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진산 무량산과 천왕산의 위치가 바뀌어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기호 고성향토사연구소장은 “무량산은 고성의 진산으로 각종 문헌에는 대가면 양화리 근처로 표기돼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 고성의 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천왕산과 위치가 바뀌고, 산 이름도 대곡산으로 바꼈다”면서 고성의 중심이 되고 고을을 보호해주는 신령스러운 진산 무량산을 반드시 되찾아 고성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무량산은 현 서쪽 10리에 지점에 있으며 진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동국여지지(1674)에도 서쪽 10리 지점, 진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반면 천왕점 즉 천왕산은 북쪽 15리에 있다고 표기돼 있다.
여지도서(1765)도 마찬가지로 서쪽 10리 지점에 있으며, 진주 지리산으로부터 와서 진산이 되었다고 표기돼 있다. 천왕점은 북 15리, 무량산으로부터 왔다고 돼 있다.
이 외에도 대동지지(1866), 영남읍지(1895), 철성지(1930), 고성지(1934), 교남지(1940) 등 문헌에 서쪽 10리, 진산이라고 일제히 기록돼 있다. 무량산과 천왕산이 처음으로 바뀌어 표기된 지도는 1926년 6월 30일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지도이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지도를 제작할 때마다 조선총독부의 지도를 바탕으로 표기되면서 지금까지 무량산과 천왕산이 뒤바뀐 채로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조상대대로 고성의 진산으로 불리워 오던 무량산의 이름조차 대곡산으로 표기돼 있는 것이다. 하기호 소장은 부포 감티재에서 무량산으로 오르는 골 이름이 큰골인데 당시 일본인들이 무량산 이름을 없애기 위해 대곡산으로 바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토지측량사업 등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정기와 전통, 정서를 말살하기 위해 마을이름, 산이름 등을 바꾸면서 무량산도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현재 대가면 양화리 일대의 대곡산이 무량산이라는 것을 가장 크게 뒷받침하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사천편에 사수(현 사천강)는 무량산이 근원이 된다고 기록돼 있다.
또 산경표(산맥 표시도)에 무량산이 낙남정맥이라고 표기돼 있다. 낙남정맥은 백두대간의 끝 지리산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하동, 곤양 소곡산, 진주 망진산, 사천 팔음산, 고성 무량산, 함안 여항산, 창원 불모산, 김해 구지산, 김해 분산까지 이어진 줄기라고 설명돼 있다.
한편 고성의 진산 무량산을 되찾아야 한다는 문제는 10여년 전 고성군의원을 지낸 故 김동봉 의원과 하기호 소장이 함께 연구해 왔으나 김 의원의 타계로 주춤하게 된 것이다. 하기호 소장은 “더 늦기 전에 무량산을 되찾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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