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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이 배 모양으로 생겨 어선마을, 냉천산수 동구까지 흐르고 십오야 밝은 달빛이 너무도 아름다워 월계동
바위를 쌓아놓은 것 같다하여 적석산, 태고때 해일일어 9부능선까지 덮쳐 지금도 돌과 바위에 굴껍질 확인
▣ 산북
산북마을은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옛날에 산이 움직여 걸어가는 것을 보고 어느 아낙네가 “산이 걸어간다”고 큰 소리로 외쳤더니 산이 그 자리에 멈추어 소가 누워 있는 형태로 변하였다고 하여 이 산을 와우산(臥牛山)이라 부르고 있으며, 산뒤에 마을이 있다하여 산뒤라 호칭해 오다가 조선조때 산북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입촌한 성씨의 문중 기록에 의하면 병자호란 때 청송심씨가 입촌하여 정착하고 그 뒤에 김녕김씨가 덕능포(德能浦), 지금의 덕림(德林)에 입촌하여 현재는 안악이씨, 성산이씨 등 여러 성씨가 살고 있다. 자연 취락은 안땀, 중땀, 아랫땀, 덕촌 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 지명일화
◇ 수청거리 : 고성~마산간을 연결하는 국도(구도)가 개설되기 이전, 조선조 때 서울에서 통영통제사로 부임하는 사또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이 지방(고성)의 명기가 수청들었다하여 수청거리라 부르고 있으며, 일명 대로가(大路街)라고도 한다.
◎ 산북팔경(山北八景)
화정조우(花亭朝雨), 비파시금(琵琶時琴), 우산조양(牛山朝陽), 장등석영(長登夕影), 석전수립(石田樹立), 덕산석연(德山夕煙), 암안비(岩0飛), 단봉불혈(丹鳳不血)
◎ 재실
◇ 영모재(永慕齋) : 청송심씨(沈氏) 문중의 재실이다. ◇ 덕산재(德山齋) : 김녕김씨 문중의 재실이다.
▣ 어선 : 어선마을은 지형이 배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어선(漁船)으로 한자명을 써 왔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어선(語善)으로 한자명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 취락으로 옛날에는 윗땀, 아랫땀, 샛땀으로 불러 왔으나 지금은 원촌(原村), 상촌(上村), 중촌(中村)으로 부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어선(漁船)마을로 존치하였으며, 현재 거주민의 성씨는 김해김씨, 경주이씨, 파평윤씨 등 여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 정자나무와 지명 일화
◇ 삼정자(三亭子)나무 : 마을입구에 수령 약 200여년된 정자나무 3그루가 있어 이를 삼정자나무라하고 있으며, 2그루는 고사되고 지금은 한 그루만 남아있다.
◇ 이문(里門) : 원촌마을 입구에 약 300년전에 이문이 있었던 연유로 이곳을 이문이라 하고 있으며, 이문안에 김해김씨가 100여호 살면서 장(시장)이 섰다하여 지금은 장터를 ‘장도먼당’이라 부르고 있다.
◇ 공룡발자국
원촌마을 개무실 바다쪽 넓은 반석 위에 공룡발자국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5. 삼덕리
삼덕리는 본래 고성군 회현면의 지역으로써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신천(新川), 월계(月溪), 남진(濫津)을 병합하여 삼덕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월계, 남진, 신천, 치명(雉鳴)의 4개 마을이 있다.
▣ 월계(月溪) : 월계마을은 임란 후에 밀성박씨(朴氏)와 진양정씨(鄭氏)가 살면서 남계(濫溪)라 칭하다가 1680년(숙종 6년)경에 진양정씨 마을은 남진으로 분동하고 동명을 마을 원로들이 모여 지으면서 마을에 냉천산수가 동구(洞口)까지 흘러 들고 시냇물에 비친 십오야 달빛이 너무도 아름다워 명월과 계수(溪水)의 시를 읊고 월계동이라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1544년(조선조 인종)경에 밀양박씨가 맨 먼저 밀양에서 이곳의 산자수명한 월계동에 입촌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지금은 밀양박씨의 집성촌으로 이루어져 있다.
◎ 재실과 효행비
◇ 원천재(原泉齋) : 마을 뒤에 있는 밀양박씨 문중의 재실로 매년(음력) 10월 10일에 향사를 하고 있고 하계방학 때 학생들에게 경로효친에 대한 학습을 실시하고 있다.
◇ 효행비 : 마을 앞 국도변에 있는 효행비로 남계밀성박공위치심의 효행비이다.
◎ 석담(石潭) : 마을 앞 국도변에 있는 석담으로 1674~1720년(조선조 숙종)경에 귀목나무를 심고 석축으로 조망대를 조성하고 또 지소(池沼)를 만들어 ‘석담’이라 이름하여 원근 노객들의 휴식처로 활용되어 오다가 일제시 국도가 조망대 앞을 관통하면서 지소는 없어지고 지금은 조망대에 귀목(수령 약300년 추정)만 남아있어 주민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 지명일화
◇ 담안샘 : 마을 입구에 있으며 주민 100여호에 400여명의 식수를 공급하는 단 하나의 샘으로 여름에는 얼음같이 차고 겨울에는 온수처럼 따뜻하여 담안샘으로 유명하다.
◇ 산제터와 백일기도
냉천산중의 여평(麗平)바위에 있는 산제터로 옛날부터 매년(음력) 정월 초하루 자(子)시에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는 산제를 지내 왔으나 약 30여년 전부터 동제로 전환하여 지금은 매년 정월보름날 일출시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경술국치(한일합병) 당시 밀성박씨 문중에 자식을 갖지 못한 부인이 백일생남기도를 하였는데 마지막날 꿈에 범이 품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성품이 범과 같이 날카롭고 대범하여 후일 향장(鄕長)이 되어 동구밖에서 일본헌병 2명이 말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예의에 어긋난 처사라하여 대노하며 헌병을 엄히 꾸짖어 도망치게 하였다가 그 뒤에 일본헌병에 잡혀가서 많은 고문을 당하고는 분개하여 부자(한약재)를 들고 자결하였는데 그 분이 밀성박씨 다포(茶浦) 기찬공(基燦公)이시다.
▣ 남진(藍津) : 진영정씨의 남포공 곽(廓), 섬, 규(奎)의 삼충신(삼형제)이 임란 때 왜적을 막아 지켜온 남진마을은 삼덕저수지를 막으면서 담수구역을 넓히기 위하여 마을 아래쪽에 저수지 둑을 설치해야 한다는 계획이 있어 이렇게 되면 마을은 배를 타고 다녀야 하고 마을앞을 흐르는 남계는 나룻터가 된다하여 마을명을 남진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임란 때 삼충신이 이곳에 침입한 왜적을 막아 마을을 지킨 바가 있어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그 이전으로 추정이 되며 현재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성씨는 진양정씨(鄭氏)가 많고 그 외에 함안이씨, 청주한씨(韓氏), 김해허씨(許氏) 등 제씨가 거주하고 있다.
◎ 삼충각(三忠閣)과 삼충신축제
마을내에 진양정씨 남포공(藍圃公) 곽(廓), 섬, 규(奎)의 삼형제 정씨삼충(鄭氏三忠)의 사적비가 건립된 삼충각(정려)이 있으며 삼충신축제가 매년(음력) 3월 19일에 지방의 유림들이 참석하여 행하여지고 있어 공들의 충효사상을 흠모하고 있다.
◎ 적석산(積石山)과 옥수골 온천개발
구만면 주평리 번덕과 회화면 삼덕리 옥수골, 마산시 진전면과 경계를 하고 있는 적석산은 조선조때 이곳 회화면 삼덕리에 진양정씨와 밀양박씨가 입촌하여 살면서 산의 형상이 특출하고 웅장하여 마치 바위를 쌓아 놓은 것 같다 하여 적석산이라 불리어 왔다고 전하고 있으며 이 산은 태고때 해일로 산 9부능선의 돌과 바위에 굴껍질이 붙어 있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곳 적석산 중턱에 조선시대에 절이 있었는데(지금은 절터와 샘, 대나무숲만 남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절에 청동으로 만든 말이 있었는데 말산등 암자에 안치해 두고 승려들이 불공을 드리고 재앙을 물리치고 하였다고 한다. 이 말의 크기는 대인이 말을 타고 앉아도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을 절에 온 사람들이 말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돌려놓으면 말머리 방향 30리 이내에 있는 개, 짐승이 호랑이 등 산짐승에 물려 갔고 원인모를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절이 조선조 말엽에 소실되고 청동말도 분실되었는데 그후 이곳 유림들이 무쇠로 말을 만들어 그곳에 안치해 두었으나 또 분실되고 1970년대에 이곳에 사는 박씨문중에서 30㎝가량의 작은 규모로 말을 만들어 산등성 절벽 틈 사이에 안치하여 지금도 전하여 오고 있다.
적석산 밑의 옥수골(玉水谷)은 산과 물, 바위, 골짜기가 어우러진 분지형태로 산은 옥산이고, 물과 골짜기는 옥수골 등으로 그 이름이 지칭되고 있다. 이곳에 온천이 발견된 것은 옛날에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마을주민이 겨울에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내려오면서 개울에서 김이 무럭무럭나는 옹달샘을 발견하여 그 물에 목욕을 하자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물이 피부병에 좋은 약수로 유명해졌다. 1980년대에 창녕 부곡온천개발자 신현택씨가 온천개발에 착수하여 1990년 1월 15일 경남고시 제444호로 온천개발지구로 고시되어 현재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 남진약수탕 전설
남진마을 동남편 금봉산 중턱에 있는 샘물로 이곳의 산세가 여인이 좌측 무릎을 올리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형상으로 약수탕은 여인의 음부위치에 있다고 하여 ‘암물’이라 부르고 있다. 이 약수탕의 전설은 옛날 이곳에 나무하러 온 총각이 약수탕에서 나온 어여쁜 처녀가 미모로 끌어들이면 끌려가고 끌려가다보면 사라지고 다시 돌아서면 또 끌어들이고 이렇게 해서 밤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나병환자가 약수를 마시고 목욕을 하고 나니 병이 나았다고 하여 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칠월칠석날과 백중날이 되면 인근의 많은 주민이 몰려들어 물을 맞고 가져갔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명절때 약수탕에서 금봉산 산신제를 지냈고 근래에 와서는 이 약수를 생수로 개발해 전국에 시판되고 있다.
◎ 정씨동생화회문기(鄭氏同生和會文記)
회화면 삼덕리 정종덕씨가 보존하고 있는 문기로 숭정(崇禎) 3년(경오) 3월 28일에 정곽(鄭廓) 공이 아들 개건(蓋乾), 개세(蓋世) 두 형제에게 재산을 분배해 준 문서로 전해지고 있으며, 1979년 5월 2일자로 도지정유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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