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향도(移村向都)’.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다는 말이다. 지난 80~90년대, 우리 지역의 우수 학생들이 대거 인근 진주 마산 등 연합고사 지역으로 떠나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떠나면서 우리 지역은 매년 입시 때면 학생 수급 문제로 골치를 앓는 작은 도시로 낙후되고 말았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지방자치단체와 새교육공동체 등 관련 사회단체에서 많은 노력을 한 결과, 떠나는 교육이 아닌 머무는 교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우리의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16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초·중·고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서, 이제 다시, 도시로 그리고 사교육으로 '교육 엑소더스'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발표의 외면(外面)만 봤을 때 고성 교육은 전국 최하위에 속해 있어, 학부모들이 ‘고성보다는 인근 도시가 낫구나. 아이를 위해서는 이사를 가야겠다’는 유혹을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필요성을 알면서도 감히 열기를 꺼려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며칠 전에 초·중·고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지역교육청(고교는 시·도교육청) 단위로 공개했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의 5개 과목별로 1등부터 180등까지 전국 학군별로 서열을 나누어 상세하게 발표했다.
가진 자들의 욕망은 끝이 없어, 교육 열의가 높은 지역의 학부모나 학교, 그리고 우수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대학 당국은 끊임없이 상자열기를 고집했고, 이에 입맛이 맞은 현 정부의 교육당국은 열어서는 안 될 상자를 열어 버린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사공이 많아 산으로 올라가던 교육계에 또 하나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 특히 성적이 낮은 지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당장 서울시교육청은 발표 하루 만에 성적순에 의해 교원들을 인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각 지역 교육청마다 나름의 대안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발표되는 것이 대동소이하다. 모두가 하나같이 서울시교육청과 같은 맥락이다.
교과부는 이번 발표는 학생들의 학력격차 해소 및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학력미달 학생들을 지원할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이번 성적 발표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학력미달 학생 핑계를 대고 있을 뿐,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던 MB 교육정책의 일환일 뿐이다.
MB 교육정책은 살펴보면 이율배반적인 것이 많다. 사교육을 없애겠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고 하면서도 이에 상반된 교육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MB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중 설립 허용, 자율형 사립고 확대 등 우수학생 육성 위주의 교육 프로그램은 사교육을 없애기는커녕 도리어 부추기고 있으며, 학력미달 학생들을 위한 교육은 허울만 좋을 뿐 기실 뒤처질 가능성만 더욱 높아졌을 뿐이다.
이번 발표도 그렇다. 입으로는 학력미달 학생들 찾아내어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도리어 그들을 버리고 성적 우수 학생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한 환경 조성용 발표처럼 느껴진다. 그러기에 각 교육청마다 내 놓은 안들이 ‘성적과 관련된 교원인사 불이익’이다. 성적 결과에 따라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학교간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은 별로 없고 상위권 중심으로 고교선택제와 학교선택제 등이 발표되면서 중하위권 학생들을 방치하는 안들만 나오고 있다.
정말로 그들이 학력미달 학생을 걱정한다면 우수 지역이나 학교가 아닌 뒤떨어지는 지역이나 학교에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는 안을 내놓아야 한다. 결국 한 마디로 말해 이번 성적 발표는 허울만 좋을 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더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위한 있는 자들을 위한 자리깔기다.
교육 당국은 인수위 시절에 이미 내신제도를 무시한 입시의 자율화를 발표했다. 이에 고려대학교가 앞서서 고교등급제를 암암리에 강행했고, 여론의 따가움을 느낀 교육당국이 징계 흉내만 내고 있다. 이미 고교 등급화는 시작된 것이다.
그 첫 피해자들이 우리 지역의 아이들이다. 예년 이맘때면 거리에 나붙던 합격 환영 현수막이 붙지를 않는다. 지역의 3개 인문고등학교는 최근 몇 년 명문 대학이라고 불리는 학교에 유래 없이 많은 학생들을 진학시켰다. 그런데 올해는 신통하지 못하다.
올해 대학 입시생의 경우 우수고등학교 육성과 맞물려 여느 해보다 더 열심히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못한 결과가 나왔다. 어떤 사람은 교사들의 열성이 부족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게 어디 교사들의 잘못인가. 이번 고려대학교 입시에서 보듯이, 유수한 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명단에는 경상도 끝자락에 있는 시골 고성의 고등학교는 이름도 없거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MB 교육정책의 파급 효과는 이미 반도의 끝자락 고성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안(代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적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어 버렸다. 아울러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자존심 문제를 떠나 앞으로 닥쳐올 파급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이제 겨우 초·중학생밖에 안 된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공개되는 시험 점수만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특히, 전반적으로 성적이 낮은 우리 지역의 경우 지역 교육과 학교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등 혼란이 커질 것이다. 줄세우기를 하라는 신호가 떨어졌으니 학교는 더욱 경쟁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경쟁력 강화는 한계가 있다. 결국 능력이 되는 부모들은 이사를 해서라도 좋은 학군으로 옮기려 할 것이고,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부모는 점수를 올리기 위해 사교육에 의존할 것이다. 어쩌면 공교육의 한계를 느낀 학교에서 학원의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반’을 가라고 학생들을 권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공은 던져졌다. 좋든 싫든 우리 주민 모두가 교육 전쟁에 뛰어들어 버렸다. 지역의 교육당국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교육관련 모든 단체들이 모여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수한 학생들을 묶어두기 위한 방안도 강구되어야 하고, 학력미달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한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교육 전원도시 고성’은 꿈만으로 끝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MB 교육을 추진하고 있는 교육 당국에 바라고 싶은 말이 있다. MB 정부가 처음 출범할 때 이 지면(紙面)을 빌어 한 말이 있다. ‘제발 교육만은 경제 논리로 흔들지 말라’고.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가능하면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닫아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그나마 ‘희망’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다. 국민들에게 불안과 실망만 주는 MB식 교육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