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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나서 몇 년 뒤 누군가가 내 무덤을 파헤쳐본다면 거기에도 내 뼈 대신 내가 그 무덤 어둠 속에서 쓴 시로 꽉 차 있을 것이다.”
순탄치 않은 삶의 여정을 차곡차곡 쌓아온 시인은 노구를 이끌고 강단에 섰다. 그의 한 시간이 넘는 강연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 듯 쉼 없이 흘렀다. 고은 시인은 불콰한 얼굴로 바다의 마음을 고성에 전하기 위해 때로는 손짓으로 때로는 소년의 눈빛으로 또 때로는 몸짓으로 말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부르짖을 때도 그러했으리라.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작가들이 고민하고 모든 대중들이 생각하는 문제지요. 평생을 갈고 닦아도 찾기 힘든 해답이 아닐까요.”
좋은 글을 쓰려면 어째야 하느냐는 우문에 노시인은 현답을 내놓는다. 그는 평생을 민주화와 자유를 위해 노래하고 싸웠다. 북한에서 팩스로 남한에 글을 보내기도 했고, 예술과 민주, 대한민국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다 철창신세를 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스스로와의 끈질긴 싸움도 이어왔다. 그래서 속세와의 연을 끊고도 싶었고, 욕심 많고 우매한 생을 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의 발목을 잡는 무언의 힘이 그를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다 놨다.
그래서일까. 고은 시인의 홈페이지에는 여타 작가들과는 다른 연보가 눈에 들어온다. 전생이야기다. 전생에서 그는 카스피해안의 암말로 세상을 살기도 했고, 디오니소스의 친구이기도 했으며, 술집 주모일 때도 있었고, 피리 부는 화전민이기도 했고, 일자무식이었던 시절도 있고, 또 언젠가는 무사승에 귀머거리 머슴이던 때도 있었다.
“현생과 전생, 다시 말해 지금과 과거, 나아가 미래까지는 모두 하나입니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고은의 글을 만들었습니다. 나에게는 내가 살지 않는 미래까지도 내 시의 현재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세에서 승려이던 시절이 있어서일까. 혹은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었기에 해탈의 경지에 이른 작가여서 그럴까. 어쩐지 그와의 인터뷰가 선문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질문을 꺼내 놨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노벨문학상의 이야기.
“욕심을 낼 수도 없고, 욕심을 내서도 안 되지요. 글을 쓰는 사람은 글, 그 순수함과 귀함을 노래해야지, 무언가를 바라고 노래해서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번번이 후보에서 그치는 데도 어쩌면 욕심이 안 날까 싶은, 지극히 평범하고 탐욕스러운 생각이 부끄럽다.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그 대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주 미쳤습니다. 세상을 좀 넓히려 합니다. 훨훨! 이승에만 갇혀 있지 않을 겁니다.”
고은 시인과의 짧은 이야기 끝에 문득 ‘작가는 등대와 같아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나부끼는 배들을 이끄는 등대. 글로 마음을 울리고, 글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시인 고은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등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