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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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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땅’이라 불리는 인구 33만여 명의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고립무원의 섬나라이다.아이슬란드는 얼음 땅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여기저기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가이저라고 불리는 간헐천이 여기저기서 솟구쳐 오르고 있어, 추운 나라지만 땅에서 김이 올라오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10년에는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폭발하여 유럽에서 항공 대란이 발생하기도 했다.빙하와 추운 기후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불모지이다.이런 척박한 아이슬란드의 경제발전은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성평등 운동이 기반이 됐다.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남녀 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해 올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성평등 공동기획취재단은 아이슬란드를 방문해 그들의 성평등 문화와 사회제도, 정부지원 등에 대해 밀착취재했다.
# 111년간 투쟁하며 얻어낸 결실, 성평등
2009년부터 아이슬란드가 세계 성별차 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 꾸준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성평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세계에서 성평등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된 이유는 아이슬란드 여성권리협회의 끊임없는 노력이 그 토대다. 아이슬란드 여성권리협회(kvenrettindafelag)는 1907년에 만들어져 여성의 인권, 정치 참여권과 고통 받는 모든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계에서 여성들을 위한 정책들을 바꾸고 학교 성평등교육을 필수화시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아이슬란드는 현재 총 33개 고등학교 중 3개 학교에서는 성평등 교육을 하고 나머지는 선택과목으로 성평등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아이슬란드 여성권리협회 브룬힐두르 헤이달 사무총장은 젠더 이퀄리티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조금 더 적극적이고 민주적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민을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을 통해서 고등학교 1/2이 페미니스트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고, 정치적인 것과 관련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성과 관련한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며 “젊은 학생들이 페미니즘이나 젠더 이퀄리티를 통해서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 클럽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점을 봤을 때 세상을 보는 시각과 방향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여성권리협회의 최대 목표는 평등
브룬힐두르 헤이달 사무총장은 “아이슬란드가 전 세계적으로 성평등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주목받는 이유는 100여년 간 꾸준히 성평등을 위한 사회활동과 정부에 압박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임을 자부한다”고 말했다.역사가 100년이 넘다보니 안정적인 재정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포럼을 비롯해 컨퍼런스를 열어 구룹의 멤버나 활동을 돕고 있다.또한 협회자체에서 좌우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페미니즘 이퀄리티 관련 정책에 대한 의견을 모아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아이슬란드는 성평등이 옳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다만, 정부가 성평등 법안을 만들어 지켜지지 않을 때 집회, 시위 등을 통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언론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아이슬란드는 성평등의 가치를 높게 판단해 내년에는 아예 복지부 산하 젠더이퀄리센터를 격상시켜 ‘성평등부’를 만들 예정이다.
# ‘길었던 금요일’ 여성총파업
아이슬란드 여성총파업은 1975년 10월 24일 유엔의 날을 기해 아이슬란드의 여성들이 하루 동안 직장일과 가사노동을 전면 거부하여, 아이슬란드 경제와 사회에 여성이 공헌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 남성들에게 체감시킨 사건이다. 아이슬란드 여성 90%가 참여했다.이날 하루 직장인은 출근거부, 가정주부는 육아와 가사를 쉬었다. 오후 2시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의 도심 스퀘어에서 열린 집회에는 2만5천여 명의 여성이 참가했다(당시 아이슬란드 인구는 22만 명 수준이었다).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대규모 집회였다. 광장에는 “한 번에 평등Equality at Once”, “개발, 평화, 임금 평등Development, Peace, Equality of Pay”, “더 많은 보육원More Day Nurseries”, “낮과 그 다음에A Day Off-and Then?” 등의 피켓이 등장했다. 모인 여성들은 돌아가며 발언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브라스밴드가 그 해 아이슬란드에서 방영됐던 BBC 드라마 ̒Shoulder to Shoulder̓(서프러제트 이야기) 테마곡을 연주했다. 집회 후에는 파업 위원회가 준비한 오픈 하우스에 모여 커피를 마시고 공연을 구경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이날 전국적으로 20여 개의 집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교사가 여성이었기에 보육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휴교했다. 마트와 수산물 공장이 대거 휴업했다. 전화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식자공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에 신문발행도 중단됐다. 여배우들이 출연을 거부해 공연이 취소되었다. 여승무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항공기 운행이 취소되었다. 은행에서는 임원들이 나와서 창구업무를 해야 했다. 한편 아버지들은 직장을 쉬거나 애들을 데리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라디오 뉴스 보도 중 뒤에서 애들이 떠들고 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고.퇴근 후엔 아빠들이 애들을 씻기고 밥 먹이고 재워야 했다. 아이들이 잘 먹고 요리하기 쉬운 소시지가 곳곳에서 매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총파업은 그 날 밤 자정까지였고, 남자들은 힘겨웠던 그 날을 ̒길었던 금요일(long Friday)̓이라고 부른다.이후 매 10주년 기념일마다 ̒여성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지속적인 성평등 추구를 위해̓ 여성들이 일을 일찍 끝내고 기념행사를 갖는다.공동취재단은 지난달 23일 여성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일정상 스웨덴으로 발걸음을 옮겨야해서 그 현장을 마주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하지만 세계 최고의 성평등국가를 자부하는 그들의 의지만은 충분히 전달됐다.
# 여성총파업 후 변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나라는 바뀌기 시작했다. 여성 평등권 역시 그만큼 높아졌다.총파업 이듬해인 1976년 남녀 고용평등법이 의회를 통과했다.5년 후인 1980년 유럽 최초 여성 대통령(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이 탄생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세계 첫 여성 대통령이었다. 비그디스는 1996년까지 16년 동안 대통령 자리를 지켰다. 1983년 새 정당 the Women̓s Alliance가 당선자를 내어 의회 진입에 성공했다. 2000년 남성 유급 육아휴직제도가 도입됐고, 2010년 아이슬란드 최초 여성 총리도 탄생했다. 세계 최초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총리다.브룬힐두르 헤이달 사무총장은 성평등지수가 가장 낮은 한국사회에 대해 “척박하고 춥고 작고, 아주 극단의 나라 아이슬란드가 강성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평등이다. 이 점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대한민국에 성평등이 전체적으로 확산되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길 바란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했다.
# 그래도 남아있는 임금격차
성평등지수 세계 1위인 아이슬란드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여전히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동일임금이다.앞서 언급한 여성총파업의 목표는 여성이 노동시장에 없게 되면 아이슬란드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 파업은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남녀임금 격차가 26%(시간당)라면 그 날은 임금격차가 난 정도만큼 일을 하지 않는다.남성과 여성들의 임금은 보통 7~14% 임금격차가 나지만 여성들은 가사, 보육도 겸하기 때문에 그것까지 확대시키면 시간당 26%차이가 난다. 아이슬란드 복지부 마그네아 수석고문은 “그동안 우리는 남녀가 동일임금을 받아야 한담 입법을 진행해왔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임금 격차가 존재했었다”며 “모든 사람은 똑같은 일을 하면 똑같은 임금을 받아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 세계 최초 ‘동일노동 동일임금법’ 시행
아이슬란드는 올 1월 1일부터 전 세계 최초로 남녀간 ‘동일노동 동일임금 인증제 의무화법’을 시행하고 있다. 단계적으로 2018년 250인 기업부터, 2019년 150인, 2020년 90인, 2021년 25인까지 확대해 2022년에는 25인 이상 전 기업이나 기관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남녀 성별에 관계없이 같은 일을 하는 직원들에게 동등한 보수를 제공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성별·인종·국적과 무관하게 동일노동이라면 급여를 똑같이 줘야 한다. 고용주는 직원 수가 25명 이상이면 임금격차에 ‘성별 요인’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인증을 못 받을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아이슬란드의 도전은 동일한 노동에 대해선 남녀 임금차별을 두지 못하도록 구조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남녀 동일임금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법으로 강제화 한 것은 아이슬란드가 처음이다. 동일임금 관련 법안은 아이슬란드의 중도 우파 정부는 물론 야당의 지지를 받아 의회를 통과했다.아이슬란드가 이 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여성들의 막강한 정치 파워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아이슬란드 의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거의 50%에 육박한다. 장관 10명 중 4명이 여성이다. 40% 이상의 여성장관 비율을 유지하도록 할당제를 시행 중이다. 남녀비율을 동등하게 하려는 정치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마그네아 수석고문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성별 임금격차를 바로잡기 위해 급진적인 조치를 취할 때가 됐다”며 “평등은 기본 인간의 권리다. 남성과 여성이 직장에서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달성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건 정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 육아휴직 확대로 성평등과 워라벨 두 마리 토끼
아이슬란드는 성차별없이 구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육아나 직장생활에서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차례 궤도수정 및 보완에 노력해 오고 있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아이가 2살이 되면 돌봐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오고, 보육료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조정해 왔다.아이슬란드의 육아휴직은 ‘3+3+3’으로 요약된다.육아휴직 9개월 동안 임금의 80%가 지급되며, 상한액은 52만크로나(한화 약 6천500만 원)다. 육아휴직 9개월은 남자 3개월, 여자 3개월, 나머지 3개월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쓸 수 있다.2000년도에 남자 육아휴직이 도입됐다. 당시 육아휴직 때 받는 월급에 제한이 없었으나 2008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후 상한액이 정해졌다.남자의 육아휴직 도입 이유는 육아의 의무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 있다는 것과 성평등 의미 두 가지를 담고 있다. 무조건 남자들도 3개월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아버지의 90%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다. ‘3+3+3’은 남녀간의 성평등과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 워라밸을 위한 최고의 방안이다.어머니는 아기 출생 후 반드시 2주간 출산휴가를 가야한다. 2년 안에 육아휴직을 해야하며, 출산 전에도 휴가는 가능하다. 육아휴직도 건강상 문제가 있다면 사용할 수 있다. 아버지가 없거나 입양, 이혼 등의 이유로 홀로 아이를 키워야할 경우 혼자서 9개월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2000년도에 법안이 통과될 당시 그 어떤 정당의 반대도 없었다.아이슬란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국가에서 가장 높다. 과거에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했다. 남성들의 보육·가사에 대한 참여율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고용주들도 인식이 크게 바뀌어서 과거 여성고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으나 이제는 남성들도 육아휴직이 의무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이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똑같은 일을 하는데 받는 임금은 다르다. 성별로 따지면 ‘여성’이 그 피해자다. 같은 일을 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임금을 주는 이도 딱히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법으로도 금지돼 있지만 작동이 멈춘 지 오래다. ‘불평등’이 당연한 듯 인식되고 있다. 또 불평을 제대로 입밖으로 내지못하는 한국의 수 많은 여성들에게 아이슬란드의 ‘동일노동 동일임금법’은 먼 이야기일까?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