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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사리 끊으로 가고 지버서, 거류산만 우두커이 봄미더”

거류면 상원마을 김복순 / 1934 / 甲戌년생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08일
집 앞 마당엔 봄 볕 따스하고 꽃은 해마다 피건만. 한 번 떠난 사람들은 돌아올 줄 몰라, 거류산만 하염없이 바라보네.
ⓒ 고성신문
영감,
이 따순 봄을 세 번만 더 지내모 내도 벌써 구십이네. 참 오래도 살았다 아이요. 퍼뜩 내 좀 델꼬 가소. 만다꼬 그리 바빠샀던지, 내한테 6남매 다 맽기놓고 가신지 37년 든다카네요. 그 때 내 나이 제우 쉰 넘갔는디 그리 밉디요? 거기는 을매나 좋은 곳인지, 뭐 좋은기 있는지 한번 갔다하믄 다시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소.
내가 아직은 혼자서 밥도 챙겨묵고 머리도 앞가리매 타서 이리 빗고 댕기지만, 힘이 없어서 자꾸 드러눕고 집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엔 좀 찹더마는 요새는 날이 마이 따뜻한기라요. 어제는 자다가 일어나서 얇브레한 이불을 꺼내서 덮었소. 허리도 아푸고, 다리도 아푸고 일어서면 눈 앞이 핑~ 아지랑이가 돋소. 자주 어지러운 이거는 무슨 병인고? 

영감
내 나이가 몇인지, 내가 어디서 태어나서 우찌 얼라때를 보냈는지 모리지요?
이번에 용기를 내서 내 살아온 이바구를 해 볼라카요. 할멈이 씰데없는 흰소리나 한다꼬 나무라지 마시오. 내는 은자 무서븐기 없응께 내 쪼대로 내 하고지븐대로 하다가 갈끼요.
내는 1934년 섣달에 태어났소. 우리 어매가 내 낳고 몸조리 한다고 지글지글 끓던 뜨끈한 방에서 반지락 몇 마리 넣고 끓인 미역국을 잘 드싯다꼬, 몇 번이나 읊던기 생각이 나요. 외가는 거류면 상원마을인데 아부지는 김흥조, 오빠는 김재봉이요. 옴마는 최씨인 거는 아는데, 여자들은 이름없이 누구 어마이, 태어난 마을을 붙인 상원댁이라꼬 택호만 불렀소.
상원 마을에 순이가 살았소. 내캉 순이는 을매나 친했던지 입엣것까정 나눠무도 되는 동무였소.
우리 어린 날 마당에 나가 두 팔을 벌리고 뱅글뱅글 돌면서 놀았소. 쫑쫑 딿은 머릿결이 팔랭개비 맨치로 동그라미를 그렸소. 그 끝에 달린 댕기 잡아 땡기고 벗기고 함서 돌다가 마당에 패대기치듯이 굴러 떨어지기도 했소. 누가 민 것도 땡긴 것도 아인데 지 맘대로 돌다가 그리 된 거요. 그 땐 논다꼬 재미로 어지러웠는데 요새는 일어서기만 해도 어지러운 거는 갈 때가 다 돼서 그런가 싶소. 팔십 일곱까지 살았으모 아까븐기 뭐 있으끼요.

영감,
내가 가만히 눕어서 천장을 보고 있으모 자꾸 어린 날이 생각이 나오. 영감보다 순이가 더 보고집고 순이 얼굴이 달덩이 맨치로 눈에 밟히요. 순이네는 동네서 제일 가는 부자였소. 그 집 마당가의 장독대는 우찌 그리도 빤질빤질 하던지, 그 장독마다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장아찌가 꼬솜하게 익어갔소. 소금독은 얼마나 큰지 어린 우리들 키만 했소. 그 소금 독에 순이 어무이가 고등어 자반이며 갈치와 꽁치를 넣었다가 소금을 탈탈 털어내고 석쇠를 척 걸치고 부석 아궁이 앞에 잉걸불을 끄집어 내 꾸버뭇소. 순이가 내한테 이리 말했소.
‘복순아, 낼은 우리 집에 일 거들어 준다꼬 니 엄니한테 허락 받고 일찍 온나. 같이 고등어 한 손 굽어서 맛나게 밥 묵자. 내도 고등어 생각하면 목구녕에 춤이 꼴깍꼴깍 넘어가는데 니캉 물라꼬 꼬불치 놨다 아이가. 우린 동무 아이가. 동무는 맛난 거를 항꾸네 무야제.’

영감,
순이는 우째 그리 인정이 많았던고? 하긴,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살림이 따숩하니까 내 입에 좀 농가줘도 탈이 안 난거 아이것소? 아무리 살림이 따뜻해도 마음이 안 내키면 어디 천석꾼인들 나눴을꼬? 순이는 콩 한쪽도 농가묵자 캄서 내 손을 잡아 끌디요. 우리 집은 끼니 걱정으로 날마다 간당간당했소. 보릿쌀독을 딸딸~ 긁어도 늘상 부족했으니께. 고등어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소.

영감,
내 올 봄에 거류산에 가서 꼬사리 따고 싶었소. 그래 산에는 몬 가고 마음으로만 옛날 그 산길을 촐래촐래 올라가 봤소. 순이와 항꾸네 꼬사리 따러 앞산으로 뒷산으로 천방지축 돌아댕깄소. 둘분네 황토산에 꼬사리가 많았소. 을매나 튼실하게 살이 올랐던지, 고사리를 톡 따면 꺾인 마디에 눈물처럼 물방울이 흐릅디다. 그거 보면서 ‘야, 운다 울어. 꺾여간다고 슬픈가봐라. 사람도 저리 꺾이모 을매나 안 됐노. 우리는 공단 이불에 싸여서 시집 가까? 양단이불이 더 좋나? ’ 이런 장난도 치고 놀았소.
꼬사리는 바로 옆에 동무하여 돋아나는 신기한 나물이요. 하나 따면 그 옆에 뽀도시 찾아보고 또 하나를 따 와야제 혼자 두면 외롭다고 운제나 두 개를 같이 땄소. 우린 꼬사리 맹키로 둘이서 꼭 붙어 다녔으니 쌍디 같은 사이였소. 꼬사리 바구니가 차면 우린 취나물 따고, 미역취와 둥굴레도 팠소. 둥굴레 판다꼬 손톱밑에 흙이 가득 들어앉았소. 그래도 우린 산나물을 뜯고 꼬사리를 따며 좋았소.

영감,
내 어릴때는 순사들이 숟가락 몽디도 공출로 걷어가고 그랬소. 가을에는 소출 하는거를 봐서 제우 식구들 안 굶어 죽을만치나 냉기고 몽땅시리 거다갔소. 해방되어 좋다캤는데 또 전쟁이 났다 아이요. 낮에는 거류산에 숨고 밤이면 마을에 내려와서 숨이나 붙이고 살았소. 그 때도 순이 손 잡고 거류산에서 나물을 뜯어 조물조물 무쳐 뭇소. 지금도 내 머릿 속에는 나물 생각밖에 안 나요. 암만 마이 무도 배 안 부르고, 돌아서면 배가 허측하게 꺼지는 나물이 만다꼬 자꾸 그리븐고. 하이고, 내도 참 희한하요.
영감,
내가 20살 되던 해에 혼인하고 일 년을 우리 집에서 살다가 신행을 갔소. 고개 한 개 넘으모 시집인께 누구누구 카모 다 알던 사이였소. 시부모 모시고 동시 시집도 살았소. 큰아 윤만이 낳고 분가를 핸 기요. 쌔빠지게 농사 짓고 품 팔고 소 키아서 송아지 빼고 한칸짜리 집에 아래채 넣고 고방짓고 밭뙤기도 넓히던 시절이었소.
내가 잘하는기 나물 뜯는기라서 이웃 붙들네 따라서 산에 올라갔소. 내 시집 올 때 순이도 오데 마산인가, 부산인가, 어디로 시집을 갔응께 그 때 보고는 여직지 한번도 몬 봤소.
붙들네하고 다래순을 따서는 한 보따리 이고 너들강을 내려오면 엎어지고 자빠지고 물팍에 피고름이 맺혔소. 그 무거븐 걸 이고 오는데 영감은 덥썩 받아서 내려주기라도 했으모 을매나 좋았것소? 소맨치로 멀뚱히 치다만 보고 있어서 내 억수로 서분했소.

영감,
저금(분가) 나와서 줄줄이 머스마 다섯을 낳고 딸 하나를 낳았소. 머스마들은 을매나 재작질이 많았것소? 에미 손 하나 거들어 주지 않는 머스마들 낳다가 고명 딸내미 낳으니 좋았소. 끝분네는 딸 여섯을 낳고 아들 못 낳았다꼬 내 쪼장재이를 주모 아들 낳는 양벱이라꼬 살짝 가져갔소. 그거 보믄 세상이 참 불공평한 기요. 우리 아들 하고 끝분네 딸들 하고 나눴으면 좋것다꼬 새미에서 만나면 마주보고 웃었소. 서로 욕하고 농담도 하면서 힘든 일을 이겨 낸기요. 우리는 이런 이야기함서 힘든 젊은 날을 한바탕 웃으모 보낸기요.
“뻘다니짓 좀 작작해라. 어중개비 아이라까봐 저녁땀에 빨래방망이 뚜디리나?”
“욕 들을라꼬 만수판이다.”
“빨랫감이 허들시리 많네. 사분이 쌔비릿는갑다.”
“한빨띠기 들고와서 운제 다하끼고! 아들 쑥쑥 잘 낳으니 빨래도 재밌제?”
“쎄가 만발이나 빠질 에펜네, 뭐시라 카노? 딸이 있으이 부석(부엌)일은 맽긴다 아이가.”
“오만 거 떼만 거 다 뭉쳐서 뽀도시 왔는데 니 애골 밀래?”
아들 다섯 명에 영감까지 뒷손이 없어서 내가 애나로 욕봤소. 그래도 농사일은 열심히 하고 돈 한 푼도 허투루 안 쓰고 모다서 살림 불렸으니 고맙소. 촌에서 암만 쌔빠지게 일해도 살림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도 간간이 남의 일도 거들고 사방공사 할 때는 산에 가서 품삯도 받아왔으이 아아들도 남만큼은 공부를 시킸소. 
20년 전에 하나뿐인 내 딸캉 손주 권승진과 승일이 델고 추억 여행 떠났을 때.
ⓒ 고성신문

영감,
제우 농사 지어서 살았으니 넉넉하지는 몬해도 여섯 자식들은 모두 식구 건사하고 지들 밥벌이 함서 잘 살고 있소. 막내로 뽀도시 낳은 아들 이름은 알것소? 마산 사는 진석이요. 글도 잘 쓰고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이요. 며느리는 간호사요. 아푼 사람 병든 사람 잘 치료해서 고치는데 힘 보탠다카요. 내가 힘이 없다카모 자주 들다보고 주사도 놔주요. 자식들도 순하고 효성스럽소. 며느리들도 저거 남편 잘 위하고 새끼 낳아서 잘 키워주니 을매나 고맙소. 영감 씨 받은 손자가 열 두명이요.
요새는 아가야를 안 낳는다 카데요. 자식을 하나만 낳으모 난중에 외로불끼요. 그란데 우리 새끼들은 내 걱정 안 시킬라꼬 둘씩 낳아줬으니 그거만 해도 을매나 고맙소.
내 살아본께네 저승길에 자식 앞세우지 않고, 자식 병들어 골골거리지 않는게 젤로 큰 효돕디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은께 부부이별한 집도 쌔비릿꼬, 자식이 부모 앞서 세상 떠나는 일도 많디요. 어떤 집은 어린 손주가 사고나 암으로 세상을 뜨기도 한다 안카요.
그기 모두 영감이 저 하늘에서 우리 식구들 잘 살피고 복을 빌어줘서 그런거 내가 잘 아요. 그래서 영감이 내혼자 내삐고 먼저 떠나도 용서해 준 기요. 같이 안 살아도 다복하라고 빌어주고 지켜주는거 아이요?

영감,
사는 날까지 내 손 꼼지락거려서 챙겨 묵고, 변소 간에도 혼자 댕기다가 떠나믄 좋겠소. 묵을끼 천지삐까리에 쌓인 이 좋은 세상에 잘 묵고 웃으며 살다가, 자는 잠에 소롯이 가면 되는 거 아이요?
내는 그 나라에 가믄 순이 동무를 꼭 만나고 싶소.
봄에 꼬사리 엄청시리 따고, 삶은 뜨신 물에 손도 씻고, 다래순 뜯어서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묵고, 가죽나물 자반도 좀 맹글끼라요. 여린 가죽순은 살짝 데쳐먹고, 살짝 핀 곁가지 가죽순은 데쳤다가 꾸드레하게 말린 뒤에 찹쌀풀에 고추장 넣고 자반을 만들어 볼라요. 그 자반을 아궁이 솔갈비 불 위에 석쇠놓고 살짝 꾸버 묵고집소. 그 때는 막걸리도 한 잔 걸칠끼라요. 우리 처녀적엔 항꾸네 못했지만 이제 다 늙어서 만날낀데 부끄럽고 감출게 뭐 잇것소? 영감도 살짜기 오소. 순이 영감도 오라카끼요. 우리 넷이 옛날 이야기 함시로 놉시다.
막둥이 장모님 모시고 거제 식물원 놀러 갔던 날, 가리늦게 낳아도 효자입미더.
ⓒ 고성신문

영감,
막내이가 내보고 자꾸 이바구 해 보라 카데요. 내야 뭐 내세울거야 없지만 우리 살아온기 모두 역사라카네요. 자분자분 시작항께 할 말이 넘칩디더. 은자 숨도 가뿌고, 머리가 어지러워 좀 쉬고 싶소. 내 남은 할 말도 한 빨티요. 그것도 안 이자뿌모 하끼요.
거류산에 진달래도 졌고, 꼬사리도 다 샜을끼요. 꽃들은 해마다 피고, 봄은 해마다 온께네 올 봄에 몬하모 내년에 할끼요. 내가 못하고 가면 우리 자슥들이 하고, 또 손주들이 해 줄끼요. 그렇게 동테맨치로 빙글빙글 돌고 도는게 인생 아이것소?
봄볕 따사로운 (음력) 사월 보름날, 복순 할멈이 보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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