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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동족상쟁이 발발한지 58년째를 맞이하는 날이다.
원인은 김일성 공산집단이 중·소의 지원 하에 한반도의 공산화 를 위해 무자비한 폭력 수단을 총 동원시켜 평화롭게 잠든 동족의 가슴에 총을 난사한 사건이다.
6.25는 1950년에서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성립되기까지 무려 3년이 넘게 같은 민족이 싸웠다. 전쟁의 과정에서 UN에서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극적인 파병결의안이 체결되어 미·영을 비롯한 우방의 참전 16개국의 도움과 민주주의와 역사를 사수한 온 국민의 결의에 찬 행동으로 공산주의의 침략을 막아내었다.
3년간에 걸친 북한의 전쟁 도발은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 되었고, 남한의 사상자 수 만해도 150만 명이 넘었으며, 수많은 전쟁고아의 울부짖음이 강산을 진동시켰다.
우리는 일제식민지의 고통으로 암울했던 36년을 청산하고 해방을 맞아 민족 영생의 산업시설들이 파괴되어 재생의 길마저 잃었다.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남북 간의 적대감정이 팽배하여 통일보다 대결의 국면으로 치닫는 민족의 비극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방 된지 63년이 지나도 동강난 국토의 통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몇 일 전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십대들(초·중·고)이 6.25사변의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무려 57%가 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가 인류의 독소임을 알아 스스로 사상과 체제마저 버린 오늘에서도 스탈린식 독소체제를 신봉하고 옹호하는 친북 좌경세력들이 머리를 치켜들고 촛불시위는 물론, 각종 데모의 선두에서 국기를 문란 시키는 행위가 난무하고 있는 현실은 실로 개탄 서러운 일이다.
6.25 전사를 살펴보면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의 아들이 한국권 중부권전선에서 싸웠고, 미국의 철도 재벌인 ‘모르간’의 가족이 참전했으며, UN군 사령관 ‘밴프리트’의 외아들은 공군으로 무려 22회를 적진을 돌파해 싸우다가 전사했다.
지금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로 지명된 ‘존 마케인’은 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2차 대전에 공군으로 싸웠으며 본인 역시 월남전에서 공군으로 23회의 출격 중에 적의 포화에 맞아 양손과 양다리가 부러져 포로로 잡혀 1973년에 석방된 전쟁영웅이다.
이같이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평화를 위해 그들은 지위고하와 재산유무를 넘어 하나뿐인 자식마저 전쟁터에 버리는 미국인의 희생정신은 전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이 정신을 우리는 재생의 거울을 삼아야 하겠다.
전쟁 당시는 물론, 오늘날 우리의 국방의식은 어떠한가. 국가의 지도자(국회의원, 국무위원, 대통령 참모진, 재벌가 등)와 그들의 자식들은 과연 국방의 성실한 의무를 마쳤는가!
그리고 일부 젊은이들 자체의 의식도 군의 의무를 기피할 수단 방법을 동원하는 추태가 만연되고 있는 오늘이다.
돈과 권력으로 국민의 도리를 기피하는 현상은 만인이 평등해야 할 의무를 진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며 이것이 만년이 되면 국가 기강이 무너지는 것이다.
우리는 누란의 위기에 대아(大我)를 위해 소아(小我)를 버린 현명한 선현을 수없이 모시고 있다. 요즈음 국가관의 교육과 인성교육이 미비한 것 같다. 내일을 책임질 다음세대에 도도한 역사의식과 민족혼을 진하게 심어줘야 한다.
평화통일의 정착을 위해 십여 년간 열정을 태워왔다. 이제는 남북한이 6.25의 값진 교훈을 거울삼아 대화를 통해 통일에 박차를 가할 때다.
실로 전쟁은 과거의 유물에 준할 따름이다. 남과 북은 ‘이데올로기’를 위한 전쟁노름에서 역사의 당면과제인 평화통일의 실리추구에 매진할 때다.
우리는 6.25의 폐허 속에 굶주림의 아픔을 참고 경제건설에 매진했다. 그 결과 세계에서 13위의 부를 누리고 통일의 기반을 조성해 왔다.
북은 아직도 폐기물인 공산주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권력체제의 유지에 있다. 그 결과 대다수 동포의 억압과 빈민 속에 통일을 갈구하며 죽어간다.
우리가 구하자! 지금 통일을 놓치면 영원히 국제 고아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포옹하여 통일의 길에 같이 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공생의 길이다.
6.25의 참담한 비극을 되새기며 ‘이데올로기’ 장기판 놀음에 희생당한 용사들의 명복을 빌며 하나된 조국을 기원한다.
끝으로 오늘에 사는 우리는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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