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히 200년은 넘어 보이는 옛날집이다. 계십니까 세 번 외치니, 문풍지를 바른 문이 드르륵 열리며 누구시오 한다. 정용이 할머니는 집과 같이 늙은 듯, 한 달 후면 백 살이라며 웃는다.
“열여섯 먹어 시집을 와보니 신랑은 14살이데. 살다 보니 이리 늙었다 아이가. 할배는 40년 전에 일찍 갔고, 내 혼자 이리 살고 있다.”
정용이 할머니는 83년째 하일면 학동마을에 산단다. 예순이 채 못돼 남편 최창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서울 살던 양아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로는 집밖 나들이가 부쩍 줄었다. 아들이 서울 살 때는 서울 나들이도 하고 심심찮게 지냈는데, 요즘은 친구라고는 오래된 TV뿐이다.
“조카 아이가. 시동생 아들을 내 아들로 들여 살았으니, 내가 낳은 내 새끼나 다를 기 뭐 있노. 조카도 내 핏줄이니 내 아들이지.”
할머니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그래서 조카를 아들로 입적시켜, 키웠다. 쉰여섯 된 그 아들은 지금 미국에 있다. 문득 방문 위에 걸린 아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내 손주다. 참 예삐제?”하며 호호 웃는 얼굴이, 마치 소녀처럼 맑다.
지난 20일에는 할머니의 백수(白壽)를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다. 하일면의용소방대에서 건강하게 백수하신 걸 축하하며 잔치를 해주더란다. 그날은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할머니 댁을 찾아,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 같더란다.
“그렇다 아이요. 내가 이 집만큼 늙었는데, 여기 누가 내로 보러 와서 축하한다고 꽃을 다 주끼고. 백 살이나 먹은 할매한테 그리 해주니 참 고맙지.” 따뜻하게 할머니를 챙겨주는 이웃과 하일면의용소방대의 정성이 할머니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듯 하다.
“이리 늙었는데 안아픈 데가 오데 있긋노, 다 고장났지. 고마 자는 잠에 고통 없이 조용히 눈감고 가모 그기 제일 큰 복이지.” 할머니는 그러면서 베개를 끌어당겨 눕는다. 이불을 목까지 덮고서는 또 그런다. 자는 잠에 조용히 가는 게 복이라고. 그 말이 TV에서 흐르는 명성왕후 드라마 소리와 함께 왕왕 울린다. 아뿔싸, 분위기 좀 바꿔야겠구나. 기네스북을 설명했다. 그 책에는 오래 산 사람도 많이 있는데, 할머니가 그 중에 하나가 되면 되겠다 했다.
“백 살 넘어 사는 사람들도 많는가? 내는 밥도 마이 묵는다. 술 담배를 안하니까 오래 살았는갑다. 내가 밥을 얼마나 마이 묵는데.”
하지만 할머니 입은 홀쭉하다. 이가 다 빠지고 없단다. 그래서 고기반찬도 꼭꼭 오래 씹어야만 먹을 수 있단다. 그래도 밥은 꼬박꼬박 많이 드신다. 아마도 그게 할머니가 백수까지 사시는 제일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가방을 들고 나서려니 할머니가 마루로 나오신다. 걸음이 정정하다. “이거 봐라, 내가 이리 잘 걷는다 아이가”하며 또 한 번 호호호 웃으신다. 그러면서 방금 찍은 사진 중에 제일 예쁜 걸로 한 장 달라신다. 사진 드릴테니 200살까지 사시라는 말을 건네고 올 걸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