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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의 권익을 지키는 정미옥씨는 소설 상록수의 채영신을 연상케한다.
정미옥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위해 공장에서 일했고, 남편과 결 해 농민운동을 결심하고는 생전 해보지 않은 농사를 지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불현듯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못배운 사람들을 깨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사람, 채영신이 생각난다. 정미옥씨는 농민들의 편에 서서, 농민들의 권익을 지키는 사람이다.
# 열정과 굳은 신념, 농민운동의 시작
경상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같은 학교 농대를 다니는 남편을 만났다. 88학번인 정씨는 막 농활을 시작했고, 남편과는 농활을 같이 다니면서 의기투합했다. 졸업 후 정씨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깨닫고 공장엘 1년 다녔다. 공장의 고된 일들에 익숙해질 때쯤 남편과 결혼했고, 남편의 오랜 소망이던 농사를 위해 경남도내 곳곳을 다니다가, 남편의 선배가 있는 고성으로 최종낙점했다.
도시에서 줄곧 생활하던 사람이 농사일에 쉽게 익숙해질 리가 만무하다. 처음 고성에 내려와서는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26살, 한창 멋 부리고 친구들과 놀러 다닐 나이에 정씨는 결혼과 동시에 농사를 시작했으니, 어린 마음에 서럽기도 했다.
“그래도 열정이 있어 버텨왔죠. 원체 적응을 잘 하는 성격이다 보니 마을분들의 관심과 배려에 금방 마음을 열었어요. 농사일이 그렇잖아요. 열정과 신념 없이는 못하는 일이니, 다시 한 번 단단히 각오할 수밖에요.” 고성에서 빈집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이내 시작한 농사일. 지금도 남편과 정씨는 자리에 누워 웃으며 이야기한다. “지금 같으면 과연 우리가 농사를 감히 시작할 수 있었을까.”
# 가격과 유통만이 농민을 살린다
“고성에 와서 보니 농민단체가 이미 조직돼있었지만 농민들의 생활은 그간 알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농민의 권익과 지위향상을 위해서는 농민운동의 촉발이 필요했고,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던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 결국 정미옥씨의 일이 됐다. 농사일과 함께 시작된 농민운동은 벌써 14년째다. 농민운동을 하면서 정씨는 연행도 돼보고,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국제농민조직과의 연대를 위한 국제연대활동, 여성농민의 손을 거친 토종종자를 심고, 거두고, 나누는 토종종자사업, 소비자와 생산자의 직거래 시스템인 텃밭사업 등등. 정미옥씨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열 손가락을 전부 다 꼽아도 한참 모자란다.
정씨는 우리텃밭사업이 먹을거리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의 욕구가 높아지면서 좋은 상품을 싸게 사는 직거래의 수요가 늘고 있다.
“사실 농민들 입장에서는 공판장에 내놓는 게 더 편해요.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을 생각하면 가격이 오르니, 이도저도 못하는 거죠. 상인들도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 직거래의 활성화가 되고, 소비자들에게는 값 싸고 질 좋은 농산물을 사는 기회를, 그리고 농민들에게는 적당한 가격에 확실한 유통판로를 마련하게 되는 겁니다.”
정씨는 이런 사업들을 통해 우리 농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해야한다고 말한다. 벤처농업이 뉴스거리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농민들의 삶은 아니다. 부농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100에 하나다.
소농민들은 수입농산물이 들어오면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일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씨는 그래서 농업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농업정책에 따라 농민들의 삶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란다.
# 스스로를 담금질한 농민운동
“농민운동은 현실을 비켜가지 않습니다. 농민운동의 예측은 빗나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농민들이 대체 어떤 믿음으로 농사를 지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죠. 농사는 식량문제고, 식량문제는 곧 큰 골칫거리로 변할 겁니다.”
정씨는 국제정세가 변하면서 덩달아 식량문제가 널을 뛸 것으로 내다본다. 그리고 농업은 생명산업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민운동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여물었다고 생각합니다. 농민들은 공동체문화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어요. 농민들을 위해, 농민들이 참여하는 농민운동을 통해 저 스스로를 튼튼히 성장시켰습니다.”
정미옥씨는 동네 할머니들의 나무등걸 같은 손등을 보면 ‘저 어르신들, 에너지를 모두 밭에 쏟았구나’ 싶단다. 그래서 밭작물이 제대로 지원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단다. 제대로 농사를 짓고, 제대로 값을 매기고 받는 정상적인 시스템. 그것은 정씨뿐 아니라, 모든 농민들의 소망이요, 믿음이다. 누군가는 이상향이라 할지 모르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미옥씨는 오늘도 농민운동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여성농민들의 권익을 높이고, 지위를 향상하기 위한 농민운동. 정씨에게 농민운동은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라지만, 어쩌면 그 자리는 정미옥씨를 위해 비워진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