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여섯 시인데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거리로 나설 시간이다. 문학행사장에 가는 길이라서 일이십 분쯤 먼저 도착할 생각으로 일찍 퇴근을 하였다. 사업관계로 나가는 길이 아니면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오가는 동안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읽는 데에 정신이 빠져 내려야 할 역을 통과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럴 땐 동동걸음이 될 수밖에 없어 시간을 넉넉히 잡은 것이다.
두어 정류장 가는 동안에 읽던 책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탔다. 몇 발자국 안으로 들어서면서 펼쳐들었다. 이날따라 책을 읽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출입구 쪽에 기대서서 보는 이도 더러 있었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책을 보고 섰노라니 저만치 안쪽에 앉았던 청년이 다가오면서 자리에 앉기를 권한다. 사양을 했더니 곧 내린다고 앉으라한다. 어차피 다음 역에서 내릴 터인데, 나이 많은 자가 서 있으니 앉히는 것이려니 생각되었다. 어찌했던 고마운 마음으로 앉아서 읽기로 했다.
두 번 세 번째 역이 지나도 청년은 서 있지 않는가. 바로 앞에 앉은 것도 아니고 멀찌감치 있었는데 불러서 앉힐 것까지는 없었다. 요즈음은 바로 앞에 늙은이가 서 있어도 못 본체 하는 젊은이가 많지 않던가.
당장 내리지 않으면서 멀리 있는 자를 불러서 자리를 양보한 연유를 물었다. 짧은 대답이지만 의미있는 말이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라서 우대한 것이라기보다 책을 읽는 연배에게 자리를 양보해 준 것이 아닌가.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서서 독서를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있기가 민망하던 중에, 연로한 사람이 가방까지 메고 선 채로 탐독하는 것을 보면서 무의미하게 앉아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내일부터는 책을 가져와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도덕적인 우대 보다 학문적인 우대가 우선이었던 것일까. 독서가 독서를 장려한 상황이 아니었겠는가. 유독 그 청년만 책 읽는 소중함을 알게 되었을까. 이 광경을 보는 차 내의 모든 이들에게 독서의 가치를 일깨우는 배움의 장이 되었으리라.
이미, 책을 읽는 분위기만으로도 학문은 전파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인격의 수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책은 인간의 스승이 된다. 영혼을 깨우치는 길잡이가 된다. 이상을 실현으로 이끌어준다. 이성과 감성을 진실로 다듬어 성숙하게 한다.
성장기에는 배움과 독서를 병행하여 학문을 닦지만, 장성하면 독서로서 수양을 해야 한다. 학문으로 영혼을 맑게 계발한다. 책을 읽어서 연마한 인품과 지혜를 펴내어 세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훌륭한 저자의 가르침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읽어야 책 속에 있는 진리를 터득한다. 좋은 인간성을 갖게 되고 지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 문학으로 진입하고, 좋은 작품을 완성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온 나라에 책 읽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은 지성인으로 성숙하게 된다. 갈등이 사라지고 범죄 없는 사회가 된다고 굳게 믿는다. 정권야욕의 분열이 없는 양심의 정치가 이루어진다고 확신한다.
모두가 교양을 갖춘 문화국민이 되어 으뜸가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교통편으로 이동하는 시간이나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자투리시간에 좋은 책을 읽어서 수양을 쌓는 시간으로 바꾸어 지성인으로 다가가는 분위기가 온 나라에 퍼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