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집단지능(集團知能)·협업지 (協業知性)과 같은 의미로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에서 얻은 집단의 지적능력을 의미하며, 개체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개인’보다 현명하다(We are smarter than me)는 것이며, 정보와 지식의 공유와 협업이 핵심가치이다.
이 개념은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가 개체로는 미미한 개미가 공동체로서 협업(協業)하여 거대한 개미집을 만들어내는 것을 관찰하고, 미미한 개체의 개미지만 군집(群集)하면 높은 지능체계를 형성한다는 의미로 설명되고 있다.
집단지성은 사회학이나 과학,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현될 수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까지 연구 대상에 포함된다. 인간의 집단지성 발현 창구로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용자 참여의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웹2.0을 꼽을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이 집단지성에 날개를 달아, 지식·정보의 생산자나 수혜자가 구분 없이 누구나 생산할 수 있고 모두가 손쉽게 공유하면서도 정체되지 않고 계속 진보하는 집단지성의 특성을 보여준다.
집단지능의 가치는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약간은 경쟁적으로 협력하며 아이디어를 내다보면 훨씬 더 훌륭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여와 공유를 기반으로 하는 웹2.0 시대에는 전 세계인의 뇌가 웹상에서 하나로 연결돼 정부나 기업, 개인의 환경을 급속도로 바꾸는 데다 네티즌의 협업으로 얻어지는 '집단지성'은 생활이나 위기관리에서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서해안 백령도 인근의 ‘천안함’ 침몰사건 구조작업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심청전의 인당수로 알려진 백령도 인근의 서해안 유속이나 ‘조수간만’ ‘물때’ ‘사리’ 등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딱히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고생하는 해군 해경의 노고도 인정한다. 하지만 심해탐사선이나 잠수함까지 만든다는 이 시대에 차디찬 물속에 가족을 둔 형제자매의 입장에서 저렇게 드디게 전개되는 구조작업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혹여 군의 자존심 때문에 집단지성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군사기밀이라는 이름으로 더 큰 자존심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국가적 대사에서 민간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적이 많이 있다. 84년 서산간척지 물막이공사에 유조선을 동원한 것이나, 90년 한강의 홍수로 경기도 일산지역 제방이 붕괴됐을 때 고 정주영 회장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차용한 적이 있었다. 이번 천안함 구조작업에 쌍끌이 어선이 등장하는 것도 모두 위기 때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집단지성의 결과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개미학자 고든(Deborah Gordon)은 개미굴 앞에 이쑤시개를 잔뜩 뿌려놓고 그들이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는가 관찰했다. 일개미들은 제가끔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면서도 자기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 동료를 발견하면 기꺼이 그의 작업에 합류한다. 다분히 획일적으로 보이는 개미의 행동은 사실 많은 일개미들의 자율적인 개별 행동들이 수렴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집단지성에도 함정은 있다. 집단지성의 가치는 개방과 공유이다. 인터넷이 지식의 놀이터가 돼준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폭넓고 깊이 있게 적용할 수 있으리라는 긍정론과, 지극히 평범한 생활중심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부정론이 양립하는 것이 그것이다.
국내에서는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이후 집단지성의 가치논의가 본격화됐다. 촛불시위의 후유증으로 집단지성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높다. 잘못된 정보나, 정치적 의도, 군중심리 등이 뒤섞이면 ‘지성’과는 달리 ‘집단’의 기능만 발현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아젠다에선 정치적 선동과 상호비방 일색일 수 있는 데다 심지어 허위사실 유포와 원색적 비난으로 자살에까지 몰아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집단지성은 지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도구(tool)는 다 마련돼 있고, 활용해보니 좋더라’는 것이다. 지식으로만 치자면 고 정주영회장 밑에는 박사들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주영회장의 아이디어가 더 현실적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번 서해안 천안함 침몰을 놓고 보면 선체 구조에 대해서는 조선기술자가, 무기에 대해서는 군사전문가가, 조류나 물때와 관련해서는 인근의 어부가 가장 전문가일 것이다. 이런 다양한 영역을 하나로 묶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데는 집단지성이 상당히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낮은 집단지능은 결코 집단지성을 만들어낼 수 없다. 더구나 스티브 잡스와 같이 세계적 히트상품을 만들어낼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을 멈춘 국민’이 주류를 이루지 않는 이상, 건강한 집단지성이 움직이는 사회는 위기를 돌파하는 데 상당한 시간적 물질적 에너지 낭비를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진실 추구와 냉정한 판단이 증발한, 군중심리만 난무하는 곳이 아닌, 집단지성이 건강한 통섭(統攝)의 지혜를 내놓는 그런 사회로 변화하면 우리 모두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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