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8-02 21:17:29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인터뷰

“부모와 자식은 끊을 수 없는 천륜입니다”

고성읍 동외리 김대성씨 제39회 어버이날 효행자부문 보건복지부장관상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1년 05월 16일
ⓒ 고성신문

꿈을 꿨다. 꿈에서 어머니의 목이 달아났고, 얼굴이 땅을 굴렀다. 아차, 싶었다. 잠에서 깨고부터 어머니께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8시간을 애를

태우다 창원 삼성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은 어머니를 찾았다. 김대성 씨는 그 순간을 아찔함으로 기억한다.



그의 모습은 고성읍내 사람들은 다 안다. 철마다 바뀌는 어머니의 화사한 옷가지와 눈이 내린 듯 새하얀 머리에 올린 고운 색깔의 모자,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이미 중년의 아들.



그는 고성군의 모든 젊은이들이 대개 그렇듯 젊은 시절 20년을 경기도 용인이며 전남 광양이며, 객지로 돌았다. 그러다 2000년 3월 30일, 어머니가 쓰러졌다.
일에 쫓기던 아들은 한 달을 까맣게 몰랐다. 4월 23일 꿈에 어머니께서 그렇게 나타나셨고, 그길로 어머니께 달려갔다. 새벽 두 시에 창원엘 도착했다.



처음 본 어머니, 배복수 여사의 모습은 처참했다. 뇌출혈과 함께 합병증으로 폐렴까지 온 상태였다. 가망이 없었다. 기적이면 모를까, 일어날 희망이 없었다. 의료진도 사망선고를 내렸고, 장례를 치르러 고성으로 다시 모셔왔다. 하지만 아들은 포기가 되질 않았다.
“아들 된 도리로 어떻게 어머니의 생명을 포기하겠습니까. 당신이 제게 주신 사랑을 생각하면 사망선고라 해도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뇌사상태로 2년을 병상에 누운 어머니를 극진히 살폈다.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2년 만에 어머니는, 말을 조금 잃고 수족의 자유로움을 잃긴 했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그 후로 9년을 더해, 꼬박 11년을 어머니의 병수발에 매달렸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를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것까지 모두 김대성 씨의 몫이었다. 큰형님은 작고하시고, 작은 형님은 사정이 어려워 어머니를 모실 수가 없었다. 누나마저 머나먼 미국에 있으니 김씨는 당연하게 어머니를 모셨다.



3년을 말을 하지 못하셨고, 말문이 다시 트인 후 3년을 걷지를 못하셨다. 집에다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을 갖추고, 산소발생기를 들여놓고 매일매일 아파트단지며 남산까지 휠체어를 밀며 다녔다.
간병인을 쓸 수도 없었다. 혹여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서도 무서웠지만, 어머니를 운동시켜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어머니 당신께서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대단하셨다. 그렇게 기적처럼 어머니가 일어섰다.



그동안은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생활의 중심은 어머니였다. 자신에게는 단 한 푼도 쓰지 않던 돈을, 어머니께는 철마다 나는 과일 중에서도 제일 비싸고 좋은 놈으로 골라 아침저녁으로 갈아드렸고,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어머니께 드릴 콩을 갈았고, 장엘 가면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생선을 제일 먼저 담았다.



그래서 정작 자신이 아픈 건 몰랐다. 6년쯤 전에 발견한 용종이 물혹이 돼서 옆구리에 자라고 있었다. 지금이야 수술을 해서 나았지만, 그때는 어머니 몸도 성치 않은데 이 일을 어쩔까 싶어, 눈앞이 아득해졌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자식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신 어머니였습니다. 언제나 당당하게,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셨지요. 누님이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까 싶습니다. 미국 LA에 계신 누님께서 경제적으로 참 많은 도움을 주셨지요. 모든 분들이 제가 11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어머니를 봉양하는데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됐습니다.”



누나가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어 그것도 김대성 씨에게는 아찔하다. 얼마간 모아둔 돈도 시간이 조금 지나니 금세 바닥나버렸다. 기댈 곳은 누나뿐이었다. 하지만 누나도 그다지 넉넉지 못한 살림이라, 생활비를 보낸다 해도 많지 않았다. 그때를 누나는 이렇게 회상한다.



“사는 게 바빠 한국엘 와보지 못했으니 이 상황들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제가 좀 덜 쓰고 덜 먹고 덜 입더라도 조금 더 넉넉히 보냈겠지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에 제가 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눈을 감으셨습니다. 운명을 달리 하신 어머니를 보며 제가 왜 그때 좀 더 마음을 쓰지 않았던가, 왜 늦게 왔던가, 얼마나 가슴을 뜯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효심은 동생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 효심이 서울까지 소문이 났던가 보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효행자부문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어머니의 49제를 앞두고 있어 그 감격이 더했다. 미국에서 날아온 누나는 그 소식에 눈물까지 글썽였다.



“동생이 아내도 없이 혼자서 어머니를 모시는 걸 보고 안쓰럽기도 하고 어머니를 맡겨 놓기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께서 아들에게 이 큰 상을 주시려 기적처럼 되살아나신 거구나, 싶습니다.”



“지면을 빌어 감사할 분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적에 알리지 않아도 찾아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또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입니다. 끊을 수 없는 연입니다. 천륜을 어기면 안 됩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자식된 도리로 당연한 일입니다. 건강한 것도 효도입니다.”
남매는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칭찬하기도 하고 덕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 모습을 거실 가운데에 계신 어머니가 내려다보며 웃는 듯하다.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1년 05월 16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