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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는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웠다. 경제적 문제(?) 아니면 통화가 별로 없는 아이다. 엄마하고는 자주 통화를 한다.
모녀 사이지만 친구처럼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작은 것부터 해서 모두가 통하는, 비밀이 없는 사이다. 나에게 못할 얘기도 엄마에게 다해버린다. 그러면서 아빠에게는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단다.
하지만 아내는 그 약속을 깨고 나에게 전부 고자질(?)해 버린다. 아이도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은근히 묵인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족에겐 비밀이 없다. 아이에게 안부는 주로 내가 많이 하는 편이다.
객지에 아이를 내놓고 문득문득 걱정이 되기도 하여 보고 싶어, 목소리라도 들을까 싶어 습관적으로 통화를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어 어정거리는 나의 속을 아는지 아이는 영리하게 어른스럽게 나를 위로하고 안심시킨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 아이의 목소리는 지쳐있었다.
아빠, 요즘 들어 공부가 잘 안돼요. 머리가 텅 빈 것 같고, 집중이 되지 않아요. 나에게는 자기 심중을 표현하지 않는 아이인데, 목석(?)같은 애비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던가 보다.
덜컥, 걱정이 된다. 객지에서 마음이 여린 것이 오죽 외롭고 고달팠으면 나에게 구원을 청했을까. 아이에게 마음이 약한 나 역시 걱정이 되어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 그래, 그때는 쉬어라. 그러면 괜찮을 꺼다. 지극히 진정성 있게 위로한답시고 한 말이었지만 좀 생뚱스럽게 들렸던 모양이다.
아이의 반응은 너무나 기대에 어긋난다는 투로, 아빠, 무슨 말씀이 그래요. 너무 성의가 없네요. 알겠어요. 찰깍! 통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평소에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인데 오죽하면 이런 행동을 할까. 일시에 소통이 중단되어버렸다.
순간 걱정이 된다. 나의 속마음은, 진정성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가 서운하기도 했지만 나의 신중 하지 못한 말 한마디가 아이의 사기를 눌려버린 셈이다.
말의 화근, 위력이 새삼 놀랍고 무섭다. 사실 나의 입장에서는 아이에게 마음의 부담을 들어주기 위해서 한 말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표현의 차이가 아이에게 실망을 줘 버렸다.
서둘러 통화를 시도해본다. 전원이 꺼져있다. 부랴부랴 아내에게 응원을 청한다. 아내는 해결사다. 아이에게 또한 진정한 상담역이다.
세상에, 걱정을 같이 해 줄 생각은 않고, 항상 뒷북만 치니, 아내는 철없이 일을 저지른 어린아이를 보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아이와 몇 차례 통화를 시도했고, 겨우 연결되었다.
아내의 훌륭한 상담이 시작되었다. 아이의 상황에서 같이 걱정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아이의 사기를 살리기 시작했고, 아이는 다시 원기를 회복한 모양이다.
아이는 나의 무성의한 대답에 화가 나서 전원을 꺼버린 데 대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전원을 꺼버린 시간 동안 아이는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아이의 목소리가 젖어있더라고 전한다. 다시 우리집안엔 소통의 행복이 돌아왔다.
통해야 할 것들이 통하지 못하고 닫혀있으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소통의 부재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망쳐 놓는다. 작은 구멍에서부터 큰 구멍까지다 각기 기능과 역할이 있기 마련인 데 인위적 물리적으로 막으려고 하면 결국 썩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소통은 생명력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소통의 단절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역사적 불행을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6.25전쟁이 그랬고, 시대의 중요한 계기마다 소통의 결정적 막힘으로 인해서 역사적 불행과 막대한 희생을 치러왔다.
지금, 또다시 우리는 소통의 부재 속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정말 답답하고 우울하다. 자기는 닫고 있으면서 상대에게 소통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쪽의 일방적 과시적 힘의 논리로 인해서 소통이 막히고 있다. 그러다 보니 힘의 논리로 해결하려고 하고 물리적 부작용이 따르면서 더욱 더 두터운 단절의 벽을 만들고 있다.
소통이란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과 같아야 한다. 소통의 단절은 어디에서 오는가. 요즘 시대의 화두처럼 회자되고 있는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믿음이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불신의 골은 깊이 파이고 위기를 느끼고 스스로 자기 보호본능이 발동되면서 해악의 울타리를 치기 시작한다.
아무리 믿으라고 믿으려고 하지만 이건 도저히 아니다 느껴질 때 불신이 싹트고 불행한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고 하는 엄청난 저항이 시도되고 있다.
지극히 작지만 소중한 구멍 하나를 예사로 생각하고 막으려고 하다가 더욱더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이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이 땅의 지도자들이 진심으로 진정성 있게 국민 속으로 다가가면서 진정으로 국민 여러분을, 주민 여러분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치를 실천하는 것 뿐이다.
<고성포럼 전 대표> |