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기자나 작가에게는 섭외용 목소리가 있다. 남잔지 여잔지 모르는 평소의 목소리도 전화기만 들면 나긋나 상냥해진다.
고성군청 4층 통신실 좁은 방안의 강막순 씨도 비슷하다. 근 20년째 교환업무를 하다 보니 평소에는 딱 고성아줌마 목소리다가도 전화기만 들면 “네, 고성군청입니다”하며 웬만한 아가씨 못지않은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된다.
“민원인을 직접 대하지는 않지만 민원인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전화연결을 해주는 역할을 하다 보니 스스로도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처음에는 텔레타이퍼라는, 지금은 다소 생소하고 낯설기까지 한 직업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한 자리에 앉아 또닥또닥 타이핑하고 발송만 해야 하는 업무가 지칠 법도 했을 텐데, 그녀는 단 한 번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외려 이게 내 숙명이겠거니, 받아들였다. 업무가 교환이다 보니 고성군청의 모든 업무가 그녀의 머릿속에 있다. 대강의 업무분장까지도 그녀 머릿속에 빼곡히 들어있다.
자기가 좋아 하는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을 대해야 하는 그녀는 오죽할까 싶다. 내가 누군데, 라며 반말을 늘어놓는 것은 이제 예사다. 쉬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에 숨 돌릴 틈도 없이 보류해두고 다시 받은 순간 자다 일어났냐며 타박하는 민원인의 목소리에는 웃으며 대하는 여유도 생겼다. 다짜고짜 군수 바꾸라며, 욕설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와도 그러려니 하게 됐다.
“내 직업이 교환인데 화가 난다고 민원인을 함부로 대할 수야 있나요. 하지만 가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는 민원인을 대하게 될 때면 저도 사람인지라 속상할 수밖에 없어요.”
목을 많이 쓰다 보니 남들은 일주일이면 지나는 감기도 낫질 않아 고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홉시가 되기도 전에 근무를 시작해 퇴근시간을 넘길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화장실 가기도 힘든 일을 하는지라 병원에 갈 짬을 내기도 쉽지 않다.
강막순 씨는 그럴 때면 자기 몸보다도 민원인에게 더 미안하다. 교환이면 당연히 맑고 밝은 목소리로 상쾌하게 안내해야 하는데 걸걸한 목소리가 먼저 나가니 그게 제일 미안하고 힘들단다.
“어릴 적에는 패션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하지만 시골이다 보니 그런 공부가 쉽지 않았지요. 그래서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하고 싶기도 했어요. 어찌 보면 지금 저는 꿈을 이룬 거네요. 하고자 한 것은 다 했으니까요.” 강막순 씨는 어릴 적 딸 다섯을 키우느라 고생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었다. 공무원의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를 모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싶었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으니, 꿈은 다 이룬 셈이다. 아이들도 외할머니를 잘 따르고, 남편도 친정어머니를 친부모 모시듯이 살갑게 모신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걱정은 없다. 그런 그녀에게 남은 꿈이 두 가지란다.
“가능하면 직장생활을 계속 하고 싶어요.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해야지요. 이왕 하는 직장생활, 끝까지 좋은 소리 들으며 좋게 마무리해야겠지요. 또 하나의 꿈은 홈패션을 배우는 겁니다.”
홈패션을 배우면 어릴 적 패션디자이너의 꿈에 조금 더 다가설 것만 같다는 그녀. 오늘도 고성군청에 전화하면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린다. “네 안녕하십니까, 고성군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