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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산물인 언어 인플레-자네라는 말은 귀공(貴公)

최관호 숭조사상연구소 대표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1년 06월 03일
ⓒ 고성신문

우리는 하루에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말의 근본 어원과 뜻을 잘 모르며 사용할 때가 많다. 1990년대에 어느 예식장에 가니 입구 안내문에 ‘혼

(婚主) 김길동(金吉同)의 장자(長子) 김종일(金鐘日)’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이전에는 ‘부(父) 김길동의 장자(長子) 김종일’이라고 했고, 신부(新婦) 측도 같은 형식의 안내문을 썼다. 필자는 그때 처음 혼주(婚主)라는 언어를 사용한 것을 보았다. 그 안내문을 보고 위와 같이 부모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한 사람은 안내문에 아무런 구애받을 일이 없다. 


 


그러나 이혼과 재혼(再婚) 삼혼(三婚)이 많은 요즘 사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성(姓)이 다를 수 있다. 예식장에 온 축하객들이 혼주의 가정 사정을 잘 몰랐을 때 마음속으로 가정에 행복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그때 혼주라는 언어가 재혼, 삼혼이 많은 요즘에 참 좋은 합리적인 언어라고 생각되었다. 문화의 변화에 따라 누군가 참 좋은 언어를 만들었다고 느꼈다. 그 이후에 몇 년이 지나 어느 모임의 장소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사람이 그 언어의 근본은 옛날 전통혼례 때 혼주(婚主)라고 사용했다고 했다. 그때는 문중의 대표적인 어른을 선택해 혼주를 세워 혼인의 행사를 맡아 치렀다는 것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한글사전을 다 찾아보았으나, 혼주(婚主)는 없고 주혼(主婚)이라고 된 단어만 있었다. 그 뜻은 혼사를 주관하는 사람이라고 되었다. 그 몇 해 뒤 1999년 10월 1일 발행된 국립국어원이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에만 ‘혼주(婚主)는 결혼 당사자의 부모’라고 되어 있다. 사전도 문화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한 번은 부산대학교 제일도서관 함장실 이병혁 박사와 좌담을 하는 가운데 혼주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이 박사는 옛날에 우리의 전통혼례에 사용했던 언어는 혼주(婚主)가 아니라 ‘주혼(主婚)’이라고 했다. 우리 고례(古禮)는 혼인을 할 때 가문의 복 내(8촌 내) 종손을 혼주가 아닌 주혼(主婚)으로 대표해 결혼을 치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여성의 사회활동이 보편화한 요즘 안내문에 부(父)와 혼주(婚主)도 쓰지 않고 바로 ‘김길동, 서정자의 장남, 김종일’이라고 하고, 신부 측도 같은 문장으로 하고 있다. 부친이 없을 때는 ‘서정자 여사님의 장녀’라고만 했다. 이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언어가 시대의 문화에 따라 변해 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또한, 어르신들은 아래 사람에게 ‘자네’라는 말을 잘 쓴다. 그런데 이 말을 1998년 안동시 정상동에서 묘지 이장을 하던 중 412년 전 관속에서 죽은 남편에게 쓴 편지에서 이 언어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 1586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장례 날까지 짧은 시간에 촘촘하게 쓴 한지(韓紙) 원지 절반 크기에 빼곡히 적은 사랑의 사연이었다. 이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의 일이다. 고성이씨 한 양반의 가문에서 아내가 죽은 남편이 저승 갈 때 신고 가라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과 혼합해 노끈을 꼬아서 미투리를 삼아 신발을 만들어 애절한 한글 편지와 복중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줄 배냇저고리와 함께 관 속에 넣어 놓았던 것이다. 그 시대에 남편에게 자네라는 말을 사용했는지 아는 학자를 만나 보지 못했다. 평소에 이 부부간에 둘만 있을 때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에 보편적으로 그 언어가 통용되었는지, 아는 자가 없다.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된 이 편지는 요즘 당신이라고 써야 할 언어 대신 자네라고 썼던 것이다. “…… 어찌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십니까? 자네는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나는 자네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자네 여의고 아무리 해도 살 수 없어요! 빨리 자네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이 애절한 편지에 요즘 당신이라고 해야 할 말을 자네라고 한 것이다. 어느 날 한 좌석에서 이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고성이씨 후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뒤에 이장을 하면서 ‘자네’라는 글자 대신 당신이라고 비문을 고쳐서 썼다는 것이다. 만약 그 부부만이 사용했던 잘못된 언어라 해도 원문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자네라는 말은 자(子)에서 나온 말이다. 대한한사전(大韓漢辭典)에 자(子)를 찾아보면 아들  자, 종자 자, 당신 자, 자네 자, 어르신 자 등 12가지의 뜻이 있으나, 자네 자는 귀공(貴公)의 뜻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그 당시 이 말이 통용된 것이 확실하다. 자(子) 자에는 당신이란 말도 있다. 한글사전을 찾아보면, ‘하오 할 자리, 또는 낮잡아 하오할 뜻으로 상대편을 일컫는 제이인칭 대명사, 또는 그 자리에 없는 웃어른을 높여 일컫는 제삼인칭 대명사’라고 되었다. 아들자자는 논어(論語)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었다. 공자의 존칭부터 제자들에까지 또는 선생, 그대라고도 사용했다. 논어 자장(子張) 편 25장을 보면 진자금(陳子禽)이 자공(子貢)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스승을)공경할지언정 중니(仲尼, 공자의 자)가 어찌 자네보다 현명하겠는가?”(陳子禽, 謂子貢曰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라고 했다. 여기에서 자(子)는 그대라고 해석된다. 진자금과 자공은 다 같은 공문의 제자다. 조선조 500년은 논어를 지표로 생활하여 그 단어를 지금도 상용한다. 또한 자(子)를 당신이라고 해석했다. 우리는 시나 수필 또는 연설문에서도 간혹 당신이라는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당신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현재는 지방마다 그 뜻은 조금씩 다르게 해석된다. 당신이란 말이 영남은 평등 이하의 아래 사람에게만 사용한다. 제일 많이 사용하는 곳이 부부 사이다. 현재 영남은 같은 평등한 친구 사이라도 듣는 이가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 언어는 아무리 부모가 그 좌석에 없더라도 ‘당신께서’ 라고 부르는 것은 영남의 정서로서는 받아들이기엔 유연성이 부족한 언어라고 생각된다. 심지어 이 언어가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학자도 있다. 과거에 존칭어였던 언어가 지금은 인플레가 되어 듣기가 거북한 언어가 된 것이 많다. 과거 60년대 이전만 해도 비석과 상석에 학생(學生)이라고 썼고, 선생(先生)이나 처사(處士)라고 쓴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선생, 처사라고 쓰고, 학생(學生)이라고 쓰는 상석(床石)과 비석(碑石)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자네나 당신이란 글자도 자(子)에서 나온 존칭어의 말이지만 인플레가 되어 요즘 정서로는 듣기가 거북하며, 선생, 사장님으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 문화에 따라 언어도 변화하고, 인플레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1년 06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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