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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회화에서 말하기가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듣기가 근간을 이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듣기 능력은 오늘날과 같이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실제로 선진국의 기업에서는 매년 막대한 예산을 편성하여 직원들에 대한 듣기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는 듣기 능력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조치로 듣기에 오해가 생긴다면 곧바로 기업 활동에 상당한 혼선과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듣기는 정보와 업무 처리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와 나라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논술에서 가장 가르치기 힘든 건 토론도, 글쓰기도 아니고 듣기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상대편 의견에 귀 기울이는 습관이 제대로 들어 있지 않아서 예의 바르게 듣는 태도를 가르치는 게 너무나 힘들다. 항상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상대편이 말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해도 쉽지가 않다.
그런데 잘 듣는다는 것은 그냥 상대편 말을 두 귀로 얌전히 듣는 것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듣기란 바로 지금 이 순간 상대에게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온 몸과 정신을 말하는 사람에게 쏟는 것이다. 상대편이 지닌 생각과 느낌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듣기 능력에 도달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논술 수업에 보내며 조금이라도 말을 많이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말은 쉽게 열린다. 아주 빠르게 논리력이 길러진다. 하지만 듣기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지루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아주 조금 나아질 뿐이다. 듣기란 그만큼 어렵다. 아이들만 듣기가 어려운 건 아니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아내와 말을 하다 보면 조금 짜증날 경우가 많다. 이런저런 푸념과 불만을 늘어놓는 걸 듣다 보면 종종 답답해진다. 올바른 결론이 무엇인지는 훤히 보이는 데도 계속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으니 지루하고 짜증이 난다.
그래서 이러 저렇게 하라고 말해주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면 푸념과 불만이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해진다. 불만이 나를 향해 있으면 감당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해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물으면 아내는 더욱 화를 내고, 문제는 더욱 꼬인다. 아내는 자신이 느낀 불만을 차분히 들어주기를 원한다. 자기 말을 듣는 남편이 자신이 느낀 안타까움과 화에 공감해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남편은 그게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심이다. 그러니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듣는 것이다. 아내가 쏟아내는 불만을 듣고 공감해 주면 된다. ‘넌 떠들어라 난 듣는다’식이 아니라, 아내가 느끼는 감정을 같이 공감해주면서 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문제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먼저 잘 듣고 상대편 의중의 핵심을 말하는 의사소통의 능력, 그것이 세상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듣기이다. 우리 대부분은 듣는 것보다는 말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특히 CEO, 정치인, 팀장, 한 집의 가장 등이라면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따라서 듣는 것은 수동적이며 우둔한 것으로, 말하는 것은 적극적이고 현명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듣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즈니스와 일상생활에서의 수많은 문제들이 단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이 해결되고 개선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듣는 기술이 말하는 기술보다 더 현명하고 적극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짧은 말 한 마디가 긴 인생을 만들고 말 한 마디에 마음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그러나 긴 인생이 짧은 말 한마디의 철조망에 갇혀서는 아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