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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사람!


레아흐고성신문독자(필리핀)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8년 06월 21일
ⓒ 고성신문

나는 1999년 5월 30 마닐라에서 종교 단체의 주선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처음 만난 그는 인상이 좋지 않아 무서웠고 키도 크지 않아 매력적이지 않았다.   


 


별로 결혼할 마음이 없었지만 한 번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간 남편은 계속 나에게 전화를 했고 나중엔 서류 통과를 위해 돈을 보내주었다.


 


나는 남자를 하루 만나고 결혼하게 될 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위에 몇 사람이 괜찮을 거라고 긍정적인 말을 해주어서 결심을 하고 2000년 1월 31 한국에 도착했다.


 


그 당시 일용근로자로 일하던 남편은 저축해 놓은 돈이 없어 전세 이백만 원에 달세를 주고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무서웠던 첫인상보다 자상한 남편은 여러 가지를 도와 주려고 애썼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하루 종일 혼자 있게 되면 필리핀 가족들이 보고 싶어 매일 울었다. 그러다가 아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입덧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비토와 망고만 생각나는데 시골이라 구할 수가 없어 ‘비토’ ‘망고’하고 중얼거리면 살며시 나간 남편은 빵을 사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아이스크림을 사오기도 했다.


 


남편 생각엔 필리핀 음식 비슷한 것이 빵이랑 아이스크림이라 생각한 것 같다. 그러면서 배는 점점 불러왔고 어느 추운 겨울날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직장에 갔고 일용직이라 근무 중에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옷을 두껍게 껴입고 밖으로 나오니 너무 슬펐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고 배는 너무 아프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골목에 서서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택시… 택시”했더니 불러온 배를 보고 뛰어가서 택시를 세워 주었다. 긴 진통 끝에 딸을 낳았는데 늦게 소식을 듣고 오신 시어머니와 남편이 너무 좋아했다. 내 나이가 많아 어렵게 임신해 얻은 딸이라 나도 기뻤다.


 


남편이 열심히 일하지만 수입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유를 먹이지 않고 모유를 먹였고 일회용 기저귀 대신에 면 기저귀를 사용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름이가 태어나서 한 달이 지나면서 나는 어지럽고 힘이 없어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아팠다. 아이를 키워 본 경험도 없고 육아에 대해 조언 받을 사람도 없는데 아름이는 자꾸만 울고, 나는 아파서 움직일 수도 없고….


 


같이 울기도 하며 아름이가 너무 보챌 때는 하루 종일 안고 있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이가 조금 자랐을 무렵에 친척 모임에서 한 번씩 만나는 시어머니의 눈치가 우리하고 같이 살았으면 하시는 것 같아 고민이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너무 좁아 함께 살 수가 없고 문화도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필리핀 친구 몇 명에게 물어보니 같이 사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저녁엔 잠이 오지 않아 한달 동안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도 없고 술을 한 병이나 마셔도 머리만 아프지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때 누군가가 무엇이든지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집을 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날은 고성에 태풍 매미가 오고 있던 날이라 천둥에 번개에 비바람이 불어와 사람 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윙윙거렸지만 보아둔 집을 놓치면 더 이상 싼 집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아 무서운 태풍 비바람을 맞으며 찾아가 계약을 했다.


 


시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힘든 점도 많이 있었지만 내가 며느리로서 할 일을 잘 하고 남편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정성껏 모셨더니 이젠 친정 어머니처럼 여기게 되었다.


 


한국에는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 길을 물으면 동행을 해 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는 한국 사람이 되어 갔다.


 


파김치도 잘 담고 명절 음식도 혼자 해내는 억척스러운 며느리며 사랑 받는 아내이다. 이제 아름이는 커서 유치원을 다니고 있고 엄마에게 한국말도 곧잘 가르치는 예쁜 딸이다.


 


내게 소망이 있다면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남편이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줬으면 하는 것이다. 나도 아르바이트로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애를 쓰지만 생활은 늘 빠듯하다.


 


그래도 이 곳 생활이 즐거운 것은 아름이를 가져서 입덧할 때 필리핀 음식이 먹고 싶어 울면 내 손을 잡고 가만히 나가 프라이드 치킨을 사주던 그 남편의 따뜻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으로 한국에 오는 우리 외국인 친구들도 이젠 한국사람이 되었으므로 잘 살아 다른 가족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레아흐고성신문독자(필리핀)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8년 0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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