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영양천씨 시조 천만리 장군 시호장과 유사 엮어
총 68매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박물관서 보관돼야
영양천씨의 시조인 천만리 장군을 모셔놓은 사당인 호암사의 목판이 심하게 훼손돼 보존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은 경남지역 목판자료에 대한 조사 및 정리 사업의 일환으로 호암사 소장 사암실기 목판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호암사 목판 대부분이 심하게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천만리 장군의 시호장과 유사를 엮은 호암사 목판은 총 68매로 돼 있다.
박순 연구원은 “호암사 목판은 100여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그 안에 기록된 내용은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보존상태가 매우 불량해 빠른 시일 내 박물관 등으로 옮겨 안전하게 보존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영양천씨 문중에서 보존되고 있는 문화재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면서 호암사 목판은 문중의 얼마 남지 않은 유적 중 하나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고성탈박물관 등지의 수장고 내에 보관할 것을 조언했다. 이 외에도 경북 안동에 소재하고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도 문중에서 의향만 있다면 보존해 줄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물관에 보관을 의뢰할 경우는 기탁이 아니라 기증이 돼야 하기 때문에 영양천씨 문중에서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성탈박물관 관계자는 “문중과 협의를 거치면 언제든지 기탁도 가능하다”며 문화 유적의 박물관 보관은 유적의 가치 정도에 따라 박물관에서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조만간 문중 회의를 거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호암사는 1983년 7월 경남문화재자료 제39호로 지정됐다. 천만리 장군은 임진왜란 때 이여송 장군을 따라 아들 상과 희와 함께 출정하고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에도 참가하여 왜적을 섬멸한 공훈이 커 조정에서 화산군으로 봉하고 부조사를 건립케 하여 공의 신위를 봉안 제향하도록 했다. 순종 때 다시 칙명으로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추서했다. 공은 왜란이 끝난 후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영양천씨의 시조가 됐다.
일부 향토사학자들은 “문중의 유적이 모여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가 되는 것”이라며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보존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성탈박물관에는 임진왜란 때 많은 전공을 세운 의병장 최균·최강 형제의 사적을 모아 엮은 구만면 전주최씨 문중의 쌍충록이 보관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