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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공룡 발자국 유적지 ‘하이면 상족암’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 바위 모양이 밥상다리 같아 붙여진 이름, 봉수지·지석묘·망림산 성지 등 유적지 분포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8년 07월 04일
ⓒ 고성신문

봉원리 내원마을 내원사 사찰명서 유래돼, 외원마을 약수에 몸 씻으면 환자 병이 낫는다 해 ‘물통골’이라 불려


 


4. 덕명리(德明里)


덕명리는 본래 하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3월 1자로 고성군이 행정구역을 병합할 때 딱밭골과 봉화골을 병합해 덕명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덕명과 제전 마을이 있다


 


▣ 덕명


덕명리는 1914년 3월 1자로 고성군의 행정구역 통·폐합 시 덕명리(단일법정리)로 하여 오다가 1995년 4월 26자로 제전마을이 행정마을로 분동되면서 덕명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생긴 연대는 단종애사에 나오는 인물 중 생육신의 한 분인 어계 선생의 6대손인 함안조씨가 입촌한 것으로 보아 약 400여 년 전으로 추정이되며, 현재 거주민은 진양정씨, 함안조씨, 남원양씨, 김해김씨, 밀양박씨, 여산송씨 등 10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 마을의 지세


덕명마을은 고성읍에서 약 24㎞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뒤에는 와룡산 지맥을 이어받은 망림산(해발 650m, 성지가 있음)이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 앞은 청정해역인 한려수도권에 접해 리아스식 해안을 끼고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곳으로 마을내에 군립공원 ‘상족암’이 있으며 농경지는 비교적 좁고 수원도 좋지 못한 지대이다.


 


◎ 상족암(床足岩) 군립공원과 공룡발자국


상족암 군립공원은 절경인 한려수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해면이 수성암으로 형성된 기암절벽의 자연경관과 천혜의 석보 상족암과 중세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을 1983년 11월 10 고성군 고시 제20호로 하이면 덕명리, 월흥리 일원 5,106 (육지 1,334, 해면 3,772)를 군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상족암은 바위가 ‘밥상다리’같다고 하여 상족(床足)암 이라고도 하고, 굴 입구 두 개의 굴을 받친 바위가 다리 모양으로 받쳐졌다고 하여 ‘쌍족(雙足)’ 또는 ‘쌍발’이라고도 한다. 상족암 전체가 층암 단애로된 수성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벽 깊숙히 동서로 돌며 암굴이 있고 남북으로 뚫린 굴은 변화 무쌍하고 기묘하다. 굴 안에는 천연적인 석불이며 기묘한 모습을 한 모형들이 많고 여러가지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태고 때 선녀들이 내려와 석직기를 차려 옥황상제에게 바칠 금의를 짜던 곳으로 베틀모양을 한 모형과 선녀들이 목욕을 하였다는 선녀탕과 화장한 분통, 촛대암 등 여러가지 물형들이 있으며 굴 밖에는 1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돌층이 깔려 있어 항상 조수에 씻겨 거울같이 개끗하다.


 


특히 덕명리 해안 일대에 분포돼 있는 공룡발자국은 1982 1월에 경북대학교 양승영 교수팀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약 12천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뒤 1982 2월 부산대학교 김항묵 교수는 처음 발견한것의 근처에서 중생대 백악기 후반에 살았던 ‘브라키오 사우루스’ 공룡의 발자국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발자국 길이가 102cm, 너비 64cm 정도로 발에서 머리가지 15m 발에서 등까지 8m 높이로 1백톤이 넘는 거대한 공룡으로 상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2006년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의 핵심지역이며 공룡박물관이 있다.


 


◎ 사적 및 자연승지


◇ 덕명리 봉수지 : 덕명리 반도 산 199번지에 석축된 봉수지로서 주위가 약 400m 정도로 임진왜란 때 해적을 지키던요새지로 전하고 있으나 대부분 붕괴되고 봉수지만 남아 있다.


 


◇ 덕명리 지석묘 : 덕명리 마을 입구의 군도 고갯마루에 있는 약 3톤 정도의 고인돌로 이 돌을 숫돌이라하며 암돌은 월흥리 신흥마을 들판에 있는 고인돌로 지금도 남아 있다.


 


◇ 망림산 성지 : 마을 뒷산(해발 650m) 정상에 토성과 석성으로 축조된 성터로 임진왜란 때 해적을 지켰던 성터로 지금도 그 성지가 남아있다.


 


◎ 지명 일화


◇ 까만당 : 마을 뒤의 다복산 줄기에 있는 산봉우리로 천지개벽시 바닷물이 들어와 산이 물에 잠기고 봉우리가 까마귀 모양만큼 까마득하게 남았다 하여 ‘까만당’이라 부르고 있다.


 


◇ 상선암 : 마을 바닷가에 있는 약 26.4 ㎡정도의 반석으로 옛날에 선녀들이 내려와 상족암에서 베를 짜고 목욕을 하고는 하늘로 올라가는 곳이라 하여 ‘상선암’이라 전하고 있다. 동제를 지내는 날에는 무당을 불러 풍어를 비는 별신굿을 이 곳에서 했다고도 한다.


 


◇ 삼당골 : 산 넘에 있는 골로 당산에 단군님을 모시고 이를 보좌하는 삼신을 모신 곳이라 하여 ‘삼당골’이라 하며 임진왜란 때 수군대장이 군졸 1, 2, 3(1분대, 2분대, 3분대)을 훈련시킨 곳이라 하여 삼당골이라고도 전하고 있다.


 


◇ 불당골 : 마을 서쪽 넘어에 있는 골로 약 200여 년 전에 암자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절터(주춧돌)만 남아 있다


 


◇ 밤참개 : 마을 앞 등대가 있는 갯가로 이곳은 조수의 흐름이 너무 거세 왕래하는 배가 일시 정박을 하였다가 물때를 보아 ‘참’을 해먹고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밤참(야식)개’라 부르고 있다.


 


◎ 당산목과 동제


마을 앞 당산 밑에 있는 ‘참나무’로 수령이 약 400여 년 전 노거수(老巨樹)로 매년 10월 보름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 재실


마을 내에 진양정씨 재실이 있다.


 


▣ 제전


제전마을은 1995년 4월 26까지 덕명리의 자연마을로 되어 오다가 고성군 이장정수조례 제1429(1995년 4월 26)로 분동되어 행정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전마을의 동명은 마을에 닥나무밭()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닥밭골’ 제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부터 약 400여 년 전에 진양강씨가 입촌해 살게되면서 마을이 형성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지명일화


◇ 촛대바위 : 제전마을 앞쪽 바다에 있는 바위로 바위가 촛대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섶밭재 : 딱밭골(제전)에서 월흥리의 섶밭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5. 봉원리(峰院里)     


봉원리는 본래 하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을 병합해 봉원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내원과 외원의 2개 마을이 있다.


 


▣ 내원


내원 마을의 동명은 마을 위에 내원사라는 큰 사찰이 있었는데 사찰명을 따서 내원으로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생긴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정씨가 맨 먼저 입촌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지금은 정씨 외 임씨, 봉원리 김씨, 장씨, 고씨, 이씨 등 제씨가 거주하고 있다.


 


◎ 유적과 일화


◇ 내원사지와 부도군 : 내원사 절터가 마을 안골에 있으며 절터 입구에 부도 3기가 있어 이곳에서 공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하여 지금도 공을 드리는 아낙네들이 있다.


 


◇ 범바위(벌바위) : 마을 입구 100m 지점에 있는 큰 바위로 옛날 이 바위에 벌이 많이 번식하였다고 하여 ‘벌바위’(범바위)라고 부르고 있으며, 동명을 봉원리(峰院里)로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 뜸터 : 옛날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큰 인물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의 맥을 끊었던 곳으로(불로 뜸질한 장소) 지금도 폭 파진 곳이 남아 있다.


 


▣ 외원(外院)


외원 마을은 옛날에 ‘울티(鬱峙)’라고 부르다가 큰재 ‘한티(大峙)곡’이라 개명하였으며 조선조 말엽에는 또 봉암이라 하였다고 한다(봉암은 백마산 산록에 있는 큰바위를 ‘봉암’이라 하였는데 마을명도 봉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내원 마을과 병합해 봉원리로 하였으며 1984년 행정구역 재조정시 분동되어 외원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생긴 연대는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약 250년 전에 인근 마을인 지금의 사천시 사남면 대산영(大山影)에서 전 답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를 하여 정착하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 지명 일화


◇ 물통골의 약수 : 마을 안에 있는 ‘물통골’의 약수는 그 물을 먹고 몸을 씻으면 환자의 병이 낫는다 하여 지금도 그곳을 물통골이라 부르고 있다.


 


◇ 국시암과 굴레골 : 옛날 나라에서 이곳에 국시마을을 설치했다고 하며 그곳에 있는 바위를 ‘국시암’이라 부르고 있다. ‘굴레골’은 옛날 섣달 그믐날에 이곳에서 말굽소리와 말방울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굴레골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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