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고향은 무엇인가
/황수경 기자 / 입력 : 2005년 02월 12일
|  | | ⓒ 고성신문 | | 명절 때 돌아갈 고향이 있는 자는 기쁘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자는 슬프다.
명절 때 고향산천의 포근함에 안길 수 있는 사람은 웃음이 넘치고, 철조망 문에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는 사람은 통곡한다. 고향이 있는 사람의 행복과 실향민의 비애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
그곳이 우리 한국 땅이다.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메밀 꽃 하얗게
피는 곳……//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시인 노천명은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렇게 애잔하게 읊었다.
비단 노천명에게 뿐만이 아니라 時의 고금과 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고향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어왔다. 고향이 무엇이길래 이들로 하여금 고향을 노래하고 그리워하게 했던가.
고향은 혈연과 지연이 동심원을 그리는 곳이다. 고향은 누대(累代)에 걸친 시간을 통해 피가 이어지는 곳이며, 삶의 공간을 공유하는 동질적 장소이다. 사람은 고향에서 첫 생명을 받아 태어나고 자란다. 자라면서 그곳의 산천과 교감하고 별들과 대화하고 풀잎과 속삭이고 자연의 심성을 닮아간다.
고향을 생명의 시원지, 추억의 요람, 때묻지 않은 동심의 서식지, 마음의 안식처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향의식은 세계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정서이다. 그러나 동양, 그 중에서도 우리 한국인의 고향의식은 유별하다. 왜일까. 고향의식이 생겨난 것은 농경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농경생활은 땅과의 정착성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데 비해 평야가 적어 농경지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땅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오랜 세월에 걸친 생활의 근거지에 대한 남다른 연고의식이 형성된 것, 그것이 한국인의 고향의식이다. 한 마디로 한국인의 유별한 고향의식은 땅을 매개로 한 심상(心像)인 동시에 땅과의 긴밀한 밀착성이 낳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유목민을 보라. 물이 있고 풀이 자라는 곳을 찾아 삶의 터전을 옮기는 그들의 모습을. 물과 풀이 없는 곳에서의 정착생활은 그들에게는 차라리 삶의 포기이다. 그러기에 유목민은 절박한 삶을 보장해주는 오아시스를 찾아 이동하고 또 이동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고향의식이 형성될 여지가 아예 없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인의 고향의식은 나의 존재를 특정한 땅에 귀속시킴으로써 나를 타자와 구별되게 하는 자기정체성의 확인 방식이기도 하다.
고향의식 가운데 하나가 향수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결핍된 것을 보상받고 싶어하고 가까이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동경을 지닌다. 이것이 향수라는 심리의 작동기제이다.
향수의 작동은 고향을 떠난 사람이 그리움의 모자를 쓰고 타향의 현재에서 출발해 고향의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재의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여행이다. 이 여행에서 그리움은 개개의 추억으로 환원되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다.
자기가 태어나 자라고 동심을 키운 땅을 향해 곧장 달려가는 애틋한 마음. 향수는 우회하는 감정이 아니라 가슴을 직선으로 관통하는 원초적 감정이다. 머리 속에서 혼자 그리는 그리움의 풍경화이다.
향수에 젖어 있을 때 사람은 누구나 순수주의자가 되고 휴머니스트가 된다. 진정으로 향수에 결박된 사람은 악인이 될 수 없다.
명절이 되면 길게 꼬리를 무는 자동차의 행렬. 정체가 심한 경우 거의 스무 시간이나 소요되는 오랜 시간을 마다 않고 고향으로 고향으로 달려가는 긴긴 자동차의 행렬은 몸 구석구석에 내장된 향수가 밖으로 드러나면서 펼치는 한 폭의 풍경화이다.
향수의 심리 작용은 고향을 떠나 있는 거리에 비례하고 타향에 정착한 시간에 반비례한다. 고향과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일수록 향수의 순도가 높고, 고향을 떠나 있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현지의 생활에 동화되어 향수의 순도가 흐려진다. 산업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우리들의 고향 그 문전옥답은 개발붐을 타고 공장과 아파트로 들어찼다. 삶을 지탱해주던 논밭은 농산물 대신 공산품 생산지로 변했고, 씨족사회는 해체되고, 사람들을 끈끈하게 묶어주던 인정의 끈도 느슨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한민족이다. 비록 산업화의 거센 파고가 휘몰아쳐도, 이향민이 나날이 증가해도 한국인의 심성 근저에는 고향의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한국인의 혈관에는 고향에의 끈끈한 그리움이 면면히 흐른다.
특히 아득한 먼 옛날 우리의 정든 고향 고성(固城)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선조들의 길고 긴 기억들은 하나의 유전자로 고착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고성인들에게 대대로 유전되고 있다.
그 유전자를 몸 속에 지니고 있는 우리는 어디에 살든 고성인. 한번 고성인은 영원한 고성인이다. 그 자손 또한 고성인이다. 고성인이라는 명칭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인 것을 …….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찬란한 문화의 소가야와 당항포 대첩 그 역사의 땅, 공룡 발자국 화석이 중생대 지구의 역사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명소, 고성농요와 오광대의 서민정신이 숨쉬는 전통문화의 거점 우리 고성.
우리가 고성인인 이상 우리 고성에 대한 고향의식은 유구할 것이다. <거류면 출신> |
/황수경 기자 /  입력 : 2005년 0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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