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굽이굽이 산 하나를 넘나 싶더니 이내 오솔길을 타고 내려간다. 오솔길 끝에는 두 남녀가 나와 섰다가,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문만 활짝 열어놓은 채로 부부 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새로운 사람의 방문에 약간은 당황하고, 또 약간은 반가운 기색이다.
박영철 씨와 정영애 씨 그리고 아들 창수 씨까지 세 식구가 모두 장애를 앓고 있다.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한 데다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고, 어머니는 말과 행동만 보면 7살쯤 되나 싶다. 아버지 박 씨는 말하는 것만 보고는 장애가 있는 줄 모르겠다. 하지만 다리에 인공뼈를 박아 넣고도 다리가 저리고, 쥐가 나서 견디기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나무 보일러에 나무 해다 넣는 것도 이들 식구들에게는 큰일이다.
한참 겨울나기 걱정이다, 힘들어서 어쩌나 얘길 하는데 갑자기 정영애 씨가 남편 박 씨의 얼굴에 손을 뻗으며 아이처럼 말한다. “수염 깎아야 되겠다”하며 웃는 얼굴이 일곱 살이라 해도 믿을 표정이다. 그러다가 문득 말한다. “우리 창수 보여 줄게요”하며 앨범을 들고 나와 펼쳐놓는다.
스무 살에 이제 중학생이라는 아들 창수 씨는 집에 들어오면 만화영화부터 틀어서 리모콘을 놓고 아버지와 전쟁을 벌이는 일이 부지기수란다. 호기심은 또 얼마나 넘치는지, 아버지가 하다가 다리가 아파 그만둔 용접기계를 만지려고 애쓰기도 하고, 농기계를 만지기도 하고, 꼭 미운 네 살처럼 아버지에게 혼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지적능력이 조금 떨어져도, 나쁜 짓 안하는 일이 아버지 박 씨는 참 다행이란다.
사진을 보다보니 박 씨와 정 씨가 앳된 얼굴을 한 사진이 보인다. 25년 전 부부가 빨간 볼을 하고, 약혼사진을 찍었더란다. 정 씨에게 남편감이라고 처음 만났을 때, 그 총각이 어떻더냐 물었다. 말없이 박 씨를 보며 씩 웃는다. 그 웃음이 어쩐지 행복해 보인다. 왜 날 보냐며 허허 웃는 박 씨의 얼굴까지도.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나쁘지는 않아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잖아요.”
아내가 아니라 딸처럼 돌봐야 하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밥도 하고 반찬도 해야 하는 박 씨지만, 그래도 아내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씩 웃어주는 자상한 남편이다.
젊어서부터 용접, 탄광일, 철강회사 일 등등 안 해본 일 없이 다해본 박 씨는 이제 원인도 모르게 힘이 빠져가는 다리 때문에 다가올 겨울이 걱정이다. 천지 모르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성치도 않은 몸으로 어떻게 살까 싶다. 그래서 기자도 덩달아 한숨을 폭폭 내쉬니 박 씨가 말한다.
“그래도 비 안새고 바람 안부는 내 집 있는 게 어딥니까. 우리 세 식구 몸 누일 집이라도 있어 천만 다행이지요. 또 마을 일을 돕고 돈을 벌 수도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나갈 겁니다.”
마무리할 만한 마땅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다가 문득 박 씨의 말이 머릿속을 탁 친다. 우리 마누라, 우리 아들 위해서인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삼봉마을 박영철 씨는 오늘도 쉰을 바라보지만 딸처럼 철없는 아내와, 호기심 많은 아들을 거두느라 아픈 다리를 끌고 종종걸음 치겠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