. 괴괴하리만치 조용하던 상가 통로에 오전 11시를 얼마 남기지 않고부터 노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이름을 적은 후 망설임 없이 카페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노인들을 맞이하는 청년들은 당장 필드에서 공을 차도 이상할 것 없는 선수복장의 축구부원들이다. 서로 친근한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이 살갑다. 카페 안 오픈주방에는 셰프가 막 카레를 만들기 시작한 참이다.
노인들은 가나가와대학 축구부의 전담트레이너의 지도로 스트레칭을 한다. 얼마간 트레이너의 지도 후에는 축구부원들이 팀을 나눠 노인들이 배운 동작을 함께 하며 자세를 교정해주고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한다.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지역민의 소통공간이 된 것이다.
# 청년의 지역참여, 노인의 일상 활력
축구부원들은 단지 내에서의 활동뿐 아니라 지역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직접 밭을 일궈 농산물을 생산하고 이를 지역 내에 판매한다. 청년들이라 스마트기기에도 능통하다 보니 지역 노인들을 위한 스마트폰 교육에도 강사로 참여한다. 학습지원단을 꾸려 지역 어린이들이 하교 후 부모가 퇴근하기 전까지 방치되지 않도록 숙제를 챙기고 돌봐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카페, 노인체조교실 등에서 보조로 활약한 축구부원들은 일정액의 급여가 지급된다. 운영비는 카페의 수익금과 가나가와대학, 요코하마시와 가나가와현에서 지원되는 ‘다케야마 프로젝트’로 충당한다. 지역 비영리단체(NPO)가 지역민, 대학, 지역의 연결 역할과 함께 실무를 진행한다.
지역 내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단순히 기숙사로 공간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으로서 원주민들과 소통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축구부원들이 단지 내에 들어오면서 지역민들의 일상이 달라졌다. 축구부가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됐다. 주민들은 이제 가나가와대학 축구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응원하러 경기장을 찾는다. 처음에는 대여섯 명이 경기장을 찾았지만 이제는 축구부원보다 숫자가 많아졌다. 주민들의 응원은 축구부원들에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이 또한 빈집이 맺어준 인연이자 지역공동체 회복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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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케야마단지를 기숙사로 쓰는 가나가와대학 축구부원이 단지 내 노인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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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 단절 막고 지역공동체 회복
“다케야마단지는 훈련장소까지 이동시간이 짧아 체력 소진이 적고 교통비 부담도 덜 수 있습니다.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더구나 선수들의 공동생활을 넘어 지역민과의 소통을 통해 사회성을 키울 수 있고, 이는 경기장에서 선수간 호흡을 원활하게 하며 결국 팀워크 강화를 통해 선수의 자질과 경기의 성적을 결정짓는 중요한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가나가와대학 축구부는 물론 우수한 팀이지만 모든 선수가 프로에 입단할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가나가와대학 스포츠전략실과 축구부는 부원들이 나중에 사회에 진출했을 때 다양한 경험이 득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선수들을 지역의 리더로 키워내기 위해 지역사회에 참여를 유도하고자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다케야마단지는 비용 측면에서나 활동 측면에서 꼭 잡을 수밖에 없는 기회였다.
“빈집이 늘어나는 다케야마단지는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일본의 미래사회라 봅니다. 가족도 해체되는 상황에서 우리 축구부원들이 단지 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지역공동체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활동 참여를 통해 장래에 대한 자질을 높여 선수 개별의 성장을 유도한다면 선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선수의 진로에 다양한 기회를 열어줄 수도 있지요.”
가나자와대학 축구부가 단지에 입주한 초창기에는 세대 차이로 인한 불편함이 있었다. 외지인의 출입을 마땅찮아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그러나 손자처럼 살가운 청년들과 함께 생활하며 주민들의 인식은 서서히 변했다. 축구부는 평소에도 주민자치회와 소통을 통해 인사나 세탁기 사용시간, 오토바이 주차나 소음 등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까지도 신경쓰고 배려한다. 쓰레기 분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청년들은 스마트폰 지도는 물론 주민 행사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분위기를 띄우기도 하고, 준비나 정리하는 일도 도맡는다.
주민들은 감사인사를 전하고, 축구부 청년들은 자기긍정감이 높아졌다. 노인들의 삶의 지혜를 배울 수도 있으니 이만하면 서로 윈윈이다.
“축구부 식당을 통해 주민간 단절과 같은 지역문제를 해소하고 있습니다. 주민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에 보조자로 참여하면서 받게 되는 급여는 학생들의 자립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단지 내 유휴시설을 이용해 축구부에 필요한 헬스장이나 다목적시설, 식당 등으로 설치할 예정이니 빈 공간 재생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고령화는 빈집 발생도 가속화한다. 늘어나는 빈집은 지역공동화를 부추긴다. 그러나 다케야마단지의 사례는 청년에게는 사회적 기반을 다지게 하고 노인들에게는 생활의 활력을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