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7-02 04:13:4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라이프

“외롭고 슬픈 팔자, 고향이 있어 버텼습니다”

고성읍 무량리 출신 한미우호협회 박근 명예회장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9년 09월 14일
ⓒ 고성신문


 


제11대 유엔대사, 제12대 외교안보연구원장
벨기에 대사 EC, 룩셈부르크 대사 등 역임


 


1927년 일제 강점기, 손바닥만 한 시골, 고

에서 태어나 30년을 대사관으로 이름조차 어려운 유럽의 나라들을 드나들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UN대사로 세계를 떠돌았다. 일상을 포기한 채 ‘외롭고 슬픈 팔자’를 살아내다 보니 80을 훌쩍 넘긴 노신사다.
한미우호협회 박근 명예회장은, 세계를 떠돌며 한국의 기적을 배우고, 고향의 정을 그리워했다.


 


# 한국, 기적의 발견



일제식민지 시대에 무량리에서 태어나 읍내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읍을 둘러보고 진주 사범에 다니면서 진주에 살아 보고 서울 대학에 들어가 서울을 구경하고 한국전쟁 때는 학도병으로 북진하여 흥남, 함흥과 북한동포의 삶에 눈물 흘렸고 캐나다와 미국에 유학하여 북미대륙을 체험하고 외교관이 되어서는 30년 가까이 전 세계 곳곳을 보고 다녔습니다. 한 촌놈의 이러한 팔자는 어쩌면 신기한 팔자일지도 모릅니다. 남의 도움과 온정 없이는 꿈에도 불가능한 상팔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그늘에는 항상 말없이 우뚝 선 내 고향의 아름다운 상징, 거류산과 벽방산이 눈 안에 서려 있었습니다. 깨금을 따먹으며 천황산에 올라가던 어린 시절의 산길도 꿈 안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리움에 젖어 살아야 하는 외롭고 슬픈 팔자 뒤에 고향 고성의 그림자가 따라다녔습니다. 차 안에서 이미자, 박설희의 ‘다시 불러보는 옛 노래’를 들으면서 외국대사들을 만나러 다녔지요.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이것이 나의 삶이었습니다.


 


# 가슴이 터질 듯한 기억



1975년 주 스위스 대사시절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베트남이 함락하는 것을 TV로 본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당시 일부 우리나라 국민을 포함해 세계 많은 사람들이 소련을 종주국으로 하는 공산주의가 얼마 안 가서 세계를 휩쓸게 될 것이라고 떨고 있을 때였습니다. 공산군이 베트남을 다 정복하고 수도 사이공(호치민)으로 쳐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한국대사를 포함해 자기나라 외교관과 교민들, 군인을 철수시키는 길이 다 끊겼기 때문에 헬리콥터로 바다에 떠있는 항공모함으로 실어오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계속 날아오는 헬리콥터들이 사람들을 내려놓고 다시 사이공으로 되돌아가서 사람을 실어 오지 못할 지경이 되었고 그 큰 항공모함 갑판에도 세워놓을 곳이 없어졌습니다.


 


사태가 급박하다 보니 날아오는 헬리콥터들을 사람을 내려놓자마자 그대로 바다로 밀어 던지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와! 전쟁에 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패전은 이런 것이구나! TV 앞에서 나는 공포덩어리로 변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내 가족의 앞날은? 당장 내 자신의 신세는? 내 가슴은 이런 저런 것으로 터져 나갈 듯했습니다.


 


# 나를 지탱해 준 보수주의적 세계관



근 30년 이상 북한공산주의와 소련 냉전 체제의 도전 앞에서 나를 지탱해준 역사관이 있었고 세계관이 있었습니다.


 


세계역사는 자유체제가 억압체제를 이겨내고 개인의 위상과 힘이 계속 높아지고 인간의 마음속과 사회 안에 있는 천사와 악마의 싸움에서 천사가 이겨내는 방향으로 전진할 것이라는 나의 신념과 믿음이 뿌리 채로 흔들린 때는 단 한 번 베트남 함락 때였습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 나는 보수주의적 세계관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낙관 속에 살았습니다. 세계 선진국들도 예외 없이 보수주의적 가치관에 사는 나라들입니다.



보수주의는 중도나 중간에 선, 어정쩡한 사상이 아닙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과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삼고 그 안에 확고하게 서있는 사상입니다.



현대의 잘사는 나라는 모두 두 개 이상의 보수주의 정당이 서로 경쟁하고 정권을 바꿔가며 다스리고 있습니다. 최근의 일본도 그 예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여 야가 함께 중심이 확고하게 선 보수주의적 정당이 되면 정치도 바로 잡힐 것으로 믿습니다.


 


# 남한과 북한, 그리고 한미동맹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 체제는 세계사의 거센 물줄기에 반드시 쓸려가고 말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얼마나 빨리인지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북한 핵도 중국이나 미국이 제거 못하면 김정일은 핵을 안고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까지 참으면서 노력해 나가면 될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을 필요로 하고, 또 미국은 급부상하는 한국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떤 좌파정권이 다시 들어선다 해도 지난 10년의 경우처럼 미국에 “이혼하자”고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이란 괴물과 너무 오래 싸워 오다 보니, 상당 부분 괴물에 닮아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폭력국회, 폭력시위, 포악한 표현과 말씨 등등.
때로는 가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선진국이 되고 또 북한체제가 변하든지 몰락한다면 차차 나아지리라고 믿습니다.


 


# 모두 변해도 산은 변하지 않는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중에 거류산 기슭, 당동에서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지요. 평생의 보배가 된 물놀이 기술이었습니다. 매일 십리가 되는 자갈길을 왔다 갔다하며 학교에 다닌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미술시간에 그린 거류산 수채화가 뽑혀서 학교 현관에 걸렸을 때의 기쁨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일제 말엽에 진주를 왔다 갔다하는 버스가 석탄 연료 버스였기에 가다가는 서곤 했고 고갯길을 못 올라가서 허덕이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2000년대 초에 고성 앞바다 토끼섬에 선친의 덕을 칭송하는 송덕비를 세웠지요. 그때 눈에 띄게 발달하고 있는 고성읍의 모습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무량리에 가서는 옛 모습보다 더 초라해진 마을, 일가친척들도 다 떠난 초라한 집들, 알아보는 사람도 못 만나고 메마른 개울을 보며 눈물 속에 ‘고향무정’을 불렀습니다.



떠나면서 마을 앞 우물가에 서있는 정자나무 밑에 어떤 할아버지가 홀로 앉아 있어서 다가가 보았더니 “너, 정만이 아닌가?” (정만은 어릴 적 이름) 하는 것입니다. 순간 나도 알아채고 “너 상우 아닌가?” 하였지요. 이것이 유일한 만남이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사람도 다 가고 마을도 쓰러지고 있구나…추억을 안은 뒷산과 앞산을 되돌아보면서 떠났습니다.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9년 09월 14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