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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지방화시대다. 지방화시대란 풀뿌리 민주화를 통하여 그 지역의 특수적 여건에 맞게 해당 지역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 발전적 원동력 역할이 바로 언론� �다. 계몽(啓蒙)이란 무식한 사람을 개화로 인도하면서 인습적인 기성 관념에서 벗어나 자극적이고 합리적인 인식을 갖게 깨우쳐 가는 사상을 의미한다. 이 계몽주의 사상은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유럽의 절대왕정을 파기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을 무장하여 혁신적인 사회를 만든 근본이다. 신문의 사명이 계몽주의에 그 핵을 둔다면 세부적 내용으로써의 언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인도한다
상식(常識)이란 사회인으로서 행동하고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과 이해력 및 판단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으로서 의식이 통하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언론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신문은 보도자체가 가르치고 개혁하며 사회통념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우리사회의 현실을 살펴보면 말씨나 예절, 행동면에서 상식에 벗어나는 사람이 허다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하여 개인과 사회, 국가가 정체(停滯)되어 사회가 발전없이 썩게 마련이다.
지금도 아집과 교만, 맹목적 추종에 집착하는 가진 자나 권력자의 독설은 물론이고, 심지어 국민의 의무(병역, 납세 등)를 수행치 못한 자들이 권좌에서 고질적 파행을 행세하기에 그 지역이나 국가의 저해요인이 된다. 지역신문은 그 지역의 문화(관습, 예절, 지식)를 발굴하고 서로의 조화와 협력, 상생과 문화의 균형 속에 원만한 인간사회가 형성되고 발전하는 보편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혜총스님의 시 한구절을 소개한다.
어느날 원숭이 한 마리가 밭으로 내려와 콩을 배불리 먹고는 / 양손에 콩을 가득 쥔 채 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 그런데 실수로 한 알의 콩알을 떨어트렸다 / 원숭이는 한 알의 콩을 주우려고 그만 두 손을 펴고 말았다 / 마침 놀러 나왔던 꿩과 닭이 떨어진 콩알을 모두 주워 먹어 버렸다 / 화가 난 원숭이가 이리저리 뛰며 꿩과 닭들을 쫓아가자 / 그들은 도망치면서 어리석은 원숭이를 놀려댔다 / 한알의 콩 때문에 한 줌의 콩을 놓쳐버린 원숭이가 되지 말아야 하겠다.
이 짧은 한 마디 시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상식이 통하지 않은 일화를 들어 교화시킨 내용이다.
2. 의식변화 및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철학을 가르친다
수필가 손광선의 글귀 중에 ‘옛날 한 선비가 있었다 / 노력 끝에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하는 길이었다. / 고향마을이 보이는 고개 마루에 이르자 / 갑자기 말에 내려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갔다. / 소피를 보는 줄 알았던 선비는 싸리나무에 대고 /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가 하는 말이 / 이 싸리나무 회초리가 아니었으면 어찌 오늘의 영광이 있었겠는가? / 가끔 우리는 학창시절 선생님의 따끔한 회초리의 고마움을 잊을 때가 있다’ 제목은 ‘회초리를 기억하시나요’였다.
오늘날 사회에 사람들은 땀을 덜 흘리고 많은 결실을 얻으려는 자와 노력하지 않는 곳에 부와 출세를 바라는 생각들을 바꾸는 아픈 회초리 역할을 하는 것이 신문의 사명이라 본다.
3. 올바른 여론을 형성한다
언론은 찢어지고 분열된 여론을 하나로 통합하여 발전된 지역 건설을 이끌어 낸다. 여론이란 사회대중의 공통된 의견과 공론인데 지금 우리지역에서 공공건물과 도로의 신개축은 물론이고 남북대결의 극심한 논쟁들이 극에 달하고 있는 현실을 직면한다.
물론 민주정치는 여론정치다. 그러나 그 여론이 당위성을 갖춘 하나로 통합되어야 만이 역사의 오늘이 있고 내일이 발전되는 것이다. 갈기갈기 찢어진 편파적 여론은 국력을 한 군데 집중할 수 없어 결국엔 사회가 파산되든지 아니면 국가자체가 소멸하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흩어진 여론을 가치성있는 언론을 통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하고 모두가 공통분모의 가치성을 부여받아 포괄적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여 온 것은 지역신문의 역할이 있다.
4. 불치의 문맹병(文盲病)을 고친다
문맹병이란 무식하여 얻는 병을 뜻한다. 두 종류의 문맹이 있는데 하나는 진짜 글을 모르는 문맹이 있고, 둘을 글을 알면서 글을 모르는 문맹이 있다.
글을 몰라서 문맹이 된 사람은 글을 배우면 되고, 이 사람들은 아주 쉽게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글을 알면서 글을 모르는 문맹이다. 이들은 아무리 좋은 글을 가르쳐도 안되고 아무리 깨우쳐도 안된다. 늘 다른 곳을 쳐다보고 늘 딴 생각만 하고, 늘 다른 소리만 한다. 이들은 동으로 가라면 서로 가는 선천성 도그마병(dogma)에 걸린 사람이다. 이 병은 병 중에도 난치병인데 치료가 아주 어렵다.
자기 생각만 생각이라 하고, 자기 말만 말이라 주장하며, 남의 말은 절대로 듣지 않는다. 남의 주장은 주장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전 부류들이 우리지역에 목에 힘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하고, 우리 정부의 여야국회의원과 진보의 보도로 자처하는 친북세력 및 북한 김일성-김정일 세습왕조가 그렇다고 한다.
이들은 도그마병에 걸린 문맹의 비극이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지난 6.25의 폐허속에 오늘을 발전시킨 역사적 피와 눈물과 땀의 실체를 통하고, 나만 옳다는 주장의 독선적 사례 및 월남귀순한 분들의 지옥같은 북의 이야기 등이 생생한 언론의 증언대가 될 것을 확신한다. 신문은 계몽을 통해 배우고 사실을 통해 역사를 이끌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