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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읍 월평리 홍류마을 희귀난치병 강민재 군과 이수악 할머니의 사는 이야기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한 후로 겨우 두 번 학교에 갔다. 밖엘 나다닐 수가 없 니, 그 또래 아이들의 검은 얼굴에 비해 지독할 정도로 하얀 얼굴이다. 두 시간 동안 길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아이는 단 한 번을 희미하게 웃었다. 할머니는 그런 손자가 안쓰럽기도 하고, 입을 닫은 아이가 속상하기도 하다.
“민재 야는 어릴 때부터 우앙~하고 울지를 않더라고. 하도 답답해서 빗자루를 가지고 저놈을 때리면 울까,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지금도 입을 딱 닫고 있어요. 아프면 아프다 말을 해야지, 그런 말도 안 해.” 할머니의 눈에 이내 그렁한 눈물이 맺힌다.
중학교 1학년인 민재는 친구들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제 한 일이 가물거릴 때도 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그 독한 과정을 견디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다.
“내가 갑상선 병이 있었어요, 목에 혹이 잡히는. 그걸 보고 민재가 어느 날 하는 말이, 할머니 나도 갑상선인갑다, 하데요. 그 때는 쓸데없는 소리 한다 하고 말았는데…”
고성에 있는 병원을 갔더니 큰 병원을 가라 하더란다. 없는 살림에 부랴부랴 큰 병원엘 가서 조직검사를 받았더니, 횡문양 종양이라 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명에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단다. 그리고 민재의 그 병이 고치기 힘들고 돈이 많이 든다는 말에 할머니는 이 일을 어찌 할꼬, 몇 날밤을 잠도 못잤다. 그때 민재는 5학년이었다. 할머니는 다 자라기 전에 발견해서 그나마 생명을 건진 게 어디냐 싶다.
집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 버는 사람도 없으니 할머니는 “딱 죽겠더라” 했다.
민재의 아빠는 부산에서 빵 기술자로 일했지만, 남 밑에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아 그만뒀다. 아빠의 실직으로 민재집에는 안그래도 수입이 끊겼는데, 설상가상 민재엄마까지 집을 나갔다. 민재와 할머니는 쓰러져가는 집에서 민재가 4살이던 적부터 둘이만 오두마니 살아야했다. 아빠가 돌아오기 전까지.
아빠가 다시 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빠는 얼마 전까지 아파트 공사장에서 가구 넣어주는 일을 했는데 그 이후로 굉장히 끙끙 앓았다. 그 후로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안좋아져 아빠는 낚시를 다니곤 한다. 민재를 만난 날 아빠는 꽃게와 숭어를 잡으러 갔단다.
할머니는 돈을 벌지도, 농사를 짓지도 못한다. 그나마 있던 밭 대여섯 마지기는 10년 전 조카에게 ‘빌려’ 줬다. 사업하는 조카에게 시달리다시피 해서 에라, 모르겠다 준 땅이 다시는 할머니 손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 밭만 있어도 소일삼아 고구마, 감자도 심고 할 텐데, 하며 할머니는 길게 한숨을 쉰다. 할머니 이마에 주름살이 더 깊어진다.
조카가 사업을 실패한 후로 할머니는 그 땅을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한 번 죽었더란다. 잠을 잔다 생각했는데, 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렇게 부르더란다. 꿈인데도 시끄러워서 어머니 시끄럽소, 하고 눈을 뜨니 장례 직전이었다.
그 후로 할머니는 밥 한 술을 못넘기고, 철따라 지천인 산딸기며 오디, 미나리를 갈아먹곤 한다.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건 민재도 마찬가지다. 도통 먹을 수가 없어 병원밥도 못먹는다. 입원하는 1~2주동안 민재는 물 한 모금 넘기기도 힘든 치료를 받는다. 먹어봐야 이내 게워내니 그게 더 괴로워 제대로 먹지 않는 것이다.
집에 와봐야 날음식은 먹질 못한다. 하다못해 과일도, 면역력이 약한 민재는 입에 대지 못한다. 그놈의 면역력이 뭔지, 민재는 친구들이 모여 노는데도 낄 수가 없다.
아프지 않는 사람이면 모르고 넘어갈 세균도 민재한테는 치명적일 수 있다. 민재는 마당 밖엘 나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하니, 집에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프라모델 만드는 것이 최고의 놀이이자 공부다.
할머니는 병원비가 없다. 할머니도 심장이 좋지 않은데다 다리에 감각이 없어 오래 걷지 못하고, 당뇨에 고혈압이라 할머니의 한 달 약만 한 보따리다. 민재 병은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병이라니, 할머니는 하루하루 걱정이 쌓인다. 병원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당장 내야하는 병원비만 90만원이 넘는다는데, 할머니 수중에는 그 돈이 없다.
“내가 돈을 벌 수가 있소, 아한테 천날만날 붙어있어야 되는데. 아이구, 앞으로 들 돈이 얼만지 모르겠소. 그래도 우리 민재 낫기만 한다면야…”하며 말끝을 흐리는 할머니.
막 한 게임 끝냈다는 민재가 할머니의 말에 컴퓨터 앞에서 슬쩍 고개를 돌린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졌었다는 민재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나실나실한 머리다.
온 책상이 건담, 비행기 등등 프라모델이다. 민재는 뭐든 손으로 만드는 게 재밌다. 민재는 몸이 건강해지면 비행기를 공부하고 싶단다. 그래서 항공고등학교를 가고 싶지만,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가서 또 배우는 친구들을 사이버학습만으로 따라가기 벅차다.
뭐가 제일 하고 싶으냐 물으니 아이는 처음으로 웃음을 보이며 말한다. “모르겠어요.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건 낚시 가고 싶어요. 이제 숭어랑 감성돔 잡히는데.”
잠시 벗어놓은 마스크를 고쳐 쓰는 민재는 짧은 한숨을 쉰다. 그 한숨 안에 앞으로 제 병을 고치는데 들 돈 걱정과 만날 편찮은 할머니 걱정,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이의 처지가 뒤섞여있다.
*강민재(14살) 군과 이수악(70세) 할머니를 도와주실 분들은 고성신문 055)674-8377로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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