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노란 조끼를 입은 열댓명이 제각기 포대를 들고 쓰레기를 줍고 있다. 고개를 돌려 환하게 인사하는 얼들이 팔각회다. 김영애 씨는 팔각회에서 4년째 총무를 맡고 있다.
“팔각회는 판문점의 팔각정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1960년대 반공의식이 최고조였을 때 판문점을 방문한 지역인사들이 반공의식 고취를 위해서 팔각정에서 단체를 만들자 협의한 것이 우리 팔각회랍니다.”
팔각회는 초기 반공 민간단체로 시작했지만, 북한과 남한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서 봉사단체로 탈바꿈했다. 지금 고성에는 42명의 팔각회원들이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치매요양원 목욕봉사부터 설거지봉사, 김장보내기, 국토대청결운동… 팔각회원들이 하는 일이야 셀 수 없이 많죠. 하지만 누구도 그런 일들을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그건 이미 봉사가 아니잖아요.”
함께 있던 노란 조끼의 팔각회원들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기자를 툭툭 친다. 돌아보니 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칭찬이다.
“우리 총무는 궂은일은 전부 도맡다시피 해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에요. 소속은 돼있지만 봉사활동에 얼굴만 내미는 봉사자들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 총무는 봉사하지 않고는 못사는 사람인 것처럼 열심히 활동한답니다.”
김 씨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겸손의 말을 해도 회원들은 아랑곳 않고 칭찬 일색이다. “봉사라는 게 하라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제 마음에서 우러나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저는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으니까 돕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김 씨는 1995년 주변사람들의 권유로 팔각회에 입회했다. 입회를 하고 보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그렇게 마음 편하게 보이더란다. 그래서 금세 정이 들어 함께 활동을 하다 보니 총무 자리에까지 이르게 됐다.
“고성 팔각회는 3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있어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지만 우리 모임은 그렇지 않아요. 서로 화합하고, 단결해서 봉사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언니동생 하며 지내지만, 우리는 봉사단체니까 봉사에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김 씨는 단 한 번도 고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수족을 쓰지 못해 얼굴 씻기도 힘든 치매노인들을 목욕시키면서도, 산더미 같은 그릇들을 씻어내면서도 힘든 것보다 작은 힘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행복함이 앞선단다.
“다른 바람은 없어요. 개인적인 입장에서야 바라는 게 왜 없겠어요. 하지만 그것보다도 팔각회원으로서의 입장이 우선이죠. 우리 단체가 좀 더 화합하고 단결해서, 소외계층 분들을 더 많이 돕는 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는 모습이 김 씨 뒤에 걸린 남포항 그림처럼 시원하고 넓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