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축년 한해도 이제 채 며칠이 남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면 올해의 10대 뉴스가 신문지면을 장식한다. 10대 뉴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좋은 뉴스보다는 나쁜 뉴스가 더 많다.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유난히 지명인사의 사망소식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 마이클 잭슨 등 누구나 알고 있는 분들의 서거 사망소식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동안 큰 슬픔과 깊은 고뇌를 안겨줬다.
2009년의 시작도 우울했다. 2008년 말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구조조정’ ‘비상경영’ ‘임금삭감’ 등 우울한 단어들로 한 해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또 청년실업으로 이어져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대학의 문을 나서는 젊은이들에게 크나큰 좌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용산 참사’와 ‘미디어법’ ‘쌍용자동차 파업’ ‘세종시 문제’ ‘4대강 문제’ 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불신’ ‘불화’의 시대로 가고 있다. ‘신종 플루’가 횡행하는 이 엄동설한을 지나면 또 얼마나 많은 말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을 것인가.
누구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는 선량하다. 그렇게 선량한 국민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새출발의 각오는 잊고 과격으로 치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2010년은 무엇보다 갈등해소가 먼저다’라고 외치고 싶다.
갈등의 사전적 정의는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칡과 등나무는 덩굴식물로 서로 같은 곳에서는 상생이 힘들다. 그러나 각각의 용도를 찾으면 후미진 산기슭도 초록으로 감싸고, 여름철에는 더 없이 좋은 그늘을 제공하기도 한다. 문제는 갈등이 스스로든 선구자든 미래를 내다보는 심미안이 부족해서 제한된 영역에서만 우위를 점하려는 이기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새해에도 예상되는 갈등은 무수히 많다. ‘세종시 이전문제’와 ‘대북협상’ ‘외국어고등학교’ ‘미디어법 통과에 따른 후속조치’ 등등. 이런 갈등 난제들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여기에다 태풍과 가뭄, 신종 플루, 조류독감, 광우병, 구제역, 비브리오 패혈증 등 매년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재해는 대부분 임기응변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하물며 인간의 사회활동 산물인 ‘경기’ ‘실업’ ‘쌀 소비’ ‘농산물 풍·흉작’ 등의 문제는 누가 언제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새해에는 갈등도 해소하고 문제해결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개인적으로 국민 모두가 ‘좀 더 천천히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정직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내가 이기고 내가 이익을 얻었다는 성취감 대신 승자도 패자도 이긴 사람에겐 박수를, 진 사람에게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 ‘정직한 상생의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정직이 있을 때 비로소 심미안도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요즘 대형 할인마트에 가면 대부분 ‘단수가격(Odds price) 마케팅’이 활개를 친다. 단수가격이란 1천원하는 물건을 985원으로 표기해 15원을 할인해주면 소비자는 예상한 절대가격보다 싸다는 느낌에 매력을 느껴 구매 수용도를 높이는 전략을 말한다. 그러나 구매를 다하고 계산서를 들여다보라. 얼마를 할인받았는지 계산이 되는가. 이 단수가격은 초창기에는 소비자들에게 많은 호감을 샀다. 첫째 소비자에게 가격이 세밀하게 책정됐다는 신뢰감을 주고, 둘째 싸진 가격 때문에 소비자는 심리적 저항감을 낮춰 구매행위를 유발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간단히 생각해서 계산원의 불필요한 손놀림은 기업의 고용비용을 증대시켜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또한 소비자는 자신이 구매할 품목과 비용에 대한 합리적 사고에 지장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 소비자가 덤을 얻었다는 만족감에 쾌재를 부르게 만들지 모르지만 우리는 점점 종합적 사고능력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단수가격은 이젠 소비자에게 너무나 진부한 마케팅이다. 또한 이미 신뢰성도 잃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미풍양속에도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의 미풍양속에는 ‘덤’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사람간의 인정을 계량화된 ‘돈’ 중심이 아닌, ‘정’으로 전이시킴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가치를 만들지 않았는가. 차라리 정찰제 가격표시가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현란한 트릭의 세상에 살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던 미국경제가 현재 걷잡을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한 것도 지나친 트릭의 금융이론에 원인이 없지 않을 것이다. 새해의 뜨거운 감자가 될 세종시 이전문제도 무엇이 옳고 그름을 떠나 결국 트릭의 결과가 국민과 국가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지는 않은지 정치인들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보이는 진실보다 숨겨진 의도를 찾는 데 더 열중하는 노력의 공허함을 줄여야 한다. 거짓으로 값싸 보이는 트릭이 아니라 정으로 더해주는 정직한 덤이 더욱 많았으면 한다. 그래야만 이웃이 진정한 이웃이 될 것이고, 국민과 대통령은 만나지 않아도 소통하는 진정한 ‘화합의 장’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갈등해소를 위해 조금씩만 더 정직해지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