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올해 초 1월, 생방송 뉴스를 통해 한 여검사가 직장 내 성범죄를 폭로하면서 우리 사회엔 성범죄 피해자의 고백이 들불처럼 일어났다.‘나도 피해자다’라 ‘미투(#Me Too) 운동’은 문단과 영화계를 비롯한 예술계는 물론 학계, 종교계, 정치계, 영화계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성폭력 피해의 폭로가 계속됐다. 그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연대’가 이뤄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의미있는 가장 큰 변화로 다가온 ‘미투 운동’은 여성들만의 고민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공감하고 문제해결을 하기 위한 인식변화가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미투운동이 전사회적으로 퍼져나가며, 언론에서도 연일 미투운동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투운동 언론보도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언론이 보여주는 보도들은 미투운동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채,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내용만을 쏟아낸다는 지적이 많다. 이 보고서는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는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에도, 고민 없는 언론보도로 피해자에게 2차, 3차 피해를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지역신문발전위원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성 평등과 지역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공동기획취재를 마련했다.공동기획취재는 고성신문을 비롯한 주간함양, 시사인천 등 전국 3개 주간지와 경남도민일보, 경상일보, 울산매일신문, 무등일보, 강원일보 등 전국 5개 일간지가 참여했다.공동기획취재단은 지난 9월 5일부터 6일까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언론중재위원회, 한국YWCA, 서울여성가족재단 등 국내(서울) 취재를 진행했다.이어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 아이슬란드와 스웨덴 등 해외 취재를 진행했다.아이슬란드는 2017 세계 성 격차지수 1위 국가이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으로 만들어 2020년 남녀 구별에 의한 임금격차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있다.스웨덴은 출산율과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을 동시에 높이는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세계 최초로 부모육아휴가법을 도입한 국가다.
# 성별보다는 개인의 성향 존중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수연 선임연구위원은 “성별보다는 개인의 성향을 존중할 때 남녀 모두에게 공정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18년간 한국여성정책연구연에 몸담고 있는 이수연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남녀차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녀가 합의할 수 있는 성 평등 기준이 없는 것이라고 역설했다.그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육아에 대한 가치를 교육하기보다는 육아는 어머니(여성)의 전담으로 치부해왔다”며 “여성은 육아와 가사, 남성은 노동이라는 고정관념이 잘못된 성차별 의식으로 굳어왔다”고 했다.육아는 어머니(여성) 혼자만의 몫이 아닌 아버지(남성)가 함께 해야하는 의무라고 덧붙이면서,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고 했다. 이럴 경우 돌봄노동의 가치회복은 물론, 남녀 균형 참여를 높이고, 더 나아가 성 평등의 가치와 목적에도 부합될 것이라고 했다.# 조기교육으로 성 평등 의식 높여야이수연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성 평등 의식 전환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조기 교육을 통한 성 평등 의식 형성과 성별 고정관념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그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성 평등 놀이를 통한 교육안 개발이 시급하다고 했다. 또한 학교에서의 성차별 언어를 제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이 선임연구위원은 “‘메갈’, ‘페미니스트’, ‘한남충’, ‘틀딱충’, ‘김치녀’ 등 이런 식의 혐오 발언은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대한 공격성을 담고 있을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면서 “호주, 벨기에, 스코틀랜드, 핀란드가 시행하고 있는 혐오표현금지법을 도입해 폭력적이고 선동적인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투운동 언론보도 모니터링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은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사업’ 일환으로 서울YWCA와 함께 미투운동과 관련한 언론보도의 성차별성을 분석하기 위해 올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보도된 기사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했다.모니터링은 네이버 포털 뉴스 검색 기능을 통해 노출된 기사들을 대상으로 했다. 대중매체 성차별 모니터링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모니터링 지표를 구성하고, 검색어 선정, 샘플링 방식 등 모니터링 방법을 결정했다.# 피해자의 신상 과도하게 노출검색어 당 150개의 기사, 총 1천500개 기사를 모니터링했다.이 결과 피해자의 신상을 과도하게 노출한 기사는 총 50건이었다.피해자의 실명, 가족관계, 출신 대학, 직업, 근무지 등 피해자의 신상을 가감없이 보도해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기사들이 다수였다.또한 제목을 ‘000(피해자명) 누구?’라는 식으로 호기심을 유발해 클릭을 유도하고 피해자 신상을 이슈화했다. 나아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고발한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는 ‘미투운동을 통해 이슈가 되었다’라는 식으로 접근하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의 우려가 있었다.
# 가해자의 입장 대변·해명
양평원은 보도의 객관성이 유지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투운동을 다룬 기사들의 보도 초점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의 입장’이 623건(41.5%)으로 가장 많았다.그 다음으로 ‘대책’이 357건(23.8%), ‘가해자의 입장’이 324건(21.6%)으로 뒤를 이었다.‘가해자의 입장’을 보도한 기사는 가해 사실이 드러난 가해자 입장을 대변해 기사를 작성하거나 가해자의 해명만 다루고 있었다. 피해자의 고발로 인해 가해자가 지위, 명예 등을 잃게 되었다는 식의 내용이나 피해자에게 ‘꽃뱀 의혹’을 가하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등 가해자를 향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피해자에게 잘못의 화살을 돌리는 내용이 다수였다.# 미투운동에 대한 부정적 묘사언론보도가 미투운동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초점을 두어 분석해 본 결과, 미투운동에 대한 의견 총 1천14건 중 ‘긍정적인 의견’이 777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미투운동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고, 미투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기사는157건으로 나타났다.미투운동에 대한 부정적 내용을 보도하는 기사는 ‘미투운동의 본질이 훼손될까’ 우려하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불평등한 젠더 권력에서 기인된 구조적인 문제임을 알리기 위해 시작된 미투운동을 두고 ‘정치적 공작’, ‘인민재판’, ‘마녀사냥̓ 등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또한 미투운동이 성대결을 부추겼다고 언급하거나 가해자(혹은 가해자가 소속된 업계)의 앞길을 방해한 것처럼 여겨지는 표현들이 다수 있었다. 성차별에 대한 구조적인 원인 분석이 아닌 미투운동 자체에 비난의 화살을 돌려 미투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재생산했다.
# 성폭력을 사소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표현
성폭력을 사소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잘못된 표현은 45개 기사에서 발견되었다. 성폭력 사실을 ‘성추문’이라고 표현해 가해자의 ‘좋지 못한 소문’ 중 하나로 치부하거나, ‘몹쓸 짓’, ‘나쁜 손’ 등의 표현으로 범죄사실을 사소한 것으로 축소시켰다. 성폭력 가해자를 ‘미투 가해자’라고 표기해 성폭력 사실을 감춰버리기도 하였으며, ‘오늘 또 누구’라는 식의 제목을 붙여 성폭력 가해 사실을 희화화하고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시켰다.# 제목의 선정성양평원은 보도의 선정성을 알아보기 위해 우선 기사의 제목을 살펴본 결과, 56건의 전체 기사에서 선정적인 내용을 제목으로 한 기사는 56건으로 나타났다.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 비율이 가장 높은 언론사 그룹은 지역지였다(5%, 11건). 경제/IT가 4.5%(10건), 인터넷 신문이 44.2%(8건)으로 뒤를 이었다.이외에도 피해자가 자신의 SNS에 쓴 피해사실을 그대로 인용, 성폭력 상황을 자세히, 선정적으로 보도해 가해자의 성폭력에 대해 비판하고 문제 삼기보다 피해자의 신상이 노출되고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대다수여서 보도에 대한 심의가 요구된다.한편으로는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할 여지가 있는 이미지가 삽입되어 있었다. 가해 남성의 웃고 있는 이미지와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는 피해 여성의 이미지를 삽입해 성폭력 상황을 선정적으로 그려냈다.# 언론계 자정 노력 시급양평원 민근식 양성평등교육부 양성평등사업팀장은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잘못된 보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언론계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민근식 팀장은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을 모든 기자가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이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구성원들의 젠더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성평등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민 팀장은 “시민사회의 비판을 수용하고 형식적인 ‘객관주의’에서 벗어난 언론의 새로운 규범과 윤리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특히 그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독자들이 이들의 주장과 요구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살핌의 윤리(ethics of caring)’가 언론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양성평등은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힘입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민근식 팀장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