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아직은 꽃샘바람이 차가워도 장터에 나온 할머니들의 소쿠리에는 향긋한 봄나물들이 지천이다 봉지, 봉지 캐어온 풋것들로 돈사서 고기 한 근 사고 병원에 들러 약 사고 뜨뜻한 물에 목욕도 하리라 생각하며 장날의 붐비는 장터로 들어선다.
오래 전부터 배둔장은 근동의 다른 장들보다도 성하여서 장날에는 외지의 상인들이 많이 찾아와서 북적거리고 흥이 나는 장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교통의 발달과 큰 슈퍼마켓의 등장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장날은 정겹다 재 너머 사는 지인들을 간만에 장터에서 만나 서로의 택호를 부르며 안부를 전하는 모습을 본다. 몇장째나 보이지 않는 신발점 모퉁이에 자주 앉아 계시던 할머니의 건강이 염려되는 것은 이 작은 장날의 정인가 싶다.
배둔장에는 대를 이어서 장을 지키는 분들이 적잖다.
생선전을 하시던 본동댁이 돌아가시자 외며느리가 이어 받아 시어머니 못지않게 열심이고 또 다른 생선전의 당목댁은 일선에서 물러나시고 셋째 며느리가 그 뒤를 이어 받았다 채소전의 당목댁은 그 자리 그대로 며느리가 물려받아 시어머니의 단골들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
장날의 빼어놀 수 없는 재미가 먹거리일 것이다. 이것 저것 장을 본 후 즈음 되면 장 한 쪽의 노점엔 허술한 칸막이에 낡아서 반질거리는 긴 탁자와 좁고 불편해 보이는 의자에 막걸리 한 잔을 놓고 커다란 솥에서 설설 끓고 있는 염소국밥 한 그릇을 청한다.
스물세 살부터 국밥장사를 했다는 할머니는 여든일곱이 되셨고 그 사이에 단골 남정네들도 할배들이 되어서 아예 장날마다 모여서 국밥을 드시는 계모임도 생겼다 한다.
염소국밥 할머니는 장날마다 국솥을 걸고 국을 끓여내 배둔장의 명물이 되었고 그 둘째 아들은 그 명성을 이어 받아 배둔에 염소국밥전문점을 내어서 성업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심심찮게 염소국밥집 위치를 묻는 거제, 통영, 마산 등지의 외지차량의 길안내를 한다.
하지만 배둔 근동의 염소국밥 마니아들은 굳이 장날의 불편한 그 자리에 할머니가 손수 끓이신 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나야 만족해 한다 아무리 해도 할머니의 그 맛의 미묘한 차이와 장터의 분위기가 한 맛을 더하는 것 같다.
염소국밥 할머니가 건강하셔서 맛있는 국밥으로 밋밋해져만 가는 장날의 풍미를 오랫동안 살려주셨으면 하고 바란다.
서울 사는 외손녀하고 많이 닮았다고 고기 몇 점 더 얹어 주시는 할머니의 정으로 국밥 한 그릇을 비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